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의 로터리 신화.

르망 24시 레이스 우승까지의 연대기

by 정영훈


1991년 6월 23일 오후 4시, 마쓰다의 한 차량이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마쓰다는 귀를 찌르는 듯한 고음의 엔진음으로 트랙의 팬들을 사로잡았던 완전히 독특한 엔진, 로터리 엔진을 제일 잘 활용하였던 로터리 마이스터 제조사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내구 레이스에서 우승한 최초의 일본 제조업체가 되었습니다.



이 55번 마쓰다 레이스카는 르망 서킷을 총 362바퀴 돌았고, 28번의 피트스톱을 거치는 동안 '787B'는 고작 오일 탑 1개, 브레이크 디스크와 패드 교체, 그리고 노즈의 교환만을 했을 정도로 뛰어난 내구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마쓰다가 로터리 엔진 기술의 신뢰성, 효율성 및 성능을 완벽하게 입증해 준 계기였습니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기게 되는데요,
"마쓰다는 어떻게 하여 르망을 재패했을까?"

여기에는 엄청난 노력이 숨어져 있었습니다.



마쓰다의 로터리 엔진에 대한 관심은 맨 처음 일본 정부에 의해 강제 합병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의해 추진되었습니다.

이때 마쓰다는 스스로를 개척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회사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소규모 브랜드로서의 독립성을 지키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믿었는데요,

물론 정치적 이익뿐만 아니라, 마쓰다는 로터리 엔진이 모터스포츠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많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970년, 마쓰다는 '쉐브론 B16'의 섀시를 사용하여 로터리 엔진을 시험하였고, 이 날이 처음으로 마쯔다가 르망에 발을 내디딘 순간이었습니다.


1970 Chevron B16 Mazda


불행히도, '쉐브론 B16'은 불과 4시간 만에 엔진 문제로 인해 이탈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쓰다는 이에 단념하지 않았고, 계속 로터리 엔진 개발을 가속화했습니다.


1974 Sigma MC74 Mazda


그리고 1973년, 마쓰다는 다시 르망으로 돌아왔고, '시그마 MC74'의 섀시를 사용한 260 bhp 12A 로터리 엔진의 머신을 출전시켰습니다.

14위를 차지했지만 서스펜션이 깨지게 되면서 차량은 제기불능 상태가 되었고,

1974년에는 시그마에서 마쓰다 차량으로 르망 레이스에 18번이나 출전하여 4번이나 우승을 경험한 드라이버, '테라다 요지로'를 내보내었으나 결과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1974 / 1975 Le Mans Mazda RX-3 Coupe


1974년과 1975년에는 처음으로 오직 '마쓰다'의 섀시와 엔진만을 장착하여 개인적으로 출전한 'RX-3' 모델도 있었지만, 아쉽게 이 차량도 우승진출에는 실패하였습니다.


1979 Mazda RX-7 252i.


4년간의 공백 이후인 1979년, 로터리 엔진은 '마쓰다 오토 도쿄'를 운영하고 있던 '타카요시 오하시'의 'RX-7 252i' 모델과 함께 르망에 복귀하게 됩니다.

그러나 258 bhp 13B 로터리 엔진을 장착한 '252i'는 아직 르망의 벽을 감당하기에 벅찼고, 참여한 100 대중 69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내게 됩니다.


1980 Mazda RX-7 Le Mans ​
1980년, 르망은 미국 뉴저지에서 건너온 또 다른 'RX-7'을 주시하게 되는데, 이 'RX-7'은 12A 로터리 엔진을 장착하여 전체 21위라는 좋은 순위로 레이스를 마쳤습니다.

이 덕분인지 마쓰다는 해외로 눈을 돌렸는데,


영국의 전설적인 드라이버, 'Tom Walkinshaw'와 그의 파트너 브랜드, '재규어'.


이듬해 영국의 'Tom Walkinshaw Racing (TWR)'이라는 팀은 마쓰다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유럽과 영국의 투어링 카 챔피언십에서 RX-7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1980년과 1981년 스파 24시 레이스에서 우승한 'TWR RX-7'.


그들은 1981년 마쓰다에 도움을 주기 위해 참여하였고,


1981 Mazda RX-7 253i, 통칭 'Longtail'.


르망 레이스에 일본 / 영국의 혼성 드라이버가 한 대씩 줄지어 서는 것으로 참가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영국의 힘을 받아 모두의 기대를 받은 13B 엔진의 'RX-7 253i'였으나, 완주에 성공하지 못하며 마쓰다는 이번에도 실패하였습니다.


1982 Mazda RX-7 254i
1982년에는 'RX-7 254i'가 르망 레이스에 참가했고 82번 차량은 14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투어링카 레이스, 미국 스포츠카 레이스와 랠리에서의 모든 성공에도 불구하고, 르망의 규정들은 RX-7이 영광을 위해 도전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1983년은 르망에 연관된 마쓰다의 모든 것이 바뀐 해입니다.

