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서, 언제내려요 선생님

“무슨일 있으면, 언제든 불러”

by 느루

서울살이 6년차, 함구증 비슷한게 생겼다.

말이 쓰레기 같이 들리기 시작할때부터,


자취를 했고,

약속을 잡거나, 돈을 쓰지 않으면,

사람을 만날 일도 없었다.

그게 외로움인지 모르는 6년이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일에 엮이지 않아도 되고

매번 시트콤 같던 삶이,

갑작스레 조용해졌다.


말을 끊었다. 사람을 끊었다.

“도와달라”는 말을 할 재간이 없었다.

내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란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적어도 18년 학교 다닌 사람인데,

세상 뇌빼고 살았다.

책을 읽을 줄만 알지

내가 뭐라고 나를 몰랐다.



21일 대학병원 진료

담석증이 의심된다 했다.


집에 돌아와, 24시간 배를 타며 배멀미를 하며

오지않는 잠을 청했다.




22일, ct촬영

조영제를 넣었다

집에 갈수가 없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땅이 울렁거린다. 응급실에 갔다.


앞에 어린이가 보호자랑 소아과 선생님과

깊게 대화하는 걸 지켜봤다

링거를 꼽고 멍하니


여전히 난 배 위다.


의료대란의 날 중 하루 였지,

내과 의사가 내얼굴을 보더니

”응급실이 어딘지 몰라요?“

”응급도 아닌데 왜“라며

날 아래위로 훓어보며 타박을 준 날.


응급이 뭔지 알려주시면

그냥 죽더라도 여긴 안올게요.



24일

눈을 뜨자마자 변기에 머리를 박고

이럴거면 토라도 하자고

살려라도 달라고 울어댔다.


손발이 떨렸다.

너무 울렁거려 눈이 잘 떠지지 않아,

상암 내과에 8시 반에 도착해 쭈구려 앉아

첫 순서로 기다렸다.


복부초음파를 봐주셨다. 아무것도 없다.

살이 다빠지고 젊어 췌장까지 보인다 하셨다.

췌장도 깨끗하단다.


위벽이 내 말을 안듣는 것 같다 했다.

“시간을 주고 돌아오길 기다리자”는 말로

진료를 마치셨다.


선생님, 배 위에서

멀미하며 2개월을 기다렸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배에서 내리나요.


방법이 없다면, 그만

물 속으로 뛰어내리면 안되나요,








24일 토요일


이비인후과,신경과로 향했다.

모두 ‘정상’

더욱더 심해지는 구역감

이젠 파도 속 배가 아니다.

통나무 위다.


급하게 당긴 대학 병원 진료


26일 월요일

내진했지, 입원할지 몰랐지,

너무 울렁거리는데, 살려달라고,

대학병원에 찾아가

2번째인 내 순서도 기다리지 못했다.


대기실 의자에 엉덩이가 아닌

손을 짚고 무릎을 땅에 닿아 빌며

나 멀미 좀 멈춰달라, 빌고 있었다.

괜찮냐며 조금만 기다리시면, 바로 진료보실거라

이야기하는 간호사 선생님들.


핑크색 가방 하나매고

입원한 대학병원,


하얀 침구가 노랗게 되도록 누워있던 침대를

처음 보게 된 이는,

같은 방송국에서 일하던 동료.


짐을 부탁하는 나의 말에, 챙겨 와주던 내 동료.

병원에서 나를 보고

입을 ‘떡’ 벌리고 ‘저게 사람의 몰골일 수 있나’는

표정으로 내 짐과 서있던 내 동료.


너무 고마운 사람.

너무 고마운 동생.


왜 말을 안했냐며 어디가 아픈거냐며

걱정 그마음 그대로 말해준

고마운 사람.


병원에서의 하루들은 48시간 같았고,

CT도 XRAY에도 피검사에도

모든 수치가 정상.

고통만 비정상


아빠가 그랬다

병은 소문내야 낫는다고,

그때부터였나

“나 아프다” “너무 아프다”

소문내고 다니기 시작한게


겁나게 소문냈다 sns에 대문작하게 적고,

겁나게 낫고싶었거든


그래선가, 내 사람들이 떼로 몰려왔다

다들 어디 숨어있었던 건가

이렇게 사람들이 있었나,


내가 농담삼아 못먹는 음식 앞에서

“낄낄 이거먹고 응급차 불러도” 하면

“업고 뛸게” 말하는 사람들.

“니가 뛸래 내가뛰까“하는 사람들.

어디선가 다 튀나왔다.


그 중에 하나.

매일 같이 이야기하는 사람.

“언제든 갈게” ”어디든 갈게“

그리고 어디든 와준 사람.


나도 이제 옆에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 있다.

나도 있다 내 보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