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의 아이코닉 스포츠카, RX-7.

로터리 엔진 스포츠카의 대명사가 되다

by 정영훈




마쓰다 RX-7.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이름입니다.

유명 만화책 원작의 레이싱 애니메이션 '이니셜 D'와 '완간 미드나이트', 뿐만 아니라 레이싱 영화 '분노의 질주'에서도 나온 적이 있으며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매체에서 등장한 RX-7.


지금까지도 여러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마쯔다에서 RX-7의 후속을 암시하는 컨셉카인 '아이코닉 SP', 그 이전에는 RX-VISION을 선보이는 등 RX-7의 헤리티지를 계속하여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RX-VISION과 ICONIC SP.


오늘은 마쯔다의 상징 로터리 엔진을 장착, 곡선과 직선의 아름다움이 잘 담겨있는 디자인으로 여러 매니아들의 마음속 불씨를 지핀 스포츠카

RX-7 시리즈의 역사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RX-7 시리즈의 시발점, 1세대 RX-7.(SA22C, FB3S)]





독일 NSU (아우디의 전신)에서 로터리 엔진의 라이선스를 구매하여 여러 개발과 보완을 거쳐 다양한 로터리 엔진 차량을 개발한 마쓰다는 아무런 무리 없이 이 성공을 이어나갈 것처럼 보였지만,

얼마 안 가 오일쇼크가 발발하고 석유수출국 기구인 OPEC의 견제도 함께 받으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마쓰다는 경영진을 새로 교체하는 등 내부적 문제를 조금씩 풀어나갔으나 여전히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쓰다는 로터리 엔진을 탑재한 경량 스포츠카를 제작하고자 하는 열망이 남아있었고, 이 아이디어는 프로젝트 X110, X020A / X020G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윤곽을 잡아갔습니다.


Mazda X020A Project.
Mazda X020G Project.


X020G 프로젝트용으로 특별히 설계된 엔진도 있었을 만큼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던 마쓰다는 73년 X408 프로젝트에서 X516과 X517 프로젝트로, 그리고 1976년 X605 프로젝트로 넘어가면서 더욱 명확하게 계획을 세웠는데요,

(후에 X517 프로젝트는 마쓰다 카펠라, 수출명 마쓰다 626의 기반이 됩니다.)


X020G Project 21A Engine. ​
이 프로젝트들은 마쯔다의 3번째 대표이사였던 마쓰다 코헤이가 이끌었고, 모치즈키 스미오가 수석 엔지니어, 그리고 현재 마쓰다의 디자인 임원으로 활동 중인 이쿠오 마에다의 아버지, 마타사부로 마에다의 책임 하에 디자인 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Like father, like son. Matasaburo Maeda & Ikuo Maeda. ​
당시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던 오노 타카시의 X605 프로젝트 스케치. ​
자동차 제조업체들을 뒤흔들어놓은 오일쇼크와 더욱 엄격해지는 환경 규제 기준, 게다가 경제 여건도 좋지 않아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가 크게 오르면서 수출도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이 적자로 추락하고 있는 제조업체였던 마쓰다에게 70년대는 매우 어려운 시기였는데요,

마쓰다 경영진 내에서도 일부 분쟁이 오고 가면서 계속하여 희미해져가는 X605 프로젝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진행시켰던 이 프로젝트에서 로터리 엔진 총책임자 야마모토 켄이치와 그의 엔지니어들은 "Phoenix Project"를 통해 REAPS (Rotary Engine Anti-Pollution System)라고 불리는 기술을 개발,

연비 40%의 증가뿐만 아니라 1976년 당시의 배기 규제 기준을 충족하는 12A 로터리 엔진을 개발하는 기적을 일으켰고


야마모토 켄이치와 그의 엔지니어 팀 (위) 12A Prototype & X605 12A. (아래) ​
Final Sketch & Clay Models. ​
2도어, 2+2인승 쿠페로 잡은 정체성, 그리고 어느 특정 시장을 겨냥하지 않고 모두를 사로잡기에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하며 탄생시킨 디자인을 모두 담은 X605 프로젝트,


1:1 Clay Model.


