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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준 Oct 06. 2021

레바논 파병지에서 맞는 생일.

레바논 5월 15일(토)


파병지, 레바논에서의 생일을 맞이하였다. 우리는 아침 점호 간 생일을 맞이한 사람을 단상 위로 부르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전통을 만들었다. 나의 생일에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 기대하였고, 전날 저녁, 다음날 아침에 어떤 유머 있는 한 마디를 단상 위에 던짐으로서 사람들을 한번이라도 웃게 해줄까 고민하였다.


그때, 서부여단의 연락장교를 통해 서부여단 작전과와 예하 국가들의 아침 작전 회의가 있을 것이라고 단톡방에 전달을 받았다. 주말 아침, 그것도 생일날에 작전과 회의라니.


이틀 전 5월 13일 새벽 레바논 남부지방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 두발을 발사한 사건이 있었다. 다행스럽게 이스라엘의 영토까지 로켓포가 가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의 보복행위도 없었다.


하지만, 추가적인 도발이 있으리라 충분히 예상가능한 상황이었고, 이에 서부여단장은 예하 대대 작전과장들과 실무자들을 비상 회의에 소집했다.


아침 점호를 열외하고 작전과로 가서 화상회의를 실시하였다.


서부여단장의 지시 사항을 예하 대대에 전파하며 크게 두가지를 강조하였다.


하나는 준비상태. 상황은 정말로 급박하며 오늘과 내일을 고비로 상급부대는 판단하고 있었다.

유사시,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이에 대하여 대비를 할 것을 서부여단에서는 강조하였다.


두 번째는 존재감 과시였다. 순찰하는 병력이나 횟수를 증가시킴으로써 유엔군의 존재를 적대적인 세력들에게 과시하고, 무력 도발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자는 골자였다.

기존의 위임명령을 착실히 수행하자는 것이었다. 


모든 회의와 결과 보고가 끝나자 10시 정도 되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식당도 아침 잔반을 버리고 청소를 하는 시간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식당으로 가니 빵이 두 덩이 있었다.

아침부터 커피를 마시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속이 쓰릴까봐 참았다.


빵 두 덩이와 함께 먹으면 되지 않을까라는 위안을 삼으며 네스프레소 커피 머신으로 스타벅스 캡슐을 내렸다.


이사를 한 뒤의 고단함이 아직 가시지 않았고, 아침 7시부터 약 3시간의 작전 회의도 체력적으로 부담이 없지 않았기에, 빵과 커피를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얼굴 끝까지 이불을 덮고 잤다.


한 시간 반쯤 눈을 붙였을까 연락이 왔다. 보급장교님께 오늘 점심을 안먹냐라는 카톡이 왔다.

그래 아침은 빵 한조각으로 대충 때웠으니, 피곤하더라도 밥 먹고 자자 라는 생각에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에 가보니 마침 생일자 케이크에 대한 선호 조사가 있었다. 


보급장교가 나중에 케이크를 보급하기 전, 선호도의 조사하기 위해 지역의 유명한 베이커리 3군데를 조사하여 샘플을 받아왔다.

코로나로 인하여 직접 외부로 나가는 것이 제한되기 때문에, 현지인과 연락을 하며 직접 수고하여 준 것이다.


유명 베이커리를 조사하고, 해당 매장들의 위생을 점검하고, 가격과 배달 등 여러 조건을 협상하여 최적의 업체 한 곳을 선정, 진행해야 하는 현실적으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일들이었다. 이전부터 장난으로 조금도 쉬지말고 빨리 업무를 추진하여 내 생일전까지는 모든 업무를 마무리하여 케이크를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두어차례 말하였다.


업무에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케이크는 보급해줄 수는 없었으나 미리 선호도 조사용 샘플로 받아 식당에 비치함으로서 내가 먹을 수 있게 해 준 것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다.

샘플 한 조각을 받아서 자리로 돌아왔다. 


어찌보면 약 두달만에 먹어보는, 식빵 아닌 빵이었기에, 생크림과 올려진 과일을 보자 흥분이 되었다.

일단 사진을 찍어서 가족 단톡방에 올려서 생일을 잘 보내고 있다고 부모님께 알렸다.


