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를 물고기라 부르기

등지는 이야기_6

by 느루


지인들 중에 선교사가 있다.

그 분과 나는 이야기를 시작하면 2-3시간이 훌쩍지나가곤 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바라보는 세상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서다.


나는 어떤 현상을 보면 “왜 그럴까?” 에 대해 나누는 걸 좋아한다.

그럼 그는 “성경”에 의해 “판단”을 이야기해주었다. 어떤 ‘정의’가 있는 게 부러웠다.

그런 면이 신기해서 대화가 늘 이어졌다.

그러한 생각들을 듣고 있으면 확신으로 인생을 사는 듯해 시기가 생겼디.

믿음은 어떻게 생길까,

난 언제쯤 나나 누군가를 저렇게

꼭 믿을 수 있을까,

지금부터 해보고자 하는데, 같이 해보겠나,


“물고기를 언급하려면 거짓된 소리 밑에 개념을 숨기지 말고 <물고기>라고 말하면 충분하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그것은 과연 쉬운 일인가,

물고기를 물고기라고 부르는 일.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것이 그대로만 되어있다면

그렇게 말하고 불리는 것은 충분하지만,

그렇지 않음에. 개탄한다.


나는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동생, 누군가의 여성, 누군가의 동료,

누군가의 언니, 누군가의 누나, 누군가의 무엇이라 소개되어지고 불리어지지

물고기 그대로가 아니듯 말이다.


그러하니, 나는 너를 너로 보겠다. 다짐하는 글이다.


너를 의심하지 않고 나를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그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


“가을이 오면 꽃이 시들어 꽃대에서 사라져 버리듯이, 인간 또한 그렇게 사라져 버릴 터인즉”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내 앞에 있는 이들이 사라져도 너를 꽃 그대로 바라볼 것이라는 다짐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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