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사람으로서 글쓰기
서도(書道)의 관계론에 관해서 이야기하려면 우선 내가 붓글씨를 잘 쓴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인정해야 합니다. 사실은 내가 글씨를 참 많이 썼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시댁 식구들을 장악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의복이나 음식 솜씨 등 다른 범절로 장악하기도 하지만 문화적 장악력에 있어서는 이 두루마리의 낭독이 위력적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쓴 글씨 중에 자랑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서울>이란 작품입니다.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하여 예술의전당에서 100인 초대전을 개최했습니다. 예술의전당 서예부장이 전화를 걸어서 출품 요청을 했습니다. 두 번 세 번 전화가 왔습니다만 일단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서울을 주제로 한다면 무엇을 쓸 수 있을까 혼자서 했습니다.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아예 ‘서울’을 쓰자. ‘서’자는 북악산,‘울’자는 한강으로 쓰자. 그리고는 여러 가지로 시필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산을 그려서 ‘서’자로 만들고 ‘울’ 자를 강물처럼 썼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다 한시 한 수를 방서(傍書)로 썼습니다.
북악무심오천년(北岳無心五千年) 한수유정칠백리(漢水有情七百里)
"북악은 5천 년 동안 무심하고, 한수는 유정하게 700백리를 흐른다" 북악과 한수, 무심과 유정, 5천 년과 700리가 대(對)가 되도록 했습니다. 북악은 왕조 권력을, 한수는 민초들의 애환을 상징해서 썼다고 밝혔습니다. 왕조 권력은 권력 투쟁에 몰두하여 백성들의 애환에 무심하지만 한강 물은 민초들의 애환을 싣고 700리 유정하게 흘러간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그냥 두기가 아까웠습니다. 해설까지 곁들여 초대전에 보냈습니다. 주최 측에서 대단히 반색했습니다. 예술의전당 전시장에 혼자 조용히 가 봤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그 많은 전시 작품 중에 ‘서울’을 주제로 한 작품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서도에서 더 중요한 것은 환동(還童)입니다.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순수합니다. 전 시간에 대교약졸(大巧若拙)을 소개하면서 최고의 기교(大巧)는 졸렬한 듯하다(若拙)고 했습니다. 이 때 대(大)f라는 것은 최고의 의미이고 노자의 경우 최고의 준거틀은 당연히 자연이라고 했습니다. 기교라는 것은 반자연(反自然)입니다. 최고의 기교란 졸렬한 듯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뜻입니다.
자기를 드러내려는 작위(作爲)가 개입되면 그 격이 떨어집니다.
명필은 오래 살아야 된다고 합니다. 오래 사는 것만큼 세상을 달관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장은 선생님 '글씨' 자랑 한마당이다.
점잖은 문장으로 우끼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서울>이라는 작품을 보자마자 잠시 숨을 멈추게 되었다. 헉!
그 동안 서예의 세계를 고리타분한 할배들의 선비놀이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여자들은 가사, 육아, 봉양, 성. 생계 노동을 담당하고 남자들은 가부장제 사회 권력을 유지하면서 삶을 관조하고 향유하고 이상향을 동경하며 가정이란 기초적 현실과 유리하면서 자신의 욕망과 세상을 탐하느랴 생활의 짐을 여성에게 떠맡기며 여지껏 살아온게 나 개인의 (그러나 보편적이라 예상하는) 가족의 역사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생님의 어머님이 시집살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의 한 방편이 이 장에서 소개된 것을 유심하게 생각했다. 지주의 딸로 있는 집안의 며느리라 쉬이 무시당하지 않았을텐데도 시집 올 때 <판소리>, <적벽부>, 집안의 제문까지 두루마리로 여러 개 챙겨 자신이 배운 여자임을 드러낸 점 말이다. 출가외인이라는 신분으로 밀려나 생면부지 시댁식구과 갑을 관계로 위치되는 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있는 집도 저러 했을진데 우리 집안의 여자들을 보면 집안 문화라는게 비참한 수준이다. 우리 할머니는 한글을 모르셨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 여자들도 글을 읽고 글을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인문학 강연이나 종교인의 수장, 예술 장인, 하다못해 요리사들도 남자가 꿰차고 있다. 여성 대통령이 나왔지만 실망스러웠고 남성 중심의 권력은 여성의 출산과 육아라는 생애주기 앞에서 경제적 가장으로 견고하다. 여성의 모성을 신성하고 도덕적인 사회적 의무로 전가하여 가부장제를 도모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회를 지탱하는 원초적 뿌리 노동력을 '맘충'이라며 폄하하고 극혐하기도 한다. 그 사이에 끼어있는 여성들은 때로 자기들끼리 내부 총질을 하기도 한다.
나는 요즘 가족을 자주 생각한다. 나의 담론은 가족의 불행, 가족의 비극, 가족의 역사다. 두 사람의 결합으로 두 집안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결혼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장이 된다. 가족 안의 서열과 권력이 쟁투된다. 전복되면 집안에 사람이 잘못 들어와 사단이 났다고 한다. 굴종할 것인지 순응할 것인지 결계를 칠 것인지 착한년과 미친년 사이를 번민한다. 가족은 때론 족같다. 다들 자기 노릇하느랴 자기 입장에서 물러날 수 없기에. 그 마지노선을 뚫고 정면 돌파한 진격의 미친년은 스칼렛 오하라 처럼 무 하나를 뽑고 '모든게 다 너무 했지'를 중얼거린다.
내가 인터넷에 공개된 글을 쓰게 된 건 얼마되지 않은 기간이다. 이렇게 쓰게 된 이유는 '자기 개조' 딱 하나다. 남 잘되게 해주고 덕 쌓고 살면 금상첨화지만 실로 어려운 일이니, 적어도 내 자신에게 만큼은 어느날 죽음이 왔을 때 '고생했지만 재밌게 속시원하게 행복하게 제대로 알차게 살았어' 자평하고 싶은 것이다. 가난한 집 딸 문맹이었고 장애인이었던 나의 할머니부터 글을 쓰기까지 하는 나. 여자가 글을 안다는 것. 앞으로 더 남성은 여성의 말이 지리멸렬하다 하여 듣기 싫어 도망 갈 곳이 없어질 것이다. 꼭 그러길 바란다. 누르고 참고 폭발하고 파괴되는 삶의 현장에 제대로 듣고 제대로 말하는 평화가 오길 바란다. 모든 곳에 모든 자가 어울려 존엄하게 살기를 바란다. 나는 가족의 역사 악전고투 생존자로서 점점 더 많은 글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옴을 느낀다. 과거 현실 도피성 지식 섭렵 공부에서 벗어나고 있다. 공중부양술의 도에서 발바닥으로 딛는 도로 체감되고 있다. 죽는 날까지 끝이 없는 공부가 되길 바란다. 아무리 큰 불행이 와도 큰 안락이 와도 내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