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가 어슬렁대는 밤에

Meet Perry There | 9.

by 성게를 이로부숴

그날 새벽,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나가보니 비에 젖어 엉망이 된 로키가 서 있었다. 녀석은 신발에 온통 흙과 누렇게 마른풀을 잔뜩 묻히고 복도를 두리번거렸다.


“류노스케 아뜰리에에 갔습니까?”


로키는 비에 젖은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시끄럽게 하지 말고 일단 들어와.”


나는 잠에서 덜 깨 정신이 몽롱했다. 도대체 또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만약 로키가 해코지를 할 녀석이었다면 벌써 무슨 일이 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마음대로 해. 그 꼴은 뭐야. 방이 엉망진창이 됐잖아. 욕먹는다고 내가.”


되는대로 휴지를 찾아 흙으로 얼룩진 발자국을 지우려 애썼다. 진흙 때문에 문지를수록 카펫이 더욱 더러워졌다.


“무슨 큰일이라고.”


로키가 신문을 넘겨주었다.


“류노스케가 죽었어요. 그리고 범인은 지금 아마도.”


“뭐? 무슨 소리야!”


신문을 펼쳤다. 거기에는 무언가 깨진 조각과 흐릿하게 모자이크 된 사진이 실려 있었다.


“정말이야?”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여기 뭐라고 쓰여 있는 건데? 뭘 하다 왔길래 꼴이 그래? 너 어제 숙소로 안 갔어?”


“거기 갔었어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로키의 눈엔 의심이 가득했다.


“그보다 왜? 류노스케 씨가 죽었다니.”


긴장된 마음을 누르려 애썼다. 그날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로키는 말없이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겼다.


“갔어.”


“뭐요?”


로키는 심각한 얼굴로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눈을 치켜떴다.


“나한테 뭐라고 하기 전에, 네가 한 말부터 생각해. 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누구 때문에 거길 가게 된 건데.”


“류노스케 씨는 임은 씨가 직접 만났습니다. 그 얘기를 꺼낸 것도 당신이고.”


“애초에 그림자니 돈 조반니니 C.D.F의 그림 같은 걸 얘기 한 건.”


할 말이 없었지만 맞받아 쳤다.


“됐어. 난데없이 류노스케 씨가 죽었다니. 말도 안 돼. 여기 어디에도 그 이름은 없어. 알겠어?”


로키가 일어섰다.


“너,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내가 아니라 네가 제일 이상하다고.”


“오리너구리를 쓰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뭐?”


“페리를 만나 직접 물어보시죠.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 도망을 치던지요. 정말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로키는 협박하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로키가 나가고 방문을 굳게 잠갔다. 방금 태도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로키 같은 녀석과 싸우거나 하는 일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로키가 두고 간 신문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낮에 산 신문과 똑같은데…. 어째서 헤드라인이 다르지? 석간인가?’


신문을 들고 로비로 내려갔다. 누구라도 있으면 기사의 내용을 물어볼 참이었다.


‘하지만 만약 로키 말이 진짜라면….’


다시 방으로 올라와 창문을 열었다. 아직 박명도 없는 새벽. 공기는 맑고 차가웠다. 이 도시에는 어두운 밤이 되어야 만 축축한 기운을 걷어내는 청량한 시간이 찾아온다. 낮보다 쾌적한 밤.


“여기 오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가 몰려왔다. 하지만 정말로 류노스케 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내가 무언가 목격을 한 것이라면, 잠자코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용의자가 될지도 몰라.’


류노스케 씨의 안위보다 나의 곤경에 대해 생각이 깊어졌다. 오리너구리 앱을 열어 페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페리, 물어볼 것이 정말 많습니다. 류노스케라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도움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텔레비전을 켜니 새벽 뉴스가 흘러나왔다. 어느 채널에도 류노스케 씨에 관한 뉴스는 없었다.


‘살인 사건이라면 분명 뉴스에도 나올 텐데….’


별 소식 없이 날씨 뉴스가 나왔다. 말끔하게 멋을 낸 기상캐스터의 싱그러운 미소와 어울리지 않게 오늘 역시 흐리고 비가 올 예정이었다.


“아. 와인 바구니.”


