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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나요? 발밑 대신 달을 보고 걷던 당신을

[서평] <달과 6펜스>를 다시 읽으며

by 김남정

오래전 학생들과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함께 읽고 토론한 적이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가족과 직업을 버리고 떠나는 대목에서 학생들은 크게 반응했다.



"가정을 버린 사람을 왜 이해해야 하죠?"


"그건 예술이 아니라 이기심이에요."



학생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나 역시 한때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었다.


"만약 여러분이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이 있는데, 그것이 세상이 말하는 '옳은 길'과 다르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잠시 토론 공간이 조용해졌고, 그제야 몇몇 학생들이 스트릭랜드의 선택을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이 작품이 단순히 '예술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진정성'을 묻는 소설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다시 이 책을 읽었다. 이번에는 예전보다 훨씬 조용하게, 그러나 깊게 다가왔다. 예전엔 이해할 수 없던 주인공의 고독과 집착이 이제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한 절실한 몸부림"으로 읽혔다.



달과 6펜스의 의미


IE003540323_STD.jpg ▲책표지 ⓒ 민음사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는 런던의 평범한 증권 중개인 찰스 스트릭랜드가 중년의 나이에 돌연 가족과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화가의 길로 떠나는 이야기다. 아내와 두 아이, 사회적 평판까지 내던진 그의 선택은 당시 사회의 도덕적 기준으로 보면 '광기'이자 '비윤리'였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냉혹하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서머싯 몸은 이 인물을 단순히 비정한 남편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스트릭랜드의 행위를 통해 인간의 본능적인 자유 욕망과 예술적 충동이 문명사회 속에서 얼마나 억눌려 있는지 드러낸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정해진 틀 안에서 살도록 강요받는다. 그러나 예술가는 그 틀을 부수고 자기 안의 신을 찾아 나선다."


이 문장은 예술가의 선언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실존에 대한 통찰이기도 하다.



제목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상징한다. '달'은 인간의 꿈과 예술, 내면의 순수함을 뜻하고, '6펜스'는 물질적 현실과 생계를 의미한다. 작가는 인간이 달을 바라보다가 발밑의 6펜스를 놓치거나 밟고 지나가는 존재라고 말한다.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평생 살아가는 것과, 모든 것을 잃더라도 진짜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중 무엇이 더 비극적인가?"


스트릭랜드는 결국 문명사회를 떠나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향한다. 그곳은 돈과 체면, 윤리의 규범이 작동하지 않는 세계다. 그는 그곳에서 원시적인 삶을 살며,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찾던 자유를 얻는다.



삶과 예술, 그리고 자유



타히티는 그에게 단순한 도피처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한 정신의 공간'이었다. 그는 문명의 언어 대신 원시의 색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그의 선택은 세상으로부터의 도망이 아니라, 인간 본연으로의 귀환이었다. 그러나 그 자유는 고독과 맞닿아 있었다. 그는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그가 남긴 그림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는 끝내 만족했다. 왜냐하면 그에게 예술은 명성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림을 팔기 위해 그리지 않았다. 그는 살아 있기 때문에 그렸고, 그림 속에서만 완전한 자유를 느꼈다."

100여 년 전 쓰인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달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발 밑의 6펜스를 줍고 있는가?"


참, 어려운 질문이다.



오늘 우리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아간다. SNS와 직장 그리고 사회적 평가 속에서 '보이는 나'에 맞추려 애쓴다. 그런 점에서 스트릭랜드의 파격적인 결단은 지금 시대에도 불편하면서도 매혹적인 도전처럼 읽힌다. 그의 선택은 성공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것이었다. 그것은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으나 쉽게 실천할 수 없는, '진짜 자신으로 살고 싶은 욕망'의 극단적 형태였다.



<달과 6펜스>를 다시 읽으며 느낀 것은, 스트릭랜드의 이야기가 단지 예술가의 서사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독과 해방의 여정이다. 작가는 냉정한 문장으로 문명의 위선과 인간의 욕망을 해부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깊은 연민이 흐른다.


"삶은 타협의 연속이지만, 예술은 단 한 번의 진실이다."


이 문장을 곱씹으며 책을 덮는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달을 바라보며 걷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그 시선을 거두고, 발밑의 6펜스를 세는 법을 배웠다. <달과 6펜스>는 그 잃어버린 시선을 다시 들게 하는 책이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77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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