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슈베르티아데 정경-1

슈베르트가 보낸 편지

by 황선형

1824. 12. 빈


1824년 12월 쇼버의 집에서 슈베르티아데가 열렸다. 여러 명의 친구들과 소수의 초대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했으며, 참석 인원은 대략 25명 내외였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1825)였다.


살리에리는 당대 유럽에서 매우 명망 높은 음악가이자 교육자였다. 그는 오스트리아 궁정의 수석 작곡가(궁정 악장)를 지냈으며, 많은 뛰어난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의 제자 중에는 루드비히 판 베토벤뿐만 아니라, 프란츠 슈베르트, 프란츠 리스트, 모차르트의 아들인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슈베르트는 1808년부터 1813년까지 시립 기숙학교인 콘빅트(Konvikt)에 재학하면서, 살리에리로부터 개인 작곡 수업을 받으며 음악의 기초와 대위법 등을 익히고 탄탄한 음악적 기반을 다졌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관계는 지속되어 1817년경까지도 간헐적으로 살리에리의 지도를 받았다.


살리에리는 늘 슈베르트를 특별히 아꼈고, “내 제자 중 가장 시적인 영혼을 가진 작곡가”라고 말하곤 했다. 이 날도 살리에리는 조용히 슈베르트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던 슈베르트는


슈베르트 : 자 오늘 처음 연주할 곡은 최근에 작곡한 연가곡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입니다. 이 곡은 형식적으로는 베토벤 선생의 연가곡 ‘멀리 있는 그대에게’를 듣고 영감을 받아 작곡한 연가곡인데, 가사는 빌헬름 뮐러의 시집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 1부에 실린 시를 인용해 작곡했습니다. 이 시집은 뮐러 자신의 실제 짝사랑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쓰였다고 합니다. 20곡을 다 들려 주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리고 대표적인 곡으로 몇 곡 들려드리겠습니다.


박수가 흘러나오고 슈베르트는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슈베르트의 음성은 미성으로 언제 들어도 좋다. 슈베르트는 1번 곡 Das Wandern (방랑) 곡을 시작으로, 3번 곡 Halt! (멈춰!), 5번 곡 Am Feierabend (일과 후), 7번 곡 Ungeduld (초조), 8번 곡 Morgengruß (아침 인사), 11번 곡 Mein! (내 것!), 18번 곡 Trockne Blumen (시든 꽃)을 불렀다.


슈베르트 : 어때요? 이 연가곡은 외형적으로는 소박한 사랑 이야기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깊은 인간 감정과 고독, 상실, 죽음까지 포괄하는 극적인 심리극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밝음에서 어둠으로", 또는 "희망에서 절망으로" 향하는 감정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쇼버 : 그러네. 서정적으로 아름다운 노래 같으면서도 일면 어두운 면도 같이 존재하는 곡이네.


슈베르트 : 그래서 이 곡은 전체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어요. 첫 번째는 설렘과 희망이에요. 젊은 방랑자가 물레방앗간에 도착해 물레 아가씨에게 첫눈에 반하는 이야기죠. 두 번째는 불안과 질투를 담았습니다. 사랑이 이루어진 줄 알았지만, 아가씨가 다른 남자, 즉 사냥꾼에게 관심을 보이는 걸 느끼고 괴로워하는 감정을 표현했어요. 마지막 세 번째 부분은 절망과 죽음의 수용입니다.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 깊은 상실과 슬픔에 빠지고, 결국 시냇물 속에서 평화를 찾는 내용이죠. 자, 그럼 여기서 마지막 20번 곡 ‘Des Baches Wiegenlied’(시냇물의 자장가)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 곡은 시냇물이 그를 감싸 위로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연주가 끝나자, 실내는 숙연한 정적에 잠겼다. 젊은 시절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 설렘에서 시작해 기대, 불안, 슬픔, 절망을 거쳐 마침내 죽음과 안식에 이르는 감정의 여정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었다.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워지는 고요 속에서, 벽난로의 불빛이 일렁이는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던 살리에리가 천천히 두 손을 들어 느린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 박수는 크지 않았지만, 묵직하고 단단하게 공간을 울렸다. 마치 오랜 세월이 담긴 음악가의 한숨 같은 울림이었다. 자연스럽게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살리에리 :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이보다 더 음악과 시가 하나 되는 순간을 본 적이 없네… 프란츠, 자네는 정말… 나의 자랑이야.