로터리 엔진을 의미하는 "R", 미래를 상징하는 기호 "X", 로터리 엔진 차량 개발 순서로는 6번째 차종이지만 7이 행운의 숫자이기에 7을 붙여

새로운 이름의 첫 "RX-7" 모델이 탄생하게 됩니다.​​



1세대 RX-7 (SA22C, FB3S)은 실용적인 스포츠카로 경쟁력이 뛰어나고 가격도 저렴했습니다. 점점 팔려나가며 초기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품질 문제도 발생하였지만 모든 문제는 금방 해결되었습니다.

유럽에서 여러 활약을 펼친 RX-7은 1980년과 1981년에는 영국 살룬 카 챔피언십에서 우승, 또한 81년 같은 해에 24시간 스파 대회에서 완주를 하며 신뢰성을 입증하였고, 1세대 RX-7은 성공적인 데뷔를 마치며 1980년까지 약 14만대가 생산되었습니다.


모터스포츠에서 활약한 1세대 RX-7.



[포르쉐와의 경쟁, 2세대 RX-7(FC3S)의 등장]





성공적이었던 1세대 RX-7을 뒤로하고 마쓰다는 2세대 RX-7을 개발하는 데에 주목해야 했습니다.

야마모토 켄이치는 당시 수석 엔지니어였던 우치야마 아키오와 그의 엔지니어 팀에게 RX-7이 성공했던 이유와 해외 시장의 요구를 더 잘 알아보라고 지시하였고, 그들은 RX-7이 가장 많이 팔린 미국 캘리포니아로 향했습니다.

엔화 가치 상승과 수입 쿼터 덕분에 새 RX-7은 가격을 좀 더 상승시켜 차체의 크기를 좀 더 키우고 내부를 더 고급스럽게 바꿀 예정이었는데요,

타겟으로 잡은 차량은 포르쉐의 924 모델이었지만 새 RX-7의 개발이 시작될 무렵에는 924가 미국에서 철수하여 944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매체에서 많은 비교 대상이 되었던 RX-7과 포르쉐 944. ​
여러 개선점들과 강점에 대하여 많은 것을 듣고 돌아온 우치야마 아키오는 2세대 RX-7의 프로젝트명을 P747로 설정, 1981년 6월 본격적으로 프로젝트 개발에 착수하였습니다.



각각 다른 시장을 목표로 여러 개의 디자인 아이디어가 오고 가며 그중에서 약 20여 개의 디자인이 추려졌고,


2세대 RX-7의 여러 스케치들. ​
그 디자인들 중 가장 많이 선호된 두 디자인의 1:1 사이즈 클레이 모델을 일부 소비자들에게도 공개하며


가장 많이 선호된 디자인의 두 클레이 모델. ​
디자인 작업을 진행, 마쓰다는 가장 많이 선호된 이 두 디자인을 합쳐 최종 디자인을 완성하게 됩니다.​


Final Sketch & 1:1 Final Clay Model. ​
디자인뿐만이 아닌 로터리 엔진도 더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는데요,

기존의 12A 로터리 엔진의 하우징 폭을 10mm 넓혀 654cc로 맞추고 트윈 스크롤 터보를 장착하여 최고출력 185마력을 발휘하도록 제작한 새로운 13B 로터리 엔진은 전작보다 고출력에서 높은 내구성과 신뢰성을 보여주었으며

나중에는 마이너 체인지를 거쳐 205마력까지 힘을 끌어모았습니다.


로터리 엔진 중에서 여러 좋은 평가를 받는 13B 로터리 엔진.


