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담론> 22장 피라미드의 해체

by Rx

조선조 초기 의정부 중심제를 주장하던 개혁 사림파가 나중에는 절대군주제를 지지하고, 절대군주제를 지지하던 훈구 척신 세력이 나중에는 의정부 중심제를 고수합니다,


모순 극복에는 사상과 주체가 동시에 등장해야 합니다. 사회 변혁은 사상 투쟁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사상 투쟁은 그 투쟁을 견인해 나갈 주체가 있어야 합니다.


권문 세족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서 전혀 사고무친한 신돈(辛旽)이라는 승려를 발탁합니다.


결국 그러한 기득권 세력의 벽에 좌절하게 됩니다면 공민왕과 신돈의 개혁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다산의 여전론이 신돈과 정도전을 이은 것이기는 하지만 개혁 주체가 뒷받침되지 않은 유배 시절의 구상에 불과합니다.


사회 경제적 모순이 토지 중심의 내부 문제였음에 비하여 민족 모순은 외부와의 충돌입니다.


어느 왕조든 권력은 마상(馬上)에서 나옵니다. 무력으로 나라를 세웁니다.


정도전이 구상한 의정부 중심제는 이를테면 군약신강(君弱臣强)체제인 입헌군주제였습니다.


절대 권력은 고금을 막론하고 그 역성과 인성이 못 미치는 물리와 결합하는 것이 역사의 진리입니다.


하지만 개혁파가 도덕적 정의만으로 승부하려고 하는 것에 반해서 보수 우파들은 동원하지 않은 전략전술이 없습니다. 엄청난 기만과 정보를 동원합니다.


민족 투쟁에서는 무력하고 비겁한 반면, 국내의 계급투쟁에서는 예의 그 탁월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개혁 주체의 물적 토대가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그나마 선비 정신이라는 지식인의 전통이 견지될 수 있었던 것은 중소지주이긴 하지만 지주라는 물적 토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쟁으로 맹목이 된 중앙 정치는 수급으로 전공을 평가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신영복 <담론> 21장 상품과 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