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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현 May 03. 2021

# 8. 죽음의 전염과 희생양(2)

<지장본풀이>와 투기(投棄)된 희생양

"지장아기가 열일곱 되던 해에 시아버지가 죽고, 열여덟 되던 해에 시어머니 죽고, 열아홉 되던 해에 남편이 죽고, 스물이 되었을 때, 아들도 죽었구나. 지장아기의 팔자(八字)요, 지장아기의 사주(四柱)로다."

서순실 구연, 허남춘 외 조사, <지장본풀이>(2014)



죽음의 전염을 끊는 과정에서 <대감굿>과 같은 자기희생의 신화가 탄생하지만, 신이 되는 희생양의 옆에는 짐달언의 어머니와 같이 여전히 침묵 속에서 투기(投棄)된 타자가 존재합니다. <짐가제굿>에서 자결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을 끝내는 손 사령의 아내와 달리 짐달언의 어머니는 어찌어찌하여 죽은 이후에 성황신이 되긴 하지만 그 과정은 갑작스럽고 어색하기만 했었죠. 신의 근본을 푼다고 하여 우리나라의 무속(巫俗)에서는 신화를 '본풀이[本解]'라고도 부르는데, 신이 될 수 있는 근본 자체가 취약한 짐달언의 어머니를 온전한 신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혹시 짐달언뿐 아니라 짐달언의 어머니도 함께 신으로 좌정시킨 것은 마지막에 홀로 자발적인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그녀에게로 향한 모종의 폭력을 은폐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여기에 또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투기된 희생양의 전형을 보여주는 신이 있습니다. 바로 제주도의 무속에서 전승되고 있는 <지장본풀이>의 '지장 아기'가 그 주인공입니다. <지장본풀이>는 제주도의 큰 굿 중 '양궁숙임'이라는 굿거리에서 단독으로 불리기도 하고, '시왕맞이'라는 굿거리에서 <차사본풀이>와 <사만이본풀이>라는 신화가 구연된 이후 추가적으로 연행되기도 합니다. 큰 굿뿐 아니라 '거무영청대전상'이라는 작은 굿에서도 <지장본풀이>가 불리는데요. '거무영청대전상'은 백정의 집안에서 생업의 번창을 빌 때 올리는 굿을 말합니다. 여기저기에서 호출되는 지장 아기는 인기 있는 신처럼 보이지만, 그 이유를 알면 긍정적으로만 바라보기 힘듭니다. <지장본풀이>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부정(不淨)적인 것이 넘쳐나는 곳에서, 그 부정함을 온 몸으로 껴안고 사라지는 지장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때문입니다. 지장 아기의 주변에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 배고픔에 지친 잡귀들 등이 떼지어 몰려있습니다. 죽음과 그 전염의 위험에 가장 근접한 존재가 바로 지장 아기인 셈입니다.


제주도의 무속은 현재까지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에 <지장본풀이>의 각편은 상당히 많이 남아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서순실이라는 심방이 부른 <지장본풀이>의 내용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끼시리 놀림(강림 차사를 위한 공연)이 끝난 다음 '지장'의 근본을 푼다.

'남산'과 '여삭'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그러던 중 동관음(東觀音) 은중절에 불공을 올렸더니 '지장 아기'가 태어났다. 

지장 아기가 한 살 때 어머니 무릎에 앉아 어리광을 부렸고, 두 살 때 아버지 무릎에 앉아 어리광을 부렸다. 세 살 때 할머니의 무릎에 앉아 어리광을 부렸고, 네 살 때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어리광을 부렸다. 다섯 살이 되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여섯 살이 되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일곱 살이 되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여덟 살이 되던 해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갈 곳이 없던 지장 아기는 외삼촌 댁으로 갔다. 외삼촌은 지장 아기에게 죽으라고 하면서 개가 먹던 접시에 숟가락으로 밥의 양을 계산해서 아주 조금씩 주었다. 박대받는 지장 아기가 삼도전 세 갈래길로 가자, 하늘이 옷을 주고 땅이 밥을 주었다. 

