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나 한 시대와 한 인간을 읽는 일은 그 속에 착종하고 있는 수많은 모순을 상대하는 일입니다.
시제와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비판은 처음부터 부정적 결론을 염두해 두는 비방입니다.
공자 어록에서 많이 알려진 명구입니다. 기소불육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마라.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명구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공자의 유아론(唯我論)이라 비판됩니다. 귀곡자는 내가 원치 않는 것을 베풀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원치 않는 것을 그에게 베풀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민주공화국에서도 직접민주제가 실현되는 나라는 없습니다. 대의제(代議制)입니다. 대의제는 중간계급을 승인하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그 중간계급이 실은 민(民)보다는 인(人)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중간계급은 경연처럼 최고 권력까지 규제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정치 구조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보입니다. 예외 없이 이러한 계급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공자와 <논어>가 장수하는 역설적 이유입니다.
종법 사회에서는 학(學)이란 관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지배-피지배라는 2항 대립의 물리적 구조에서 통치 철학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힘에 의한 지배와 혈연에 의한 계승이면 충분했습니다. 신분만 타고나면 공부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의 붕(朋)도 없습니다. 수직적 위계만 존재했습니다. 제자(弟子)라는 말도 없었습니다. 나이 많은 학생은 동생 같고, 나이 어린 학생은 아들 같은 이런 관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초기에는 도(徒)라고 불렀습니다. 일종의 종복(從僕) 개념이었습니다. 이처럼 삼엄한 위계질서가 무너지는 과도기가 공자의 시대입니다. 공자와 <논어>의 세계가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관계에 대한 개방적 담론입니다. 그래서 <논어>를 인간관계론의 보고(寶庫)라고 했습니다. 인간관계가 역동성을 발휘하는 계기가 사군자(士君子)라는 제3 계급의 등장입니다. 지배-피지배라는 2항 대립 구조에서 제3항이 추가된다는 것은 혁명적 변화입니다. '가위'와 '바위'로만 승패를 가르는 게임에 '보'가 등장한 것과 같습니다. '가위-바위-보'의 구조가 되면 사회의 역동성이 증폭됩니다.' 그 일환으로 나타난 것이 '인간'에 대한 주목이었고 '인간관계'의 발견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카지마의 글에는 불필요한 수식어가 일절 없습니다. 이 사람 일찍 죽겠구나 싶을 정도로 엄숙한 문장입니다.
자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형식'이었습니다. 절차와 형식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생리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부분을 끝내 해결하지 못하지만 끝까지 공자를 지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