'타카요시 오하시'의 '마쓰다 오토 도쿄 팀'은 1980년대 초에 '마쓰다스피드'로 개칭되었고, 1983년에 마쓰다의 자회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르망 전용으로 제작된 맞춤형 자동차를 제작하는 데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1983 Mazda 717C


'마쓰다 717C'는 새로운 '그룹 C 주니어 클래스'에서 경쟁하기 위해 설계되었으며, 종합우승이 아닌 '그룹 C 주니어 클래스'에서의 경쟁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717C'의 무게는 800kg에 불과했고 310 bhp 13B 로터리로 구동되었으며, 매끄러운 0.27cd의 공기역학 계수를 선보였습니다.

마쓰다가 레이싱에 도움을 줄 유럽 파트너를 찾자 실버스톤에 본사를 둔 '도킹 엔지니어링'이 도움에 응했는데요,



르망에는 총 두 대의 차량이 등록되었으며 한 대는 완전한 일본인의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고, 다른 한 대는 영국인 '제프 알람', '스티브 소퍼', '제임스 위버'이 3명이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일본인 라인업의 '토리노 타카시', '테라다 요지로', '카타야마 요시미' 드라이버.


영국 팀은 예선 통과에 실패했지만 일본 팀의 상황은 달랐는데요, 일본 팀은 이 날 종합 12위를 차지하며 '그룹 C 주니어 클래스'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84 Mazda 727C
1984년은 마쓰다가 큰 성공을 거둔 해입니다.

마쓰다는 새롭게 만들어진 '그룹 C2 클래스'에 2대의 '727C' 차량을 투입했습니다.

공기역학을 개선한 '727C'는 '마쓰다 717C'에서 더 개선된 차량으로, 'C2 클래스'에서 4위 (전체 15위)와 6위 (전체 20위)를 차지했습니다.


1984 Lola T616 Mazda


같은 해, 미국의 타이어회사인 'BF 굿리치'는 마쓰다와 마쓰다의 또 다른 파트너인 '롤라' (영국의 엔지니어링 회사)에 스폰서로서 실험 중이던 타이어를 제공하였으며,

'롤라-마쓰다'는 'BF 굿리치'의 타이어를 장착시켜 새로 제작한 차량인 'T616' 2대를 르망에 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T616' 중 하나는 'C 주니어(C2) 클래스'에서 1위, 전체 10위를 차지했으며, 또 다른 차량은 3위, 종합 12위에 안착하며 성공적인 성과를 올리게 됩니다.



르망 24시 레이스에서의 성공은 결코 운이 아니었는데요, 후에는 뉘르부르크링과 후지 서킷에서도 2위를 기록하게 되는데

이는 마쓰다가 르망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하기 전 엔진 공급자로서 첫 번째 성공이었습니다.


1985 Mazda 737C


1년 뒤인 1985년, 마쓰다는 2개의 트윈 로터가 장착된 '737C'를 '그룹 C2 레이스'에 출전시켰습니다.

85번 차량은 일본인 드라이버 라인업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3위를 차지했습니다. 로터리 엔진은 다시 큰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마쓰다는 이제 한 단계 더 올라갈 계획을 꾸려나갔습니다.


1986 / 1987 Mazda 757


마쓰다는 1986년 'IMSA GTP 클래스'로 승격하는 것을 목표로 새로운 '마쓰다 757'을 출전시켰습니다. 종합 우승을 목표로 하는 계획의 시작은 로터가 3개로 증가하는 끝을 낳았고, 새시도 모두 새것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첫 해에 '757'은 사용하던 포르쉐 변속기에 문제가 생겨 난항을 겪었지만 영국의 디자이너 '나이젤 스트라우드'가 이 문제를 해결하였고,

1987년에는 '데이비드 케네디', '피에르 디우돈', '마크 갤빈'의 '마쓰다 757'이 'IMSA GTP 클래스'에서 우승, 종합 7위를 하는 등의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1988년에 출전한 2대의 767과 1대의 757.


1987년에 우승한 '마쓰다 757'은 더 빠르고 더 강력한, 4개의 로터를 장착한 '마쓰다 767'로 가는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1988년에는 1대의 '757'과 2대의 '767'이 참가하였고,

'757'이 전체 15등, '767'이 각각 17등과 19등을 차지하면서 아직은 약간 부족한 '767'의 모습이 보였지만,​​


1989년에 출전한 2대의 767B와 767.


1989년에 2대의 '767B'와 1대의 '767'이 출전하여

201번 '767B'는 'GTP 클래스'에서 우승하여 전체 7위를 차지하였고, 202번 '767B'는 전체 9등, 구형의 203번 '767'은 전체 12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이렇게 1989년, 마쓰다는 르망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90년에 참여한 2대의 787과 1대의 767B.


1990년에 마쓰다는 새 차량인 '787' (201호 차량, 202호 차량)과 '767B' (203호 차량)를 출전시켰습니다.

