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결혼하고 첫 설... 사위 위해 준비한 장모의 한판

윷놀이로 세대가 함께 웃던 기억, 이젠 새로운 가족과 같이 하고 싶네요

by 김남정

설이 다가오면 마음이 먼저 바빠진다. 추석 차례는 지내지 않지만 설 명절은 꼭 챙긴다. 친정에서는 올해도 여든을 훌쩍 넘긴 엄마가 차례 준비를 하신다. 남동생과 올케가 곁에서 돕고, 맏딸인 나는 자연스럽게 친정으로 향한다. 설 명절 전날, 부엌에서 음식을 함께 준비하는 일은 오래된 약속처럼 이어져 왔다.



배추 전과 동태 전, 파전과 동그랑땡까지. 설 명절 전날 주방은 늘 기름 냄새로 가득하다. 재료를 다듬고 반죽을 만들고, 프라이팬 앞에 서 있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엄마는 "이제는 이런 거 안 해도 되는데"라고 말하면서도 손을 놓지 않는다. 아픈 무릎을 의자에 잠시 기대고는 다시 일어난다. 명절의 무게는 여전히 엄마 어깨 위에 있고, 그 곁을 지키는 일은 자식들의 몫이다. 우리 집 설은 이렇게, 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부엌에서 시작된다.



반면 시댁은 시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명절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친정으로 기운다. 여기에 올해는 작년에 결혼한 둘째 딸 부부와 오는 3월에 결혼하는 큰딸 부부까지 함께 하는 설이라 부담도 더해졌다. 괜히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신경이 쓰인다. 요즘 남편과 설 연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명절을 '잘 보내는 방법'에 대해 자주 고민하게 된다.



나이가 중요하지 않은 놀이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늘 같은 장면이 떠오른다. 친정집 설의 오래된 풍경이다. 내가 결혼하고 지금까지, 설날이면 우리 집에서는 윷놀이가 빠지지 않았다. 차례상을 물리고 세배가 끝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윷과 말판이 나온다. 사 남매가 자연스럽게 편을 나누고, 아이들이 생긴 뒤에는 그 아이들까지 함께했다. 아이들은 각자 방으로 흩어지지 않았다. 어른들 틈에 끼어 앉아 윷을 던지고 말의 위치를 놓았다.



여든이 넘은 부모님도 늘 함께했다. 엄마는 윷을 던지기 전마다 기를 모으듯 손을 모으고, 아버지는 말이 잡히면 어린아이처럼 아쉬워했다. '모'가 나오면 환호성이 터지고, 연달아 '윷'이 나오면 판이 단번에 뒤집혔다. 놀이를 하는 동안만큼은 나이도 역할도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편이었고, 같은 판 위에 있었다. 윷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image.png ▲윷놀이. AI생성이미지 ⓒ AI생성이미지


"모!"


"오늘 운 좋네."



말판 위의 말이 앞으로 나가자 웃음이 터진다. 곧이어 남편이 말한다



"'빽도' 있어."



다 왔다고 생각했던 말이 뒤로 물러난다.



"아이고, 이게 뭐야."


"그래서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야."



우리 집 윷놀이에는 유독 긴장감을 주는 규칙이 하나 있다. 바로 '빽도'다.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한 말이 다시 뒤로 가야 할 때, 가장 큰 탄식이 나온다. 누군가는 신이 나서 웃고, 누군가는 아쉬움에 고개를 젓는다. 그 소란 속에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윷놀이가 끝나면 모인 회비로 저녁에 회를 먹거나 간단한 안주를 곁들여 다시 둘러앉는다. 승부는 금세 잊히고, 누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누가 가장 크게 웃었는지만 남는다. 아이들 직장 이야기, 부모님 건강 이야기까지. 말판 위의 말처럼 이야기도 이리저리 오간다. 설 명절의 피로는 그렇게, 함께 웃고 떠드는 시간 속에서 풀려왔다.



요즘은 명절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아이들은 각자 방에서 게임을 하고, 어른들은 거실에서 따로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명절을 여행으로 보내는 가족도 늘었다. 명절놀이가 사라졌다는 말도 낯설지 않다. 가족의 형태가 바뀌고, 명절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는 이상하게도 설이 다가오면 부모님이 더 들뜬다.


부모님이 더 좋아하는 시간



"올해는 누가 우리 편이야?"



윷놀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쪽은 늘 부모님이다. 명절놀이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부모님이 더 좋아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설에는 윷놀이를 두 번 할 계획이다. 친정에서 한 번, 그리고 사위들과 우리 집에서 한 번.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고 해서 굳이 다른 형식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윷판 위에 앉아 같은 규칙을 나누는 것, 그 자체가 서로를 조금 덜 어색하게 만들어 준다.



명절 문화는 앞으로도 계속 바뀔 것이다.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은 더 늘어날 것이고, 명절을 여행으로 보내는 가족도 많아질 것이다. 우리 집 역시 그런 변화 앞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올해 설만큼은, 우리 집의 윷놀이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 그 안에는 세대가 섞이고, 말이 적은 사람도 자연스럽게 웃게 되는 힘이 있다.



명절놀이의 진짜 의미는 승패에 있지 않다. 같은 판 위에 앉아 같은 시간을 나누는 데 있다. 올해도 우리는 윷을 던질 것이다. 부모가 더 좋아하는 그 놀이를, 여전히 함께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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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0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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