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태양까지의 평균 거리는 1억 4900만km라고 한다.
상상조차 어려운 거리지만, 숫자로는 아주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엄마와 나의 거리는 겨우 다섯 발자국이다.
움직이면 닿고, 부르면 답이 들리는 거리.
우리의 관계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런 안정적인 거리를 만들어왔다.
문득 생각한다.
그녀와 사귀던 시절, 그때 우리의 거리는 얼마나 떨어져 있었을까?
지하철 3정거장 정도의 가는 데 15분이면 충분한 거리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의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보다 훨씬 복잡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12년이라는 나이차이에서 오는 살아온 거리.
그녀가 경험한 세계와 내가 지나온 세계 사이의 틈.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 서로 오해했던 순간들이 만든 보이지 않는 거리.
가까이 있었지만 정작 너무 가까워서 보지 못했던 마음의 거리.
그녀가 말 없이 나를 바라보던 그 순간의 거리도 있다.
그 눈빛은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안에는 말하지 못한 수많은 감정들이 숨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 있다.
서로 침묵하던 시간들이 쌓여 만든 거리.
말하지 않은 말들 사이에 머물러 있던 거리.
아무 일 없던 듯 하루를 보냈지만, 그 속에 보이지 않게 남아 있던 거리.
헤어지던 날 그녀가 돌아서 걸어가던 뒷모습까지의 거리도 하나의 기억이다.
그 몇 미터 사이에 우리는 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고 그 짧은 거리 속에서 이미 끝나버린 것들을 느끼고 있었다.
시간 또한 또 다른 거리를 만든다.
그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많은 변화의 거리가 있다.
그때는 몰랐던 것, 그때는 말하지 못했던 것,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지금에서야 조금씩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를 늘 가까웠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고 마음만 조금 열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거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의 마음은 늘 한 발자국쯤 모자랐다.
그 작은 한 발을 끝내 내디디지 못한 채 우리는 각자의 세계로 돌아갔다.
지금에서야 알 것 같다.
마음의 거리는 발자국으로 잴 수 없다는 걸.
사람 사이 거리란 지하철 몇 정거장이 아니라 서로에게 얼마나 다가가려고 했는가로 결정되는 거라는 걸.
지구와 태양의 거리는 알고 있어도 사랑의 거리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 평생 모를 수도 있고 그렇기에 여전히 기억 속에서 그 거리를 재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