한국에서 단 것을 즐기는 입맛은 아니었지만, 의도치 않게 단 것을 먹는 경우가 더러 있었고, 굳이 내돈 내고 사멱지는 않더라도 생크림은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약 두달 만에 먹은, 그니까 내 혀가 디톡스가 되었을때 느껴진 그 케이크의 단 맛과 생크림은 정말이지 묵직한 감동이었다. 그 첫 입이 달달하다 못해 얼얼할 정도로 미뢰가 자극 받았다.


케이크도 못얻어먹고 다닐거라 예상하셨던 부모님은 사진을 확인하시고 정말 좋아하셨다. 


밥과 케이크까지 먹고 좀 쉬자하니, 아침 결과보고를 바탕으로 대피소 훈련을 실시하였다. 오늘 내일이 여단에서는 고비라고 판단하였으니, 이해할만한 조치였다. 살면서 대피소에서 생일을 보내는 경험을 앞으로 몇번이나 할까.


대피호에서 한 두시간 앉아있다가 나오니 한국에서 생일 축하 카카오톡들이 쌓여있어서 하나하나 답장하였다. 고량주에 취한 지수와 보이스톡을 하며 웃고, 서울대 의대에서 공부하며 몸무게가 10kg이나 빠진 하민이와 영상통화하며 신기해했다. 


저녁은 민군작전과에서 생일 파티를 준비해주었다. 격리기간 2주를 포함하여 그 뒤에도 구운 고기를 먹지 못하였다.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귀한 냉동 한돈 냉동 삼겹살을 해동하여 숯불에 초벌하고 전기그릴에 구웠다. 와사비와 함께 먹고 흰 쌀밥에, 가져온 종갓집 김치까지 먹으니 더 이상 바랄 바가 없는 생일상이었다.

고기를 다 먹자 아무리 해외여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어찌보면 타지에서 맞이하는 첫 생일이었다.


생일이란 본인의 탄생을 축하하며 1년에 한번 주인공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날이다. 특별한 성취가 없더라도 존재 자체만으로 축하를 받는 기회이다. 본인이 속한 여러 사회, 말하자면 직장, 학교, 고등학교 시절 했던 대외활동 동아리까지, 다른 각 사회의 구성원들로부터 존재 자체에 대한 축하를 받으며 소속감을 확인하고 또 혹자는 그 안에서 정체성을 찾는다.


어찌보면 관심의 품앗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개교 기념일이나, 창립 기념일이 아닌, 해당 사회로부터 개인이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할 때 우리는 소속감을 느낀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 서비스에는 생일 기능이 있다. 본인이 설정하여 생일을 다른 이에게 알리는 것은, 수동적이기는 하지만 결국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다라는 것을 누군가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속한 사회의 모든 이에게 본인을 축하해 달라는 초대장을 보낸 것 아닐까. 


 그럼 카톡을 하지 않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생신은 누가 챙기나. 주로 자식들이 하겠지. 가족이 하겠지. 가장 기본적인 사회 하나가 남는구나.


늙어간다는 것은 사회가 단순화 되어지는 과정을 겪는 것이다. 직장에서 물러나며, 학교를 졸업한지 아득해지며 자식들이 떠나가는 것.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회가 적어지는 것. 

그럼 산다는 것은 하나의 사회, 부모의 가족으로 시작하여 많은 사회에 속하다가 늙어가며 단순화되어 다시 하나의 사회, 자식의 가족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구나.

하나의 사회라도 더 만들고 유지하려는 노력은, 경로당은, 생일의 품앗이구나.


아직 사회의 단순화를 겪을 시기가 아닌데 빨리 겪으면 그 또한 우울하겠다. 어디선가 전업 주부의 노동력을 비용으로 계산하는 수식 등을 본 적이 있다. 단순한 노동의 가치보다는 포기 되어진 우리 엄마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희생 비용도 포함 되어야 하지 않나. 


소속된 사회가 줄어드는 것. 나의 존재를 축하할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 내 생일을 함께 기뻐할 사람이 없어지는 것.


생일 축하해주신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엄마 수고했어. 26년전 오늘 한건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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