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산다. 숨을 쉰다.
사람들을 만난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기도,
어떤 곳은 계급이 있어 보이기도,
어떠한 상황에는 이유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그렇다보면, “이게 맞나”는 생각이 든다.
딱 한번 보여준 웃음꽃이
봄 같던 친구
불의라는 단어를 떠오르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전학 전 초등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나,
학교에서만, 즉 특정장소에서 실어증을 겪었던 친구,
그 친구가 아린다.
영어시간인가 국어시간이었나, 너무 오래돼
기억은 잘 안나지만,
그 아이에게 발표를 시킨 여선생님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며,
동물도 그렇게 맞으면 도망갈 매타작을 10분 넘게 했다.
“복도에 나가”라는 말로 폭력을 이어갔고
몸이 얼은 아이가 다리를 떼지 못하자
손으로 뺨을 밀어붙여 내보냈다.
목격자 모두가 어렸다.
모두가 놀랐지만, 이상한 것이라는 정의도
제대로 내리기 어려운 나이의 아이들이었다.
그날 하굣길, 그때 알았나 나는?
앞서 걷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말하기 싫어?”라며 물었다
여전히 아이는 말이 없었다
“그럼 듣기만 해” “말은 내가 할게” 라며
하굣길을 함께 했다.
그 이후로도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늘 어깨를 움츠리고 아래를 보고 다니던
그 친구는
하굣길에 날 가끔 기다려주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날, 같은 골목 하굣길에서
“그 선생님 진짜 이상해”라며
선생님을 따라하고 대신 긁어주는 내 말에
피식 웃던 네 웃음이 꽃 같았다.
예쁜 웃음이었다. 정말
처음본 그 친구의 웃음은
꽁꽁 얼은 겨울이
손가락 한번 튕김으로
봄이 되게 만드는
힘과 포근함이었다.
그 이후로는 종종 내게만 대답해주던
그아이,
지금음 정말 잘 지낸다는 소식을 언뜻 들었는데,
그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네가 겪었던 그 불의에 같이 맞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나도 어렸었다는 변명뒤에 숨지않고,
그때 그 여선생이 불의였다고,
너는 너의 아픔을 지킨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어떤 아픔이 너의 입을 막히게 한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너를 몰아세울 이유가 전혀
되어선 안되었다고,
하굣길에 내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녹았으면 했다고,
사람이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이 사람에게 감히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