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감굿>과 신(神)이 된 희생양
"나의 아버지가 전쟁에서 패해서 죽었는데, 이제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으니 집에 돌아가서 무엇하리."
짐달언은 용천검으로 스스로 목을 잘라 죽었습니다.
지금섬 구연, 임석재‧장주근 조사, <대감굿>(1965)
옛날 옛 시절에 글에도 있고 율(律)에도 있고 법에도 있는 이야기가 있다.
'짐미련'이라는 사람이 전쟁에 나가 패하고 죽었다. 짐미련의 아내는 아이를 잉태한 상태였다. 열 달이 지나 아이가 태어났는데, 이름을 '짐달언'이라고 지었다. 짐달언이 세 살이 되자 처음 하는 말이 "어머니, 나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습니다."였다. 짐달언의 어머니는 다시는 그런 소리를 하지 말라고 만류했다.
짐달언이 네 살이 되었을 때였다. 짐달언의 어머니가 자다가 깨보니 짐달언이 사라져 있었다. 갯변에 나가보니 짐달언이 총 쏘기, 불화살 쏘기 등을 연습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뭐 하고 있냐고 물으니, 짐달언은 이렇게 연습을 해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겠다고 말했다. 짐달언의 어머니는 다시는 그런 소리를 하지 말라고 만류했다.
짐달언이 열다섯 살이 되자, 다시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말했다. 짐달언의 어머니는 제사는 누가 모시며, 사당은 누가 관리하냐고 물으며 만류했다. 하지만 짐달언은 천리용마(千里龍馬)를 타고 떠났다. 짐달언이 길을 떠나 '창기산'에 도착하자 동쪽으로 쌀을, 서쪽으로 좁쌀을, 북쪽으로 콩을 한 줌씩 뿌렸다. 그랬더니 동쪽에서는 기마병이, 서쪽으로는 포병이, 북쪽에서는 군사가 일어났다. 짐달언은 군사들을 이끌고 '저 나라'로 출발했다.
두만강에 도착하자, 짐달언은 천리용마를 몰아서 두만강을 한 번에 도약했다. 짐달언을 태운 천리용마의 뒷부분에 두만강의 물이 조금 묻었다.
저 나라로 향하는데, 마귀 할미가 나타났다. 마귀 할미는 짐미련이 자기 말을 듣지 않아서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라고 말했다. 짐달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달라고 했다. 마귀 할미는 길을 가다 보면 '새파란 각씨님'이 나와서 살려달라고 할 텐데, 인정사정 보지 말고 용천검으로 새파란 각씨님을 내리치라고 했다.
짐달언이 저 나라로 가다 보니 마귀 할미의 말처럼 새파란 각씨 님이 나타나서 살려달라고 외쳤다. 짐달언은 용천검으로 새파란 각씨님을 냅다 쳤다. 알고 보니, 새파란 각씨님은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였다.
짐달언이 저 나라에 도착해서 군사들을 맞이했다. 저 나라 군사들은 짐달언이 대추씨만 하다며 비웃었다. 짐달언은 자신의 재주를 보여주겠다며 용천검으로 자신의 목을 잘라냈다. 그러자 적군들은 모두 전의를 상실하고 넋을 잃었다.
짐달언은 저 나라 군사들에게 아버지의 시신을 내놓으라고 외쳤다. 저 나라 군사들은 짐미련의 묘가 있는 곳을 가르쳐주었다. 짐달언은 온갖 가시들이 가득 찬 길 위에서 이빨로 낫과 괭이를 삼고, 혀로 함지를 삼아 아버지의 시신을 거두어 그 자리에서 감장(勘葬)을 했다.
그렇게 복수를 마치고 짐달언은 천리용마를 타고 두만강으로 돌아왔다. 짐달언은 천리용마를 몰아서 두만강을 한 번에 도약했다. 짐달언을 태운 천리용마의 뒷부분에 두만강의 물이 조금 묻었다. 짐달언의 군사들은 틱틱 죽어나가다가, 머루와 달래, 오복 등을 먹고 겨우 살아났다. 짐달언은 그 자리에서 군사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짐달언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으니 집에 돌아갈 필요가 없다며, 용천검으로 스스로 목을 쳐서 죽었다. 천리용마는 짐달언의 머리를 물고 집으로 찾아갔다. 베를 짜고 있던 짐달언의 어머니는 짐달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더 이상 살 의지를 잃었다. 짐달언의 어머니는 옷고름에 목을 매어 죽었다.
그 후 짐미련은 배 위의 장군으로 좌정했고, 짐달언의 어머니는 성황신이 되었다. 장군 대감신을 받는 법도 마련했는데, 덕물산 최영 장군을 받는 법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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