지장 아기가 열다섯이 되어 혼기가 찼다. 온 세상에 지장 아기가 착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서수왕의 집에서 결혼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지장 아기는 결혼을 하고, 열여섯 살에 아들을 낳았다. 지장 아기는 시댁에서 사랑을 받으며 지냈다.

지장 아기가 열일곱 살이 되자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열아홉 살이 되자 남편이 죽고, 스무살이 되었을 때 아들마저 죽었다. 지장 아기는 갈 곳이 없어 시누이 집에 가서 의탁했다. 시누이는 지장 아기에게 못된 말을 하며 괴롭혔다.

어느 날 지장 아기는 주천강에 빨래를 하러 갔다. 그곳에서 대사(大師)님과 소사(小師)님을 만났다. 지장 아기는 자신의 팔자를 봐달라고 했다. 대사님과 소사님은 초년(初年)의 팔자는 좋지만, 중년(中年)의 팔자가 궂다고 했다. 이어서 중년의 팔자가 궂어도 말년(末年)은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먼저 세상을 떠난 친정 부모와 시부모, 남편, 아들을 위해 굿을 올리라고 했다. 지장 아기는 그 말대로 죽은 자들을 위한 굿을 올렸다.

굿을 올리니 지장 아기가 좋은 일을 했다고 인정받았다. 지장 아기는 서천꽃밭의 천왕새, 지왕새, 인왕새, 하늘의 부엉새, 땅 아래의 도닥새, 안쪽 당의 노념새, 바깥 당의 시념새의 몸으로 환생했다.

메마른 새에게 물을 주며 쫓아내자! 배고픈 새에겐 쌀을 주며 쫓아내자!


보면 볼 수록 참 기구한 신화입니다. '뭐 이런 신화가 다 있어?'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요. <지장본풀이>의 지장 아기는 팔자가 굉장히 사납습니다. 자식이 없었던 '남산'과 '여삭'이 동관음(東觀音) 은중절에 정성껏 불공을 드려서 겨우 얻은 소중한 존재가 바로 지장 아기입니다. 그런데 지장 아기가 5~8세가 되던 해에 모든 가족을 잃게 됩니다. 사랑하던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죠. 가족들의 죽음에는 별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돌아가셨다'라고만 표현됩니다.


가족들의 죽음에 이유가 없다는 것, <지장본풀이>에서는 그것이 또 문제가 됩니다. 죽음에는 원인이 있어야 하는데, 지장 아기의 주변에는 원인불명의 죽음만 해마다 발생합니다. 그러다보니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모종의 인과관계가 지장 아기의 삶에 개입되기 시작합니다. 지장 아기 '때문에' 가족들이 죽었다는 식으로 말이죠. <짐가제굿>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죽음은 원한을 불러일으키고 그 원한을 매개로 죽음의 전염이 시작됩니다. 지장 아기는 가족들의 죽음에 슬퍼할 사이도 없이 죽음을 일으킨 원인 제공자로 취급됩니다. 그래서 외삼촌에게 의탁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구박만 받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외삼촌의 태도에는 지장 아기에 대한 미움과 동시에 혹시라도 자신에게 미칠 수 있는 죽음의 전염에 대한 두려움도 섞여 있습니다.


지장 아기는 마음대로 죽지도 못합니다. 하늘이 옷을 주고 땅이 밥을 주니 생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불행을 모두 뒤집어버릴 결혼 생활이 찾아옵니다. 시댁에서도 따뜻하게 지장 아기를 맞아주고 큰 탈 없이 아이도 낳습니다. 하지만 지장 아기의 사나운 팔자는 끝나지 않았나 봅니다. 이제 겨우 행복한 삶을 영위하나 싶더니 지장 아기가 17세~20세가 되었을 때 시부모와 남편 그리고 아기마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죽음의 전염은 끈질기게 지장 아기의 주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갈 곳이 없었던 지장 아기는 시누이의 집에 의탁합니다. 외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시누이는 지장 아기를 미워하며 박대합니다. 시누이 또한 지장 아기 주변을 맴돌고 있던 죽음의 그림자를 두려워했던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리고 지장 아기가 주천강으로 빨래를 하러 갔을 때, 마침내 죽음의 전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게 됩니다. 지장 아기는 대사(大師)님과 소사(小師)님을 만나 팔자를 봐달라고 하고, 궂은 팔자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묻게 되죠. 대사님과 소사님이 시킨대로 지장 아기는 죽은 사람들을 위해 굿을 올립니다.


