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가 보낸 편지
1828. 11. 빈
슈베르트는 거의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마지막 교향곡이 될지도 모르는 D장조(10번) 교향곡에 매진하고 있다. 건강은 점점 나빠지고 있지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지난주에 B단조 교향곡(8번)을 마무리한 것이다.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졌다. 이제 D장조다.... 1, 2, 4악장을 피아노 스케치로 작업해 논 상태다. 이제 3악장 스케치만 끝내면 오케스트레이션 작업을 거쳐 곡을 완성할 수 있다. 3악장의 구상은 이미 끝내둔 상태다. 건강이 더 나빠지기 전에 서둘러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더 이상 작업을 진전시킬 수가 없었다. 일단 몸을 추슬러야 했다. 슈베르트는 중요한 몇 가지 짐을 챙겨 쇼버의 집을 나와 빈 외곽의 비덴 지역에 있는 친형 페르디난트의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거처를 옮기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기분 전환을 한 슈베르트는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회복되면 곡을 쓰는 데 집중하려고 했다. 그러나 별다른 작업의 진전은 없었다.
11월이 되면서 슈베르트는 약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11월 10일경 아버지와도 같았던 형 슈파운이 슈베르트를 찾아왔다. 슈파운의 손에는 슈베르트가 ‘시편 제23편’에 곡을 붙인 악보가 들려 있었다. 둘은 이 곡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후 힘들어하는 슈베르트를 위해 그만 자리를 뜨려하는 슈파운의 손을 꼭 잡은 슈베르트는
슈베르트 : (힘겹게) 슈파운 형, 형은 내게 아버지 같은 분이었어요. 늘 내 곁에서 나를 지켜준 그런 형이었습니다. 언젠가 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슈파운 : 그런 말은 하지 마. 내가 프란츠를 만난 게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어. 고맙다는 인사는 내가 해야지. 빨리 건강을 회복해 예전처럼 즐겁게 지내도록 하자.
슈베르트 : 네 빨리 건강 회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부탁 드릴게 하나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쪽 창가에 놓여있는 조그마한 상자를 가리친다.
슈베르트 : 저 상자를 형이 맡아 주세요. 그리고 집에 가면 편지를 읽어보고 꼭 편지 내용대로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빈에 가면 바로 훌처 씨를 만나 제가 죽기 전에 꼭 듣고 싶은 곡이 있다고 전해 주세요. 가능한 한 빨리 방문해 달라고 부탁해 주세요.
슈파운 : 죽다니 무슨 소리야. 그런 소린 하지도 마
슈베르트 : 근데 이젠 저에겐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꼭 전해 주세요.
며칠 후 훌처가 동료 셋과 함께 슈베르트를 찾아왔다.
훌처 : 프란츠~ 건강이 많이 걱정되어, 슈파운의 전갈을 받고 서둘러 달려왔어요. 자리에 편히 있어요. 프란츠가 말했던, 꼭 듣고 싶다는 베토벤 선생의 곡을 들려줄게요. 이 곡을 듣고 건강이 회복되길 바래요.
훌처는 동료들과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연주되는 곡은 베토벤의 현악4중주 Op.131이었다. 이 곡은 슈베르트가 어느 연주회에 갔다가 처음 듣고는 마음에 깊이 새긴 곡으로, 슬픔이나 기쁨을 넘어 인간 존재 그 자체를 담아낸 침묵의 고백 같았다. 마침, 옆에 있던 훌처에게
슈베르트 : 제가 만일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곡을 들을 수 있다면 전 이 곡을 듣고 싶습니다.
훌처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역시 베토벤 선생의 말년 작품은 심오한 철학적 고백에 가까워... 정말 훌륭한 곡이야.
슈베르트는 침대에 기대 연주되는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짧고 격렬했던 삶이 베토벤의 선율을 따라 천천히 그의 마음을 떠돌았다. 7악장까지 연주가 끝났을 때 슈베르트의 마음은 평온해졌다. 자신을 위해 급히 멀리까지 와서 연주해 준 훌처에게
슈베르트 : 훌처 씨~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덕분에 전 소원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슈파운에게 꼭 전해 주십시오.
그 편지봉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첫 번째 편지의 미션을 수행한 자만이 이 편지를 열 수 있습니다.”
훌처 : 알겠네. 내가 빈에 가자마자 슈파운을 만나 이 편지를 전하고, 오늘 연주한 이야기도 같이 들려주겠네. 빨리 건강을 회복하기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