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는 사회의 본질입니다. 사회에 대한 정의가 많지만,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오랜 수형 생활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지하철에서 누가 어느 역에서 내릴 것인가에 대해서 거의 정확하게 예측합니다.
자본주의 역사적 존재 형태가 도시입니다. 그리고 그 본질은 상품교환 관계입니다. 얼굴 없는 생산과 얼굴 없는 소비가 상품교환이라는 형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관계입니다. 얼굴 없는 인간관계, 만남이 없는 인간관계란 사실 관계 없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유해 식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우리 시대의 삶은 서로 만나서 선(線)이 되지 못하고 있는 외딴 점(點)입니다. 더구나 장(場)을 이루지 못함은 물론입니다.
공자의 핵심이 '인(仁)'이라고 한다면 맹자의 핵심은 '의(義)'라 할 수 있습니다. 의(義)는 인(仁)을 사회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仁)이라는 글자가 '두 사람'을 뜻합니다. 인간관계입니다. 인간관계가 곧 사회입니다. 그러나 그 강조점에 차이가 있습니다. 공자가 춘추시대의 사람이라면 맹자는 전국시대의 사람입니다. 그 시대적 상황의 차이가 반영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국시대는 글자 그대로 전쟁 방식의 사활적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때입니다. 인간관계보다 사회관계가 더 절박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맹자>에서 가장 높게 평가되는 부분은 곡속장의 이양역지보다는 민본사상(民本思想)입니다.
진정한 즐거움이란 독락(獨樂)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맹자의 여민락입니다.
<초사>에서 인간 본성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DNA로서 대표되는 생명은 생명 그 자체의 서바이벌이 본성이라고 했습니다. 생명의 그러한 본성을 선악 개념으로 재단할 수 없습니다. 선과 악은 사회적 개념입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절도(竊盜)는 선악 개념으 재단되지 않습니다.
맹자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확충함으로써 그 시대를 극복하려고 하고, 순자 역시 인간의 악한 본성을 직시하고 그것을 적절히 규제함으로써 춘추전국시대를 뛰어넘으려고 했습니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다같이 목적론적 개념입니다. 맹자는 인의예지라는 네 가지의 선단(善端)을 하늘로부터 타고났다고 주장합니다. 맹자의 천성(天性)은 공자의 천명(天命)에 비하면 훨씬 현실화된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몸속에 인성(人性)으로 체화되어 있습니다. 후에 주자에 이르면 이러한 논리가 객관화되어 천리(天理)가 됩니다. 객관적 관념론이 됩니다. 이처럼 성론은 천명에서 천성을 거쳐 천리로 발전됩니다.
우리가 제일 많이 배우고 가장 쉽게 배우는 대상이 사람입니다. 사람이 최고의 교본입니다.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한다(觀於海者難爲水)." 큰 것을 깨달은 사람은 작은 것도 함부로 이야기 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그 화살이 사람을 상하게 않을까봐 근심하고(矢人惟恐不傷人), 반대로 방패만드는 사람은 사람이 상할까봐 근심한다(函人惟恐傷人). 그러나 화살 만드는 사람은 하는 일이 그래서 그런 것이지 사람 자체가 어찌 불인(不仁)하겠냐고 합니다. 무당과 관(棺) 만드는 사람도 마찬가지다(巫匠亦然). 무당 옛날에는 의원이었습니다. 병을 낫게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당은 사람이 죽을까봐 근심합니다. 장(匠)은 관 만드는 사람입니다. 관을 짜서 팔아 생활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죽지 않을까봐 근심합니다. 맹자는 이것을 인간성과는 관계없는 사회적 조건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술부가불신(術不可不愼)이라고 합니다. 술(術)이란 직업이나 생업을 뜻합니다. 생업을 신중하게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개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그 개인이 처한 사회적 조건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승인합니다. 맹자의 사회적 관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