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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말의 온도는 따뜻하다

한 통의 전자 우편을 받고, 단어 하나를 다시 고르며 '소통'을 생각하다

by 김남정

지난 20일 국어문화원연합회에서 한 통의 전자 우편을 받았다. 전자 우편의 제목은 '[쉬운 우리말] 기사 작성 시 쉬운 우리말 사용 요청'이었다. 사단법인 국어문화원 연합회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와 언론이 함께 추진하는 사업이라고 했다. 내용을 읽다 보니 내 이름이 보였다. 지난 9월 오마이뉴스에 실린 내 기사 <은퇴 후 쌍둥이 손주 육아, 7년 노하우를 담았다>가 예시로 언급돼 있었다.



전자 우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노하우'는 외국어에 대한 국민 이해도 조사에서 평균 40% 이하의 이해도를 보이는 단어입니다. 특히 70세 이상은 10%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비법, 기술, 방법, 비결, 요령'등의 우리말로 바꿔 쓰면 더 쉽고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 '노하우'라니. 너무도 자연스럽게 썼던 단어였다. '비법'이나 '요령'이라고 쓰면 왠지 덜 세련돼 보일 것 같아, '노하우'로 쓰면 좀 더 전문적인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익숙함이, 누군가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언어의 편리함이 만든 거리


IE003538016_STD.jpg ▲글을 쓸 때 항상 독자를 생각한다. ⓒ uns__nstudio on Unsplash


나는 글을 쓸 때 늘 독자를 생각한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자신의 삶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정작 내가 쓴 단어 하나가 그 마음의 길을 막고 있었다면, 그건 이미 '소통'이 아니라 '독백'이다.


요즘 일상 속에서 외국어는 너무 흔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컨셉이 좋다" 같은 말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하지만 국어문화원의 조사에 따르면, 이런 단어들은 실제로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특히 나보다 연세가 많은 세대에게는 더 낯설고 어렵다. 언어의 편리함이 세대 간의 거리를 만든 셈이다.



전자 우편을 받은 뒤, 나는 해당 기사를 카카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올릴 땐 제목을 고쳐봤다. '은퇴 후 쌍둥이 손주 육아, 7년의 비법을 담았다' 단어 하나만 바꿨는데 글의 온도가 달라졌다. '노하우'는 어딘가 기술적이고 딱딱한 느낌이었는데, '비법'은 더 정겹고 생생했다. 그때 깨달았다. '쉬운 말'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에 닿는 말이라는 것을. 그 단어 하나가 독자의 마음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한다는 것을.



단어 하나를 다시 고르는 일



국어문화원 연합회에서 추진하는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은 단순한 언어 정화 운동이 아니다. 그건 모든 국민이 정보를 동등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자는 '소통의 평등 운동'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그 책임이 크다. 우리가 쓰는 한 문장, 한 단어가 사회 곳곳으로 퍼지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글 쓰는 이유 아닐까.



"정말 이 단어가 필요한가? 이 말을 대신할 우리말은 없을까"



그렇게 단어 하나를 다시 고르는 일, 그것은 단순히 '말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생각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요즘 세대는 짧고 빠른 말을 즐긴다. 하지만 언어의 본래 목적은 '소통'이다. 세련된 말보다 중요한 건, 서로의 마음이 닿는 말이다. 세대가 달라도, 학력이 달라도,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말. 그런 말이 결국 오래 남는다.


나는 이제 글을 쓸 때마다 '쉬운 말 쓰기'를 새로운 습관으로 삼으려 한다.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일, 그게 진짜 글쓰기의 본질이니까. 그리고 다시 한번, 국어문화원에서 온 전자 우편을 떠올린다. '노하우'를 '비법'으로 바꾼 그 문장에서, 글이 조금 더 따뜻해졌다는 사실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언어가 쉬워질 때, 마음도 가까워진다. 그게 바로 우리말의 힘이 아닐까.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7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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