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영하 <단 한 번의 삶>을 읽고
'단 한 번의 삶.' 제목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어떤 질문 앞에 선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가. 아니, 한 번뿐인 인생이라면, 나는 무엇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가. 김영하 작가는 <단 한 번의 삶>(25년 4월 6일)에서 그간의 소설과 강연, 팟캐스트를 통해 보여 주었던 명민함 대신, 한결 차분하고 간결한 언어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화려한 문장보다는 짧은 호흡으로, '살아낸 시간'의 무게를 조용히 되새긴다.
나는 평소 김영하 작가를 지혜롭고 명쾌하며 유연한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 여겨왔다. 그의 언어는 언제나 단단한 통찰을 품고 있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번 새로웠다. <여행의 이유>에서 보여준 그 낯선 세계를 향한 호기심, <말하다>에서의 언어에 대한 예리한 감각은 늘 나를 사로잡았다. 그래서 나는 이번 책에서도 그 특유의 '김영하다움' 즉, 명석함과 담대함이 빛날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이번 책을 덮고 난 뒤, 그가 이전과는 다른 결을 지니게 되었음을 느꼈다.
<단 한 번의 삶> 은 이전의 김영하처럼 세상을 향해 단호한 메시지를 던지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한가운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간다"라는 사실을 담담히 고백하는 책이다. 작가는 이제 인생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지나온 시간들을 '기억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말한다.
"후회 없는 삶은 없고, 덜 후회스러운 삶이 있을 뿐이다."
이 대목은 책 전체의 주제이자, 작가가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함축한다. 우리는 다만 매 순간의 불완전함을 감내하며 살아갈 뿐이다. 어쩌면 작가가 말하는 '단 한 번의 삶'은, 어떤 성취나 결실의 이야기가 아니라, 후회를 끌어안고 다시 걸어가는 인간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인지 모른다.
책 곳곳에는 '나이 듦'에 대한 사색이 묻어난다. 그는 젊은 날의 패기보다 '지나온 삶을 품는' 용기를 이야기한다. 예전의 작가가 세상을 향해 날카롭게 질문을 던졌다면, 지금의 그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가."
이 문장은 독자에게도 묵직하게 돌아온다. 한때는 삶의 속도를 앞질러 달리는 것이 능력이라 믿었지만, 이제는 잠시 멈추어 뒤돌아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시간'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마음을 두드렸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인생을 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시작과 끝이 공존한다. 작가의 글은 그 겹겹의 시간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상처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것은 나이 들어가는 일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에서 이전처럼 '패기 있는 선언'을 기대했지만, 대신 '조용한 수긍'을 만났다. 처음에는 낯설었다. 그러나 곰곰이 되짚어보니, 그것이야말로 성숙의 징표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김영하 작가는 지금 그 어려운 일을 아주 단순한 문장으로 해내고 있다.
책을 덮고 나면, 내 삶의 장면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지나친 선택, 후회스러운 말, 돌이킬 수 없는 관계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든 시간이었다는 걸 이 책은 일깨워 준다.
"인생의 의미는 정답이 아니라, 우리가 붙잡고 싶은 이야기 안에 있다."
<단 한 번의 삶>은 우리 각자가 그 '붙잡고 싶은 이야기'를 다시 쓰게 만드는 책이다. 김영하 작가가 이번 책에서 보여주는 변화는, 작가로서의 후퇴가 아니라, '인간 김영하'로의 회귀다. 그는 더 이상 완벽한 문장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대신, 불완전한 자신과 화해하려 한다. 그리고 그 솔직한 태도가, 어쩌면 이전의 어떤 책보다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요즘처럼 '자기 계발'과 '성공의 언어'가 넘치는 시대에,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정말 중요한 건, '한 번뿐인 삶을 얼마나 잘 살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냈는가'가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인생의 이정표 앞에 서 있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다. 삶을 향해 지나친 확신보다 약간의 의심을 품고 싶은 사람, 후회 속에서도 계속 걸어야 하는 사람, 그리고 자신에게 조금은 관대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단 한 번의 삶>은 우리에게 말없이 건넨다.
"괜찮아, 그래도 잘 살아왔어."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753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