정신이 없었던 나머지 어제 산 와인과 햄을 레스토랑에 그대로 두고 온 것이 떠올랐다. 로키가 두고 간 신문을 챙겨 무작정 호텔을 나섰다.




의외로 CAVETE 레스토랑은 문이 모두 열려 있었다. 조심스레 창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공간에서 바깥과 결이 다른 바람이 흘러나왔다.


“왜 다 열어 뒀지?”


입구의 커튼을 열고 들어갔다. 삐걱거리는 나의 발자국 소리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조심스레 지난밤 앉았던 자리로 가 보니 와인이 들어 있는 쇼핑백이 그대로 의자 밑에 있었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쇼핑백을 집어 들었다. 리본과 포장지가 부스럭 대는 소리가 났다. 부엌 쪽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당신 누구야? 무슨 일이야? 이 늦은 밤에.”


열린 나무 문으로 짙은 머리칼의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영어로 말했으나 서툰 억양이었다.


“당신 누구요?”


“아…. 어제 왔던 사람입니다. 두고 간 물건이 있어서요. 다행히 찾았습니다.”


“그게 정말 당신 거요?”


다른 창문으로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나이보다 주름이 많은 것 같은 피곤한 얼굴과는 반대로 눈이 아이처럼 반짝거리는 사람이었다. 중년의 남자와 여자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건 제 것이 맞습니다. 저 앞 가게에서 샀습니다.”


“여자친구?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나 보네. 아직 어리니 기회는 많을 거야.”


남자는 별안간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어둠 속으로 다시 고개를 쑥 집어넣었다. 삐그덕 대는 소리가 났다. 아담한 아저씨인 것을 확인하자 마음이 놓였다.


“우리는 청소 중이었는데.”


“그러셨군요.”


남자가 독일어로 무언가 말을 했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자 서툰 영어로 돌아왔다.


“우리는 부부지. 독일어를 함께 배우고 있단 말이야. 외국어란 젊었을 때 해야 하는 건데.”


나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신문을 펼쳤다. 부부는 나란히 앉아 총총한 눈으로 내가 가리킨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혹시 이 기사가 무슨 내용인 지 아세요?”


남자는 어둠 속에서 글을 읽는 데 익숙해 보였다.


“누군가 사라 졌어.”


“사라져요? 죽은 게 아니고요?”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부인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손에는 행주와 청소용 스프레이가 들려 있었다.


“고맙습니다.”


“이 밤에 조심해서 가라고.”


남자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서툰 발음과 배려 없는 둔탁한 스킨십. 격 없는 표정과 조심성 없는 제스처. 여행 중이 아니라 익숙한 어딘가의 골목에서 오래전부터 알았던 누군가를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레스토랑에서 나와 어젯밤 페리가 가리켰던 숲 길 쪽으로 걸었다. 줄지어 선 나무들이 잘 관리된 산책길이었지만 이른 새벽 가로등이 꺼져 음산한 기운이 풍겼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이어폰을 꽂았다.


‘로키 자식, 죽긴 누가 죽어.’


그러나 여전히 로키와 페리가 의심스럽지 않았다. 나는 그 녀석들에게 이유 없는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 정보 없는 타인이 두려운 시대. 스탕달과 프루스트, 러스킨을 읽으면서 느꼈던 첫인상. 그들에 대한 나의 호감.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결코 쌍방향이 아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나는 지독히도 이기적으로 살아왔다. 여행이란 내가 스스로 타인임을 받아들임으로 나의 세계를 벗어나 포용됨을 느끼는 것일까.


‘너 아무렇지 않게 마음껏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역시 여행을 그만둘 수 없었다. 걷다 보니 뮌스터 성으로 가는 건널목이 나왔다.


‘파울리눔! 여기는구나.’


페리가 다녔던 학교가 궁금했다. 천년 전부터 있었던 학교라는 타이틀에 비해 다소 실망적인 현대식 붉은 벽돌 건물이 나타났다. 학교 정문이 잠겨 있어 안 쪽을 보지 못했다.








작가의 말 :

페리가 다니던 학교 앞을 걷다 보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천년 전의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길을 오갑니다. 페리는 거기에 섞여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분명 제가 그 친절한 얼굴을 봤을 지도요.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