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담론> 23장 떨리는 지남철

by Rx

춘추시대에는 성현의 말씀이나 경전에서 그 근거를 찾았습니다.


진리란 이론의 준거를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Here and Now’ 그리고 How가 물리 방식의 실사구시라면, ‘Bottom and Tomorrow’와 Why가 진리 방식의 대응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개념을 재구성하는 것이 진리 방식의 대응입니다. 양명학과 강화학은 근본은 천착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전인격적인 개인이 아니라 집단적 지성입니다.


야스퍼스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오히려 경제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더 절실합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일생에 들어가 있는 시대의 양(量)을 준거로 해야한다는 주장이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양심은 이처럼 인간과 세계를 아우르는 최고 형태의 관계론이면서 동시에 그것은 또한 가장 연약한 심정에 뿌리 내리고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품성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꾸준히 그 길을 지키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이념이나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친구들의 권유를 외면한다면 두고두고 양심의 가책으로 남을 것 같아서 참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꾸준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곤륜산을 타고 흘러내린 차가운 물 사태(沙汰)가 사막 한가운데인 염택(鹽澤)에서 지하로 자취를 감추고, 지하로 잠류(潛流)하기 또 몇 천리, 청해(靑海)에 이르러 그 모습을 지표로 드러내어 장장 8,800리 황화를 이룬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르키는 방향을 믿어서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신영복 <담론> 22장 피라미드의 해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