<짐가제굿>과 죽음의 전염성
"열시왕이 떠날 적에 이 동네 살(煞)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아이고, 그 살이라는 게 엄청 무섭습니다."
지금섬 구연, 임석재‧장주근 조사, <짐가제굿>(1965)
서울에 '김 정승'의 아들, '이 정승'의 아들, '박 정승'의 아들이 살고 있었다. 김‧이‧박 정승의 아들들은 동갑이었고, 절에서 속가제자가 되어서 함께 공부를 했다. 공부를 하다가 세 아들은 세상 구경을 가기로 했다. 그들은 백 냥에서 삼백 냥 정도 하는 물건을 지고 길을 떠났다.
세 아들이 강림골에 다다랐을 때, '짐가제'가 자신의 집에서 머물고 가라고 했다. 짐가제는 세 아들이 가지고 있는 재물을 보고 욕심이 났다. 짐가제가 김‧이‧박 정승의 아들들을 죽이려고 하자, 짐가제의 아내는 남편을 말렸다. 사실 짐가제 부부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한동안 기자치성(祈子致誠)을 드리고 있었는데, 살해를 저지르면 그동안 드린 적덕(積德)이 소용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짐가제는 오히려 아내를 위협했다. 짐가제의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살해 계획에 동의했다. 결국, 짐가제는 방에 들어가 김‧이‧박 정승의 아들들의 목을 칼로 잘라 죽였다. 그리고 외양간 말판 밑에 시신을 숨겼다.
김‧이‧박 정승의 아들들은 죽은 혼이 되어 저승에 가서 '지부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부왕은 정월 보름날 밤 샘물에서 사는 금붕어와 은붕어로 다시 태어나라고 말했다. 김‧이‧박 정승의 아들들은 그렇게 금붕어와 은붕어로 환생했다.
어느날 짐가제의 아내가 물 도둑질을 하려고 한 우물에 갔다. 그 우물에서 몰래 물을 긷다가 금붕어를 얻었다. 다른 우물에 가서는 은붕어와 금붕어를 얻었다. 짐가제의 아내는 귀물(貴物)을 얻었다고 하며, 금붕어와 은붕어를 뼈도 남기지 않고 다 씹어 먹었다. 그날 이후로 짐가제의 아내는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열 달이 지나자 짐가제의 부인은 남자 아이 세 명을 한날한시에 낳았다. 세 아이는 큰 탈 없이 자라서 7살이 되었다. 7살부터 독서당을 지어놓고 공부를 했는데 모두 수재였다. 세 아들은 과거 시험을 보러갔다.
서울에서 짐가제의 세 아들이 과거 시험을 보았다. 그들이 작성한 답안을 보다가 김‧이‧박 정승들은 십 여년만에 자기 아들의 글씨를 다시 본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짐가제의 세 아들은 모두 알성급제(謁聖及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짐가제는 잔치를 크게 열었다. 짐가제의 세 아들은 집으로 돌아와 짐가제에게 큰 절을 올렸다. 그런데 세 아들은 엎드린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짐가제가 세 아들을 일으키니 모두 입에 피를 가득 물고 죽어 있었다. 짐가제가 광분하여 칼을 휘두르니 잔치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도망갔다. 짐가제는 그날부터 관가에 가서 세 아들을 잡아간 '삼 사재(세 명의 저승차사)'를 데리고 와달라고 호소했다.
관가에는 한쪽 눈이 멀고 한쪽 팔다리에 장애가 있는 '손 사령'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관가의 원님이 손 사령에게 삼 사재를 잡아 오라고 시키자, 손 사령은 삼 일만 말미를 달라고 했다. 손 사령은 집으로 돌아가 식음을 전폐하고 고민에 빠졌다. 그때 손 사령의 아내는 남편에게 '멍텅구리'라고 하며 지혜를 빌려주었다. '기망산 다리' 입구에 가서 음식을 차린 상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손 사령이 아내가 시킨대로 하자 저승 귀신들이 굿을 하는 줄 알고 모두 찾아왔다. 손 사령은 그 중 우두머리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삼 사재를 잡아오라고 했더니, 손 사령은 저승의 우두머리인 열시왕을 모시고 관가로 향했다.
관가에 도착하자 열시왕은 짐가제의 집으로 가자고 했다. 열시왕은 짐가제에게 죄가 없느냐고 물었다. 짐가제는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하며, 자기 세 아들이 이유없이 죽었다고 억울함만을 호소했다. 열시왕은 관가의 원님을 불러 외양간 말판을 드러내보라고 했다. 짐가제는 떼굴떼굴 구르며 살려달라고 외쳤다. 말판 아래에서는 썩지 않은 김‧이‧박 정승의 세 아들의 시체가 나왔다. 열시왕은 짐가제에게 몸을 찢어 죽이는 형벌을 내렸고, 짐가제의 아내는 톱으로 머리를 잘라 죽였다.
열시왕은 저승으로 돌아갈 때 강림골에 살(煞)이 들지 않게 막아주었다. 그리고 손 사령을 저승 사령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손 사령이 거부하자 열시왕은 손 사령의 혼만 쏙 빼서 저승으로 데려갔다. 남편이 죽자 손 사령의 아내는 슬퍼하며 옷고름에 목을 매어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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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동, 「<짐가제굿> 무가의 서사 지향과 기능」, 『동아시아고대학』39, 동아시아고대학회,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