'마쓰다 787'은 카본 파이버 섀시와 더 가볍고 강력한 26B 4 로터 엔진을 장착했는데요, 1990년 대회에서는 신형 '787'이 전기 및 변속기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203번의 '마쓰다 767B'가 20위를 차지하며 'GTP 클래스'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1992년부터 르망에서 로터리 엔진이 금지될 것이라는 발표를 하였고, 마쓰다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레이스를 향하여 전진하게 됩니다.



1991년 6월 23일 오후 4시, 마쓰다의 한 차량이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이 차량의 이름은 '마쓰다 787B'로, 기존의 787보다 더 긴 25mm 길이의 휠베이스, 더 큰 18인치 휠, 탄소섬유 브레이크를 특징으로 하였으며 차체 구조는 냉각 개선 및 다운포스 증가를 위해 수정되었습니다.

마쓰다는 2대의 '787B'와 2대의 '787'을 르망 24시 레이스에 출전시켰고,



1대의 18(T) 번 '787'은 스페어모델, 다른 1대의 56번 '787'은 전체 8등, 18번의 '787B' 모델은 전체 6위라는 성적을 거두었으며



초록색과 주황색의 리노운 리버리를 장착하고 출전한 55번의 '787B'가 최종우승을 하며 1991년 르망 24시 레이스를 재패하게 됩니다.


3명의 드라이버, 'Johnny Herbert', 'Bertrand Gachot', 'Volker Weidler'.


3명의 드라이버 중 한 명, '조니 허버트'는 '787B'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를 남겼는데요,

"'787B'의 캐빈은 아름답게 배치되었고, 편안했으며, 로터리 엔진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787B'는 신뢰성 면에서도 실크처럼 부드럽고 방탄처럼 튼튼했다."라고 '787B'를 기억하였습니다.



이 해 가장 빠른 차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 '미하엘 슈마허'가 소속된 '자우버 메르세데스'의 'C11'이었고,

이 외에도 '포르쉐 962C', '푸조 905', '재규어 XJR-14'와 'XJR-12' 등 강자들이 즐비했지만 다른 차량들이 문제에 시달리는 등 '787B'가 우승하는 데는 운도 한몫을 하였으며,

'마쓰다스피드'는 '메르세데스 벤츠 팀'과 '재규어' 팀에 비해 매우 작은 팀이었지만 1970년 르망에 첫 발을 내디딘 때부터 1991년 우승을 하기까지 21년 간의 수많은 도전과 노력들이 있었기에 '마쓰다스피드 팀'은 완벽한 위치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막강했던 787B의 라이벌 차량들.


마쓰다의 이 우승은 로터리 엔진 최초이자 유일의, 일본 메이커 최초의 르망 24시 우승이었으며 27년간 유일하였던 일본 메이커의 우승이었습니다.

(후에 이 기록은 2018년에 '토요타 가주 레이싱'의 'TS050 하이브리드' 차량의 우승으로 기록이 깨졌습니다.)



'787B'에 장착된 4 로터 'R26B' 엔진은 내구성에 초점을 맞춘 엔진이었습니다. 'R26B'는 기본적으로 터보차저가 아닌 회전식 엔진이었지만,

사이드 플레이트 대신 로터 하우징 주변에 흡기 포트가 장착된 레이싱에서 파생된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높은 rpm에서 훨씬 더 큰 이점을 제공하였습니다.

또한, 'R26B' 엔진은 10,000 rpm 이상의 속도에서 900마력의 성능을 발산할 수 있었지만 내구성을 위해 9,000 rpm에서 700마력으로 조정되었고, 이러한 점들이 '787B'가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참고자료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328iconv&logNo=220094033760&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https://www.tradeuniquecars.com.au/news/1902/the-le-mans-24h-mazda-rx-7-254-discovered-after-35-years-lost

https://vintageracecar.com/mazdas-road-to-le-mans-victory/

https://www.google.com/url?sa=t&source=web&rct=j&url=https://m.facebook.com/RotaryNews/posts/the-1974-24-hour-of-le-mans-also-saw-the-first-attempt-to-qualify-a-mazda-rotary/2693392090675316/&ved=2ahUKEwi-rOPO99n4AhUpmlYBHS4cBMoQFnoECBcQAQ&usg=AOvVaw1lXlxXMXSRmIfpD8l3o9b9

https://www.magnetomagazine.com/30-years-since-the-mazda-787b-made-le-mans-history/

https://www.24h-lemans.com/en/news/japan-and-the-24-hours-of-le-mans-1-mazda-triumphs-50317

https://www.insidemazda.co.uk/2021/06/15/2021-marks-the-30th-anniversary-of-mazdas-famous-win-at-the-1991-le-mans-24-hours/


http://www.spannerhead.com/2012/10/06/interesting-engines-mazdas-r26b/

https://www.racingsportsca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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