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쳐서 얻은 것
2010년,
수학문제 푸는 걸 좋아할때는
벽돌같은 책가방을 들고 산처럼 높은
등굣길에 오르는게
버거웠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랬었나.
2014년,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 들은 이야기가
“뭐 닮앗고” “몸은 너무 말랐다“
“생얼은 별로겠어“ ”딱보면 난 안다“ 라는 얼굴 평가가 기억난다.
근데 그게 내 마음에 상처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랬었나.
2019년,
첫 직장을 얻어 들어간 곳에
일이야기를 할 것이 있다던 PD가
사촌언니랑 살던 집앞까지 따라와 카페에 가자며 옆자리에 앉은건 기억난다.
근데 그게 부당하다 불쾌하다, 자아가 뭉게지는 기분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랬었나.
2020년,
뉴스룸 2층에서, 나를 때리려고 하던 감독이
기억난다.
근데 그때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무서웠었나, 불편했었나, 어이가 없었나,
그랬었나.
2024년 6월.
울렁거리던 몸의 반응의 생채기를 기억한다
배를 타는 몸을 기억한다.
4월.10월.6월.
세번의 기회 다음에 빵!
세로토닌이 몸에서 사라졌다.
먹을 수 없으니 소화시킬 수 없고
소화할 수 없으니 세로토닌이 없어져 사라져
지금의 덩어리 같은 나만 남았다.
뇌가 더이상
알 수 없는 미지를 겪어 내지 못한다는
일종의 파업선언을
위장에 내린 것.
”위가 마비됐다“
대학병원 소견.
언제 돌아올 줄 모르는 위를 부여잡고.
병원 돌돌이를 시작한다.
어느날은 심장을 이상하게 뛰게하는 뇌가
어느날은 대장을 아프게하고
어느날은 위를 꾹꾹 눌러본다.
의사들은 약을 던져주며
“경험”해보자고 말한다.
서울을 경험한 내게 주어진 형벌은
약을 경험하며,
부작용을 오롯이 느끼는 것
몇일 전 읽은 <아픔이 내가 된다는 것> 에서의
마음이 오롯하다.
“내 병은 병원이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제일 잘 안다“라는 것
이제는 울렁거려도 된다는 마음으로
울렁거리는 내 삶을
같이 산다는 마음을
이제 눈을 뜨면 울렁거릴까봐 무서워 않으려고
눈을 뜨는걸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또 변할 무서움이란 걸 안다.
그러나
내게는
평생을 기다릴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