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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굴개굴개 Nov 30. 2022

아트북, 그리고 어린이

NY Art Book Fair 2022 후기


아트북이 비단 어른들만의 것은 아닐 터. 뉴욕 아트북 페어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아트북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다채로운 프린트 기법인데, 그중 '실크스크린'은 단연 인상적이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재나 교구 등에 많이 쓰이지 않기 때문. 팝아트로 유명한 앤디 워홀이 애용했다는 이 방식은 공판화에 속한다. 또 다른 공판화 중 하나인 '스탠실'은 종이나 비닐에 구멍을 내고 물감을 묻혀 찍어내는 방식으로 구현이 쉽기 때문에 학교 미술 활동에도 많이 활용된다. 하지만 실크스크린의 경우 인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등 현장에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마도 관련 종사나 관심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이 기법을 모르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그래서 신선했다. 동시에 어린이 교재에 활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일반적으로 어린이 책에는 뚜렷한 아웃라인과 강한 색감이 많이 사용된다. 점과 선, 면 등을 이제 막 예술적 요소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보다 명확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허나 다양한 형태와 물성으로 미술적 자극을 주는 것 또한 예술적 감각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는 천진한 어린아이들의 그림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아이들의 그림이 어디 우리가 흔히 제공하는 이미지와 똑같기만 하던가? 새하얀 도화지(뿐만 아니라 허-연 벽에 이르기까지!)에 자기 마음대로 그리는 그림에서 우리는 기발한 상상력을 발견하곤 한다.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정해진 규칙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스로 창조할 수 있듯이 선의 경계가 모호하고, 여러 색과 물체가 겹쳐있는 그림에서도 아이들은 제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고 긍정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아이들이 직접 활동하기 어렵다면 새로운 기법을 활용해 어린이용 교재나 포스터 등을 제작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을 테다. 예컨대, 명화 감상을 할 때처럼 실크스크린 기법이 사용된 그림을 보고 작품의 분위기와 작가의 의도 등을 추론하고 실크스크린 기법에 대해 간단히 알아본 후, 비슷한 기법인 스탠실을 활용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재밌는 활동이 될 수 있겠다. 감수성이 자라나는 시기에 새로운 자극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



비교적 쉽게 시작할 수 있는 활동과 책들도 눈에 띈다. 단순히 긴 종이를 접는 형태만으로 흥미롭다. 접는 면마다 나눠서 그림을 그려도 되고, 긴 종이에 이어서 그릴 수도 있다. 다양한 질감과 모양의 벽을 프린트한 책은 그대로 현장에 가져가도 나무랄 데가 없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에 이토록 다양한 벽이 있구나' 하면서 관찰할 아이들이 떠오른다. 직접 우리 동네에 있는 벽을 사진으로 찍어서 책으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동네를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평소보다 꼼꼼히 관찰하지는 않을까. 생활 주제 중 하나인 '우리 동네'에 딱 걸맞은 활동이 될 수 있겠다.


일명 '벽돌 책' 옆의 아트북은 유아용 교재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유용해 보인다. 직선과 곡선, 도형이 모두 모여있는데 그 크기마저 다르게 해 놨다. 책을 넘기는 것만으로 예술의 기본 요소를 모두 경험케 하다니! 한눈에 반했다.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활용해 보겠노라 의욕이 마구 생긴다. 대략 A1 용지 크기로 색감이 진한 배경에 만화를 그린 작품도 있었다.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커다란 색지에 협동 활동으로 빅북 만화를 만드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볼수록 무궁무진하다. 아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아트북이 이토록 많다니. 내가 교육 계통에 종사했기에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걸까?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결국 예술이란 자연 본성에 가까워지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 아닐까. 흔히 훌륭한 예술 작품은 어린이와 닮았다 말한다. 세상을 편견 없이 순수하게 바라보는 동시에 솔직하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은 모든 예술가가 바라는 지점이 아니던가. 게다가 '책'이란 무릇 아주 어릴 때부터 접하는 오래되고 친근한 매체다. 이렇게 보니 어린이와 아트북. 참 잘 어울린다. 단순히 아트북을 통한 학습을 넘어서 언젠가 유명한 아트북 작가로 아이들의 이름이 올라갈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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