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에서 시작된 작은 온기

이웃이 건넨 한 마디가 우리 부부의 겨울을 녹였다

by 김남정

우리나라 도시 풍경에서 아파트만큼 익숙한 주거 형태도 드물다. 층층이 쌓인 집들은 서로 가깝지만, 정작 이웃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나마 가장 자주 마주치는 공간이 승강기인데, 대체로 짧은 침묵과 머쓱함이 흐르곤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신도시라 우리처럼 은퇴 부부나 나이 드신 노인보다 젊은 층이 훨씬 많이 거주한다. 남편이 아킬레스건 수술을 받고 재활을 시작한 뒤로,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승강기를 이용했다. 남편의 느린 걸음에 맞춰 이동하다 보니 사람들의 눈짓 하나, 표정 하나에도 더 민감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20층에 사시는 젊은 남자분이 먼저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요즘 좀 어떠세요?" 하고 묻는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굳었던 어깨가 스르르 풀리는 걸 느낀다. 짧은 한 마디인데도 마음을 따뜻하게 적시는 힘이 있다. 남편 역시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하고 답한 뒤 문이 닫힐 때까지 한 번 더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지금은 겨울이니까 재충전한다고 생각하세요. 천천히 하시면 돼요. 봄엔 활기차게 걸으실 거예요"라며 승강기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다정한 말씀을 해주셨다. 짧고 가벼운 인사였지만, 그 말은 남편의 회복에 작은 모닥불처럼 힘을 더해주곤 했다. 사람 사이의 정이란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건너오곤 한다.


여행 중 머물렀던 여러 나라에서는 승강기 문화가 조금 달랐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먼저 가볍게 눈을 맞추며 인사하거나, 내릴 때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한 마디 남기고 사라지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인사가 공간을 훨씬 부드럽게 만들었다.


반면 우리 아파트에서는 여전히 누군가 먼저 말문을 여는 것이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상대의 반응을 기대하지 않고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말해보기로 한 것이다.


남편도 승강기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먼저 "넌 참 씩씩하구나" 하고 인사를 건넨다. 아이가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고 지나가는 날도 있지만, 가끔은 작은 미소가 돌아오기도 한다. 남편은 그 미소 하나를 꽤 오래 기억한다.


20층 이웃의 한 마디는 남편에게는 회복의 격려가 되고, 나에게는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분을 만나지 못하는 날이라도 "봄엔 활기차게 걸으실 거예요"라는 말은 여전히 우리에게 작은 봄처럼 남아 있다.


아파트라는 집단 주거 공간은 익명성이 강하고, 서로 모르는 채 살아가기 쉬운 곳이다. 하지만 짧은 인사 한마디는 그 벽을 금 가게 한다. 누군가에게 건넨 말이 상대를 변화시키기 전에 먼저 나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든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오늘도 승강기 문 앞에서 생각한다.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되자고. 그 한 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아주 조금 환하게 만들지 모른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 나는 또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볼 것이다. 그 따뜻함이 다시 누군가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89724


keyword
작가의 이전글혼자만 누리는 자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