그러나 모든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는데요, P747 프로젝트의 설계와 개발을 마치고 대량 생산을 위한 공식 승인을 받기 전 하나의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

당시 미국은 2875파운드 이상의 무게가 나가고 22mpg를 넘기는 연비 등급의 차량에는 세금을 부과하고 있었는데

P747은 무게가 너무 무거워 이 등급을 충족하지 못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인해 P747 프로젝트가 중단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에 봉착하게 된 마쓰다였습니다.



이에 모든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은 주어진 한 달의 기간 동안 무게를 줄이고 연비를 향상시키도록 노력하였고,

필요 없다고 판단된 부품들은 과감하게 치우거나 바퀴 허브들은 합금, 스페어타이어 잭은 알루미늄 유닛으로 교체하는 등 가벼운 재질로 부품을 바꾸는 여러 노력으로

무게는 2630파운드, 전작인 1세대 RX-7보다 여전히 100파운드가 더 나갔지만 여러 기능들과 개선이 이루어져 스포츠성을 뽐내기에 전혀 무리가 되지 않는 무게였습니다.



2세대 RX-7 (FC3S)은 1985년 도쿄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였으나 일본에서는 모터쇼 3주 전부터 주문이 가능했습니다.

한 달에 6,000대의 차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대부분은 미국 시장이 주가 되었는데요,

포르쉐 944와 비교하여 거의 $15000나 저렴했던 FC는 소비자들에게 매우 호평이었고, 1986년에는 FC를 구매하기 위해 86,000명의 고객이 줄을 섰는데 이는 그 해 마쓰다의 미국 판매량의 25%가 넘는 수치였습니다.​​


마쓰다는 르망 24시 레이스를 위해 13B 엔진 2개를 합친 13J라는 이름의 4로터 엔진을 여러 레이스용 차량에 적용시켜 시험하기 시작했는데요,

1989년 이 엔진을 장착하고 IMSA 데이토나 24시 레이스에 첫 출전한 2세대 RX-7은 첫 데뷔 전부터 2등이란 인상적인 순위로 경기를 마쳤고,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11번째 경주에서 RX-7은 100번째 IMSA 우승을 차지,

이 기록은 24시간 데이토나 경주를 포함한 GTU 클래스에서 12년 연속으로 독보적인 우승을 차지하는 IMSA 대회에서 전례 없는 굉장한 업적을 달성하며 RX-7이라는 이름과 그 명성을 뽐냈습니다.


1세대를 이어 모터스포츠에서 큰 활약을 펼친 2세대 RX-7, 그리고 대기록을 남긴 Mazda RX-7 IMSA GTO 모델.



[완전체로 탄생한 3세대 RX-7, FD3S]





마쓰다는 RX-7을 제작하면서 생긴 소형 스포츠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로드스터 (수출명 MX-5)와 AZ-3 쿠페 (수출명 MX-3)를 제작했으나 둘 다 로터리 엔진이 아닌 일반적인 피스톤 엔진을 장착하게 되었으며


수출명 MX 라인업 차량들.


르망 24시 레이스에서의 로터리 엔진 레이싱카 787B의 우승을 기념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발전하는 경쟁 차량들과 경쟁하기 위해 필요한 강력한 성능,

그리고 마쓰다 코스모와 같은 헤일로 카 느낌의 브랜드에 걸맞는 새로운 RX-7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마쯔다는

차량 라인업 중 RX-7을 가장 가격이 높은 모델로 전환하기로 결정, 배지 엔지니어링 방식으로 만들어진 자사의 고급 브랜드 중 하나 앙피니를 통해 판매하기로 하며 새로운 RX-7 개발에 착수하게 됩니다.


당시 300마력이 넘는 파워로 중무장했던 막강한 라이벌 차량들인 미쯔비시 3000GT, 도요타 수프라, 닛산 300ZX와 마쯔다의 고급화 브랜드 중 하나인 앙피니의 매장. ​
이 프로젝트는 수석 디자이너 요이치 사토가 담당하였으며 그의 책임하에

마쓰다의 본사, 히로시마에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뿐만 아니라 요코하마, 미국의 캘리포니아와 어바인 디자인 스튜디오에 있는 디자이너들까지 동원되어​​


3세대 RX-7의 여러 스케치와 클레이 모델, 그리고 디자인 과정들.


