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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자식 아래에서
여러 자식 중 하나로 길러진 엄마는
"데려가면 결혼이었지뭐 그땐"
"좋은 남자고 아니고가 중요하지 않았어"
라는 말로 이야기를 늘 맺었다.
그럼 지금은 엄마한테 좋은 남자가 함께일까,
매번 입밖을 맴돌던 말,
하지만 이번엔 엄마가 선택했으니,
탓할이가 없겠지
전엔 부모탓, 전엔 자식탓 이었는데
이번엔 엄마가 선택했으니,
엄마는 결혼을 해서 자식이 들어섰으니
낳게되었지, 자식을 계획지 않았다.
지금과 다른 시대였다.
자식을 낳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
군인이 꿈이었던 엄마여서 였을까,
엄마는 언니를 세상에 꺼내놓고,
더이상 누군가를 꺼내놓는다는 것이
좋은 선택이 아님을 깨닳았다.
다음 순서는 내가 아니었을 수도.
그럼에도 나는 세상의 빛을 봤다.
아빠는 그걸 자신의 업적처럼 나에게 꺼내보였지만, 난 그게 꼭 내 죄같았다.
죄를 값으며 살아가는 것 같았다.
잉태한 자가 원치않음에도 세상에 나와
죄를 짓고 사는 기분에
벗어나기 어려웠다.
어렸을적에는 왜 절에만 가도
기독교 입구만 가도 눈물이 났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아빠랑 함께 살때, 집앞에 교회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즈음이었다.
학교를 마치면 4-5시즈음 노을이 지는 가을정도의
계절에
'성경'을 읽어 보지도 못하고
의미도 모르던 나는
모두가 교회를 가는걸 늘 봤으니까
그곳에 꼭 신이 있는 거 같아서
빈 교회에 가서 펑펑 울었다.
울었던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난 그저, 누군가 늘 그리웠다.
아빠랑 살때는 엄마가,
엄마랑 살때는 아빠가,
같이 살때는 살얼음판이 아닌 화목한 엄마아빠가,
엄마가 닭강정을 사들고 찾아왔을때,
언니가 엄마랑 연락을 하면 호랑이처럼
화를 내던 아빠가 생각이 나서,
문을 열어주지 못했다.
인터폰으로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손을 입으로 틀어막으면서 울었다.
엄마는 문을 왜 안열어 줬냐고
지금의 나에게 까지 탓을 했었다.
그건 어린 나의 탓이 아님에 명백하지만,
엄마도 어리기에,
엄마도 자식이 처음이기에 늘 나를 언니를
탓하고 상황을 탓했다.
그저 그럴 수 있었다.
그저 그런 상황을 만든 부모라 미안하다.
라는 이야기면 괜찮았을 상황이지만,
엄마도 그런 상황이, 그런 마음이 처음이라서,
그랬을거다.
그래도 나는 그래도 나는
엄마를 미워해야 산다.
미움박힌 말을 내게 쏟아내던
그녀를 사랑까지 하면 꼭 잘 못 된 게
나 같아서.
그럼 내가 사라져야 끝날 일 같아서.
꼬옥 엄마를 미워해야.
내가 태어난게 잘못 된게 아니라서
내가 사랑받는 것도 당연한 거라서.
꼬옥 그래야 산다.
이렇게 나도 간사하게 한 번 살아보고자 한다.
내 삶에 숨결을 넣어준
엄마에게 감사하며.
오늘의 글은 반성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