그 말은 격앙된 찬사도, 감상적인 감탄도 아니었다. 그저 오랜 세월 음악을 가르쳐온 한 노(老) 음악가의 진심이 담긴 한마디였다. 그 순간, 슈베르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 말없이 숙인 그 인사는, 어린 시절 자신을 이끌어주었던 스승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담고 있었다.


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슈파운과 쇼버,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살리에리의 말 한마디는 슈베르트의 재능에 대한 확실한 증명이자, 이 조촐한 슈베르티아데에 흐르는 진정한 감동의 정수였다.


슈파운 : 시 원작 자체가 실로 훌륭하지만, 우리 프란츠가 곡을 얹어 직접 노래까지 불러주니 더없이 황홀할 따름이네! 자 이제 좀 무거운 분위기도 바꿀 겸 다른 곡을 들려주게나.


슈베르트 : 좋습니다. 이번에는 최근 고안된 독특한 악기 ‘아르페지오네’를 위해 만든 곡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이 악기를 위한 최초의 곡이기도 합니다.


쇼버 : 아니 어떤 곡인데 그렇게 장황해...


슈베르트 : 이 곡은 다름 아닌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입니다. 이 아르페지오네란 악기는 최근 기타 제작자 요한 게오르크 슈타우퍼(Johann Georg Stauffer) 고안한 악기인데 내가 좋아하는 첼로와 기타의 특성을 부여해 만든 독특한 악기로 ‘기타-첼로’라고도 불립니다. 친구 빈첸츠 슈스터(Vincenz Schuster)를 위해 곡을 썼으니 잘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슈스터가 아르페지오네를 연주하고, 내가 피아노로 반주하겠습니다.


슈베르트 : 슈스터~ 그동안 악기 연습은 많이 했지? 연주 문제 없지?


슈스터 : 기타의 특성이 있긴 하지만 일단 활을 써야 하니까 첨에 좀 고전했지만 이내 적응했고 또 악기의 특성까지 파악했으니, 연주에는 큰 문제는 없다네... 자 프란츠 연주를 시작해 볼까?


슈베르트와 슈스터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연주가 시작되었다. 1악장 – Allegro moderato (A단조)로 서정적이고 우아한 선율이 인상적이고, 기교와 감성이 균형 잡힌 구조로 흐름이 자연스럽고, 피아노와 아르페지오네가 서로 대화하듯 주고받는다. 2악장 – Adagio (E장조)로 곡 전체 중 가장 감성적인 부분으로, 따뜻하고 내성적인 분위기, 잔잔한 고백 같은 선율이다. 슈베르트 특유의 ‘고요한 슬픔’이 잘 드러난다. 3악장 – Allegretto (A장조 → A단조)로 경쾌하고 약간 춤곡적인 성격으로 서정성과 생동감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피날레로 밝은 듯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결말로 연주가 끝났다.


쇼버 : (감동한 표정을 지으며) 아~ 이 곡 진짜 멋지네. 처음 들어 보는 아르페지오네의 소리지만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게 아주 매력적인 악기인듯하네. 프란츠의 곡도 너무 좋고...


슈파운 : 둘의 연주 호흡이 탁월했고, 낯선 악기를 이렇게까지 자유자재로 다루는 슈스터의 연주는 그야말로 인상적이었어.


연주를 들은 청중들은 아르페지오네 악기의 독특함과 악기의 특성을 살려 작곡한 슈베르트의 천재성에 대해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소재로 담소가 이어지고는 쇼버가 이야기를 한다.


쇼버 : 참 얼마 전에 프란츠와 함께 베토벤 선생의 9번 교향곡 ‘합창’ 신작 발표회에 갔었는데 여러분도 ‘합창’ 교향곡에 관한 이야기 들었죠? 그때 프란츠와 난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그때의 그 선선한 충격과 감동은 아직도 여운이 가시질 않고 있습니다.


슈베르트 : 맞습니다. 그때 난 ‘합창’을 들으며 온몸에 강한 전율을 느꼈는데 그 이후로는 교향곡에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더 이상 내 능력으로는 베토벤 선생의 교향곡을 계승할 자신이 없습니다. 마침, 그때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던 B단조(8번 미완성) 교향곡을 다시 시작해 3, 4악장을 완성하려던 참이었는데 도대체 한동안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곡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요즘 고민이 너무 많습니다. 어떻게 베토벤이라는 큰 산을 넘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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