마쓰다의 코스모를 닮은 디자인 또는 뒷바퀴의 모습을 감춘 미래적인 디자인 등 다양한 종류의 디자인 스케치들이 등장하였으며,

그중 우승 디자인은 아트센터 디자인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어바인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근무하고 있던 대만 디자이너 Wu-huang Chin의 디자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최종 디자인은 문 손잡이를 안에 숨기는 등의 사소한 디테일까지도 신경을 써 유연하고 우아한 인상을 주는 아름다운 곡선형의 디자인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포르쉐 959 엔진에 장착된 시퀀셜 터보와 RX-7 로터리 엔진에 장착된 트윈 시퀀셜 터보. ​
3세대 RX-7에 들어가는 로터리 엔진인 13B-REW에는 포르쉐 959에서 처음으로 장착된 서로 다른 속도로 작동하는 두 개의 병렬 터보, 시퀀셜 터보를 2개 장착하였는데요,

이 시스템이 장착된 마쓰다 양산차량은 이 RX-7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엔진을 개발하는 것은 전 세대의 RX-7들과 같이 매우 까다로웠는데요,

너무 갑작스러운 전력의 증가 없이 전력 진행을 최대한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었던 이 엔진은 236마력에서 255마력으로,

최종적으로는 98년 12월 일본의 자율 규제 수치였던 280마력까지 마력을 상승시키며 성능적으로 드라마틱한 발전을 보여주었습니다.​​



1991년 10월, 3세대 RX-7(FD3S)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초반에는 미국에서 판매되지 않았으나 후에 미국에서도 판매가 시작되었고, 미국에서 1992년에는 6,006대, 다음 해에는 5,062대가 판매되었는데요,

전례 없는 경제 위기, 버블 경제가 일본을 덮쳐 더 많은 제품을 판매해야 했던 마쓰다는 더욱 개량을 거친 RX-7을 내보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4년 미국에서는 겨우 2,212대의 RX-7이 판매되었고

결국 1995년 마쓰다는 RX-7을 미국 시장에서 철수시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Mazda RX-7 Spirit Type R. ​
1997년부터 RX-7은 일본 시장에서만 판매되었으며 모든 세대를 합하여 총 811,634대의 RX-7을 판매한 마쓰다는 일본 내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2003년 1,504대의 한정 모델 "스피릿 R" 모델을 마지막으로 단종되었으며


3세대에서도 이어간 모터스포츠에서의 활약. 포르쉐와의 직접적인 비교가 인상적이다. ​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배서스트에 있는 마운트 파노라마 서킷에서 열리는 내구 레이스 배서스트 12시간 내구 레이스에서 1992년부터 1994년까지 3번 연속으로,

그리고 1995년에 SP 버전의 형태로 또 한 번 우승을 거머쥐며 다시 한번 모터스포츠에서 뛰어난 내구성과 성능을 입증해 내며

도요타의 수프라와 마찬가지로 튜닝이 무궁무진한 차량으로써 RX-7은 단연 가장 성공적이고 많은 팬들의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차량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RX-7 영상들. ​


오늘은 마쓰다의 명성과 헌신을 가장 잘 구현한 차량, RX-7 시리즈의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게 다뤄보았습니다.

열광적인 팬과 마니아들 사이에서 RX-7은 로터리 엔진 스포츠카의 아이콘으로 남아있으며 마쓰다는 RX-7을 통해 경량 스포츠카 엔지니어링,

스포티한 디자인 및 운전의 재미를 현재의 모든 마쓰다 모델에 적용시키고 발전하여 자동차 업계에서 큰 도약을 이루었습니다.

RX-7은 현재까지도 마쓰다에서 일하고 있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미래에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 전설적인 차량으로 기억되고 회자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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