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사위가 건넨 생일 선물, '이해받은' 기분이었다

"고르기 쉬웠다"는 말속에 담긴 고마운 마음,내게 꼭 맞는 선물을 받다

by 김남정

지난 18일, 일요일은 내 생일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모였다. 작은딸 부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마치고 지난 17일에 돌아왔고, 그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2주 가까이 여행을 다녀왔는데, 둘 다 눈에 띄게 야위어 있었다. 여행은 원래 사람을 살찌우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사위는 식탁에 둘러앉은 자리에서 이번 여행을 네 글자로 표현해 보라고 하면 "희로애락"이라고 말했다. 웃으며 한 말이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네 글자 안에 두 사람의 여행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도착한 날부터 쉽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 여행에서 많이 배웠어요."


딸은 그렇게 말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시간, 아픔과 불편함, 그리고 그 안에서 친절이 오래 남았다고 했다. 그렇게 많은 일을 겪고 돌아온 두 사람이 내 생일에 조용히 건넨 선물이 있었다. 포르투갈에서 만든 가죽 노트였다. 'MUD'라는 매장에서 골랐다고 했다. 매장에는 아이보리, 올리브, 와인, 갈색 등 다양한 색의 노트가 있었고, 하나를 고르기까지 꽤 오래 고민했다고 한다.



아이보리색 노트는 가죽이 더 부드럽고 흠집에도 강한 반면, 갈색 노트는 흠집에는 약하지만 처음엔 단단하고 쓰면 쓸수록 손에 맞게 부드러워진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했다. 점원은 "이 노트는 쓰는 사람의 시간이 그대로 남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딸과 사위는 그 말을 듣고 이 노트를 골랐다. 사위는 웃으며 덧붙였다.



'받았다'기 보다 '이해받은' 선물


image.png ▲<선물 받은 노트> 아이보리 색과 갈색을 비교하며 신중히 골랐다고 합니다. ⓒ 김남정


"장모님은 취향이 확실하셔서 오히려 선물 고르기가 쉬웠어요."



그 말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취향이 분명하다는 건, 삶의 태도가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나는 평소 물건을 쉽게 바꾸지 않고,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며, 화려한 것보다는 오래 쓸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딸 부부는 그런 나를 알고 있었고, 이 노트에는 그 '알고 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요즘은 선물하기가 점점 어려워진 시대다. 웬만한 물건은 이미 다 가지고 있고, 필요 없는 선물은 오히려 부담이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 내가 받은 선물 중 가장 고마운 것은 비싸거나 새것인 물건이 아니라, '잘 맞는 것'이다.



이 노트는 지금은 부드럽지 않다. 손에 쥐면 단단한 느낌이 먼저 온다. 시간이 지나면 긁히고 닳고, 자국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 흔적들은 이 노트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써온 시간의 기록이 될 것이다. 바로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고, 쓰는 만큼 변해가는 물건이라는 점이 요즘 내 삶의 속도와도 닮아 있다.



나는 아직 이 노트의 첫 장을 넘기지 않았다. 아무 말이나 쉽게 적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이 노트가 책 속 문장들로 다 채워질 즈음이면, 이 선물을 건네준 날의 식탁과,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던 딸 부부의 얼굴도 함께 떠오를 것 같다.


선물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선물은 상대를 얼마나 오래 바라보았는가에 대한 결과다. 이 노트는 포르투갈에서 만들어졌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우리 가족의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노트를 '받았다'기보다, '이해받았다'라고 느낀다. 각자의 삶이 바쁘고 마음을 살필 여유가 줄어든 요즘, 한 권의 노트가 조용히 알려준다. 아직은 서로의 취향을 기억하고, 시간을 들여 고르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가족 #생일 선물 #여행의 기억 #딸과사위 #취향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9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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