'굿'을 통해 죽은 가족들의 원한은 풀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굿을 올린 후에 지장 아기는 '새'로 환생합니다. 굿을 올리자 좋은 일을 했다는 말도 들었으니 '새'는 긍정적인 존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지장본풀이>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말입니다. 새를 쫓아내자고 반복하는 말 속에서 환생한 지장 아기는 여전히 부정적인 존재이고 누군가에게 쫓겨나야 하는 신세에 처해 있습니다. 모든 부정적인 것을 온 몸에 집중시키고 죽은 자를 위해 굿까지 올린 지장 아기에게 이런 결말은 너무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실, '새'는 사(邪)라는 글자와 음가상 유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邪)는 사악하다는 뜻입니다. 보통 제주도의 무속에서 '새'는 사악한 기운을 환유적으로 표현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굿판에서 사악한 기운을 몰아낼 때 온갖 새[邪]들이 몰려드는 상황을 가정하고 그 새를 쫓아내는 제의적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이를 '새 다림'이라고 부릅니다. 제주도 말로 '다리다'는 '쫓아내다'라는 뜻이기 때문이죠.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새로 환생한 지장 아기는 말 그대로 사악한 기운을 가진 신이 됩니다. 팔자 사나운 삶을 살아가다가 결국 사(邪)가 된 지장 아기는 세계에서 투기(投棄)된 타자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짐가제굿>이나 <대감굿>에서 공통적으로 포착된 것은 바로 죽음의 전염이 '원한'에 의해 발생하고,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장면이었습니다. 희생양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가혹하지만, 그런 폭력은 쉽게 은폐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지장 아기의 경우 그런 폭력을 오히려 겉으로 드러내어 전시(展示)합니다. <지장본풀이>를 통해 지장 아기를 향한 혐오와 기피의 시선이 외삼촌과 시누이의 발화와 행동을 통해서 폭로되고 사(邪)가 되어 쫓겨나는 희생양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지장 아기의 기구한 삶의 일대기는 매순간 안타까움을 자아내며 어떻게 죄없는 한 인간이 모두가 혐오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지장본풀이>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이 된 지장 아기는 온갖 불순하고 부정한 것들을 계속해서 끌어안아서 스스로 쫓겨나는 제의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런 신도 다 있나 싶기도 하지만, 지장 아기 덕분에 그동안 애써 못 본 척 하던 희생양을 향한 폭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희생양을 굳이 신으로 만들고자 하는지가 드러납니다. 이제는 폭력의 악순환을, 또는 죽음의 전염을 막기 위해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폭력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지장 아기와 같은 존재가 위치해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가 되어 쫓겨난 지장 아기의 말로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지장본풀이>에 등장하는 외삼촌과 시누이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니까요. 분명 죽음과 같은 폭력은 전염성이 있고, 폭력의 악순환에서는 벗어나야 하겠지만, 희생양을 내세워 해결하는 방식은 투기된 타자를 양산할 뿐입니다. 이제 폭력에 대한 또다른 관점과 대응방식이 요청되는 시점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이수자, 『큰굿 열두거리의 구조적 원형과 신화』, 집문당, 2004.
김헌선,「제주도 <지장본풀이>의 가창방식, 신화적 의미, 제의적 성격」,『한국무속학』10, 한국무속학회, 2005.
정제호,「혐오의 정치학, 그리고 '지장본풀이'」, 『한국무속학』42, 한국무속학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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