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내보낸 회사에 재입사하다.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

by 생각 많은 직장인

2025년 1월, 결혼식을 불과 3일 앞두고 나는 다니던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권고받았다. 달러 환율 급등과 경영 악화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근무 기간이 짧았던 나는 생존을 위한 필수 인력이 아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야 할 결혼식 날, 억장이 무너져 눈물조차 나지 않던 그 서늘한 감각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후 약 9개월 동안, 나는 살아남기 위해 문자 그대로 발버둥을 쳤다. 500곳 넘는 곳에 이력서를 던졌고 70번의 면접을 보았다. 여러 회사에서 짧은 입사와 퇴사를 반복한 끝에 마침내 외국계 대기업인 회사에 자리를 잡았다. 연봉도 나쁘지 않았고 꽤 번듯한 타이틀을 가진 곳이었지만, 그곳에서의 하루하루는 지독하게 춥고 외로웠다. 철저한 개인주의, 보이지 않는 사내 정치, 복잡한 프로세스 속에서 나는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바로 그즈음이었다. 1년 전 나를 떠나보냈던 회사에서 다시 합류해 달라는 제안이 왔다. 체질 개선에 성공하고 있었고 브릿지 투자도 받았다고 한다. 기존보다 좋은 연봉 조건이었고, 무엇보다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의 첫 번째 대답은 '거절'이었다. 회사가 싫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지난 1년간 잦은 이직으로 흔들린 내 커리어의 '연속성'을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었다. 대기업이라는 불편하고 차가운 환경을 묵묵히 감내하며 "최소한 한 번은 여기까지 버텨냈다"라고 증명하지 않으면, 앞으로 조금만 찬 바람이 불어도 쉽게 도망치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또한 나를 쫓아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설명하기 구차한 ‘회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첫 거절 이후 코파운더가 다시 한번 연락을 주셨고 며칠의 고민 끝에 나는 결국 억지로 쥐고 있던 고집을 내려놓기로 했다. 굳이 내 장점을 갉아먹는 차가운 환경에서 스스로를 벌주듯 버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전 회사로 다시 돌아왔고, 어느덧 출근한 지 2주가 지났다.


과거와는 다른 업무를 맡게 되어 새로운 비즈니스를 다시 이해해야 하는 데다, 최근 집 관련 문제 때문에 머릿속에 '브레인 포그(Brain fog)'가 낀 것처럼 멍할 때도 많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드라이브를 다녀오며, 다시 돌아가 출근할 수 있는 곳이 있음에 깊은 안도와 감사를 느낀다.


과거의 나는 늘 무지했던 영역을 깨우치고 새로운 도전에 나를 밀어 넣어야만 성장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돌고 돌아 수많은 상처를 안고 제자리로 돌아온 지금, 나는 조금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이해가 안 되면 해보면서 이해하면 되고, 속도가 조금 더디면 시간을 두고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매 순간 치열하게 무언가를 증명해 내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일기장에 적어둔 한 문장이 요즘 내 마음의 가장 든든한 닻이 되어주고 있다. "회사에서 계속 새로운 걸 도전해야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지금 자체로도 충분하다. 쉬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불안해하지 말자. 쉬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이제 정답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대신, 다시 허락된 이 자리에서 나의 오늘을 무던히 쌓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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