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는 누가 끄나
2014년 여름, 서울에 있는 사촌언니를 보러 간 어느 하루.
부산에서 용감하게 버스를 타고
"서울가면 코 베어가“ 라는 엄마의 말을 뒤로 하고,
좌석버스 일인석에 앉아 2시간즈음 달렸을까,
섬진강 휴게소에 가기 전
자다 깬 내 눈에 들어 온 이인석.
우리 부모님보다 조금 나이드신 부부.
둘째 라인에 앉아 계신 어머니는
다리를 다 펴지도 못한채로
두시간을 달려오셨던 모습.
맨 앞줄의 여성분의 의자가 세상 끝까지
젖혀져있다. 천장에 뭘 꼭 봐야하나?
어디가 불편하신가? 보니 아니다.
그냥 일반 건강한 나보다
어머니보다 다부진 여성이다.
참다 참다 너무 다리가 아프셨을거다.
어머니가 입을 떼셨다.
"아가씨, 의자 좀 올려줘요"
하니, 그 단발 여성분이 뒤로 힐끔 보더니 다시
그대로 간다.
이상했다. 옆에 앉은 아버님도
그냥 가시고, 단발 머리 옆에 앉은 일행분도
그냥 가신다.
'왜지, 이걸 왜 그냥 가지'
20살이었던 나. 궁금했다.
지켜봤다. 휴게소에 내리고 나서 살짝 올라간 의자.
어떤 상황이 펼쳐졌었나 보다.
정리가 되었나 보다.
불편했던 마음을 잠깐 내려놓고
눈을 감고 잠에 다시 들었다.
1시간 뒤 눈 뜨니,
어머니의 다리는 옴짝달싹을 못하는
상황.
'아, 이건 아니다'
달리는 버스안에서 팔을 뻗어
왼쪽 첫좌석을 툭툭쳤다.
(난 긴팔 원숭이급으로 팔이 길다)
단발머리 일행 여성분이 돌아본다
연세가 꽤 있으셨다.
여전히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걸 보니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나보다.
내 첫 단어는
"저기요".
그녀를 불렀다.
그러더니 그 일행이 단발 머리여성을 깨웠다.
단발 머리 여성은
나를 빤히
그저 빤히 쳐다봤다.
좀 무섭긴했다.
근데 해야겠었다. 말을
"얼마 주고 타셨어요?"
여성이 내 말에
가방을 뒤적뒤적.
안경을 꺼내 들어 쓰고 더 빤히 쳐다본다.
그땐 어떤 용기였나
"얼마 주고 타셨어요?" 한번 더 되물으며 말을 덧붙였다.
"만 삼천 육백원 주고 타신거 아니에요?" (정확한 가격은 기억안나지만 백원 단위까지 말했다)
(내 차표를 확인하고 말을 걸었다. 스토리보드가 이미있었던거지 나는)
가만히 쳐다보던 여성은
"왜요"
"여기 위에 어머니도 같은 돈 주고 타셨다" "의자 올리시라"
말했다.
그제서야 옆에 앉은 동행자가
"의자 말씀하시는거 같아"라며 의자를 조정했다.
그리고 도착한 동서울버스터미널,
언니에게 전해 줄 짐이 꽤 있어, 천천히 짐을 챙기는데,
그 단발 머리 여성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안내린다.
그러다 일행이 "가자,그냥 가자" 하니 그제서야 내린다.
상황을 뒤에서 다 보고있었던 뒷 승객들은
그 여성이 아니라
내 얼굴을 한 번씩 보며 내린다.
그때부터 였을까, 사람들이 불의를 꺼트리지 않은게,
눈감은게,
왜 같이 앉은 아버님은 가만히 가셨고,
왜 어머님은 같은 돈을 내고
다리를 펴지 못하고 서울의 반까지 와야했을까,
버스 앞 뒤를 채운 젊은 부부, 여행을 떠나던 자매 분,
건장한 남성친구분들, 누구도, 왜 아무도
누군가의 불의에 불의라 말해주지 않았나,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나도 그들과 한패였다.
서울 살이를 시작하며,
누군가를 돕는다는게, 어려운 것이라는 걸 배워버렸다.
뉴스룸에 일하며 본 뉴스가
'쓰러진 사람 도왔더니, 도둑돼" 라는 헤드라인 때문이라고 변명을 하겠다.
다음 뉴스가
'잘해준 직장동료에게 칼에 찔려 죽은 사원' 이라는 헤드라인 이라고,
뉴스와 종이신물을 계속 보다보니,
우리 삶은 드라마보다도 자극적이고, 공포적이고, 씬스틸러들이 가득한 세상이었다.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서,
버스 정류장 스몰토크 걸리기 VIP인 나는,
길에서의 인연들과 대화하고,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이
버스에서 무거운 짐을 내리기 어려워 하시면
대신 내려드리던 나로,
도로에 박스가 떨어져있으면 길가로 치우던 나로,
지갑, 휴대폰을 누군가 떨어트리고 가면,
파출소, 동사무소에 맡기던 나로,
당연했던 일을 자처해서 당연하게
하는, 다시 나로, 돌아가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일까, 하루가 오늘이여도.
오늘이 하루 전부여도 행복한 날들이 더 많다.
더불어,
스몰토크를 하거나 얼굴도 모르던 누군가의 얼굴을 기억할
일이 만들어지면 그날은 꼭 내 어깨, 등 가득 짊어지던 짐이 조금은 가볍다.
누군가를 도와보니
타인을 돕는다는 것은 나를 돕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