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떠나고 만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종착지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변화된 자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비단 여행에서만 확인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하면 여행만 여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 하루하루가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통과 변화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 형식입니다. 부단히 만나고, 부단히 소통하고, 부단히 변화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엾이 사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사정을 구구절절 다 얘기하면서 살아요? 그냥 욕먹으면서 사는 거지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대개 먹물들은 자기의 사정을 자상하게 설명하고 변명까지 합니다. 못 배운 사람들은 변명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짧은 것이라 하더라도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사람이 아예 없습니다. 그냥 단념하고 욕먹으면서 살 각오를 합니다.
구구절절 자기 사정 늘어놓는 사람치고 썩 좋은 사람 별로 없습니다. 자기변명 없이 욕먹으면서도 침묵하는 사람 중에 좋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둘러보았더니 난처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내 짜장면은 없었습니다. 아예 시키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당연히 한 그릇 얻어먹는 줄 알고는 좀 있다가 먹겠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교도관들도 그 말에 조금은 당황했습니다. 나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 큰 실수를 하다니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민망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입니다.
이 짜장면 사건(?)의 교훈이 바로 나 자신에 대한 반성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호의를 항상 기대하고 있었던 자신에 대한 반성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반성이 있습니다. 나는 직관적 판단, 그것도 재빨리 하고 있었습니다. 수학 문제도 빨리 풀고 상황 판단도 빨리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때 굳게 결심했습니다. 절대로 미리 속단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한 박자 늦추어 대응하자. 심지어는 나를 지목해서 욕하는 것이 분명한 경우에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나보고 하는 거 아니지?“
원테쥔(溫鐵軍)은 <백년의 급진>에서 자본주의는 유럽 국가들이 국내의 빈민층과 범죄인들을 식민지로 유출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합니다. 금은의 유입과 노동력의 유출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자본의 유입은 자본의 상대적 과잉이 되고 노동력의 유출은 노동력의 부족으로 이어져 자본과 노동의 계급 타협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 계급 타협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중산층 중심의 다이아몬드형 사회 구성이 가능한 것이 바로 콜럼버스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모든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이 바로 이러한 근대의 발전 경로를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중국은 근대사회의 이러한 발전 경로를 모델(Path-dependency)로 하지 않고 내발적(內發的) 경로를 만들어 간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근대화 모델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인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인구의 50% 정도에 달하는 빈민층을 껴안고 가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렴한 자본의 공급과 빈민층의 이출(移出)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덜 비참하다니요. 그러나 남미에서는 원주민들을 개종시키려고 했고 또 혼혈이 이루어졌지만 북미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개종과 혼혈도 노동력 권리와 노동력 재생산 정책의 일환이라고 하지만 북미의 완벽한 인종 청소보다는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남미의 가톨릭 신부가 부패 집단이었음에 비해 북미의 칼빈파 청교도는 청렴했다고 합니다. 부패와 청렴의 의미가 역전되기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북미에서는 원주민들을 청소합니다. 개종, 혼혈 일절 없었습니다. 인디언은 사탄의 보병이었습니다. 인디언은 사탄의 보병이었습니다. 잔혹한 인종 청소가 행해집니다. 인디언 보호구역에 극히 소수가 ‘보관’되어 있을 뿐입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 최소한 4천만에서 6천만의 인종 청소가 행해졌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했던 것은 홍역, 천연두, 매독 이런 질병에 원주민들은 무방비였다는 사실입니다.
유럽의 근대사는 한마디로 나의 존재가 타인의 존재보다 강한 것이어야 하는 강철의 논리로 일관된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논리를 모든 나라들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조선을 흡수 합병한 메이지(明治) 일본의 탈아론(脫亞論)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논리의 희생이 된 나라들마저도 그러한 논리를 모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심지어는 그러한 논리와 싸워야 할 해방운동마저 그러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개인이든, 회사든, 국가든 언제나 ‘나의 존새성’을 앞세우고 다른 것들을 지배하고 흡수하려는 존재론의 논리에 한없이 충실합니다. 더러는 자신을 낮추거나 뒤에 세우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철저하게 계산된 프로그램의 일환일 뿐입니다.
사람의 판단력에 끝까지 집요하게 끼어드는 것이 콤플렉스입니다. 콤플렉스는 합리적인 판단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본인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라틴아메리카는 ‘아버지 죽이기’로 불리고 있을 만큼 유런 정전(正典)에서 자유롭습니다. 우리의 경우 피카소를 결별할 수 있는 미술인은 없습니다.
콤플렉스는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서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자기의 하위에 그 사람을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콤플렉스를 위무하려는 심리적 충동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라틴아메리카를 밑에 깔려고 하다가 앗 뜨거워라 놀랍니다.
보르헤스는 ‘20세기의 디지아너’로 불립니다. 유럽의 탈근대 철학자들, 이를테면 데리다, 움베르토 에코, 미셸 푸코, 알튀세르 이런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이 바로 아르헨티나 출신 보르헤스입니다.
86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71세에 이혼하고 86세에 또 결혼합니다.
인간의 자유는 카르마karma를 제겋는 일입니다. 부정적 집합표상(集合表象)을 카르마라고 합니다. 표상(representation)은 인식 활동입니다. 우리는 남산을 바라보지 않고도 남산을 표상할 수 있습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대상과 격리되어 있지만 대상을 재구성하는 인식 능력입니다. 대상은 그에 대한 1개의 표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표상 즉 집합표상으로 구성됩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고유의 집합표상이 있습니다. 중세에는 마녀라는 집합표상이 있었습니다. 마녀라는 집합표상은 부정적이란 점에서 카르마입니다. 이 카르마를 깨뜨리는 것이 달관입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선언이 바로 ‘카르마의 손(損)’입니다. 카르마를 깨뜨리지 않고는 그 시대가 청산디지 못합니다. 봉건제의 집합표상이 청산되지 않는 한 프랑스혁명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봉건제의 집합표상은 완고하고 위력적입니다. 귀족, 성벽, 기사, 아름다운 공주와 왕후, 화려한 마차 행렬 그리고 귀족들에 얽힌 존경스러운 신화와 공주의 아픔에 가슴 아파하는 서민들의 연민도 집합표상을 구성합니다. 참으로 위력적입니다. 한 사람의 개인은 물론이고 한 시대가 다음 시대로 나아가려면 부정적 집합표상인 카르마를 청산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