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한 번쯤은 해외에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순간 말이다.
해외여행을 가는 친구들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이었을까.
영화 속 백인들 사이에서 유창한 언어를 구사하는 나의 모습에 대한 환상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내가 속한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일까.
설명할 수 없는 가슴속 뜨거운 감정이 울컥 올라올 때마다
나는 이 세상을 정복하고 싶다가도, 한순간 사라지고 싶기도 했다.
나는 그 누구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또 그 누구에게도 완전히 이해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도무지 인정할 수 없었기에 끊임없이 헤매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는 사람,
그리고 내가 그렇게 바라보고 이해하고 싶은 사람을 찾아서.
그렇게 북미에서 20대 초반을 보냈고,
또 다른 나라에서의 1년을 지나
결국 내 나라로 돌아와 정착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그러나 사회생활은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고,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던 나는 조금씩 현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다들 ‘철들었다’고 말할 법한 그 시기.
본질을 찾아다니며 의미와 가치를 좇던 내가
처음으로 월급과 루틴의 안정감이라는 것을 배웠다.
나는 더 이상 세계평화를 노래하던 10대가 아니었다.
가족의 건강을 염려하고,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을 구분하고,
무엇보다도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인정하게 된 서른.
이 정도면 어른이 된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였고,
‘어리다’고 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겪은 오늘,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그리고 다시, 아프리카.
이 시간은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이 앞섰고,
나는 애써 ‘계획’이라는 걸 세워보지만
그마저도 내게 안정을 주지 못하는 공간에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서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외치는 삶이 나쁘지만은 않다.
이 미성숙한 고뇌마저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 날은 올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