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빠 때문에 화가 날 때에도 늘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너희한테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안 그러니?
이 세상에 너희 아빠처럼 너희를 사랑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주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 말 그대로였다.
가정적이고 위트 있는 아빠 덕분에 우리 집은 언제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내 유년 시절이 이토록 즐거운 이야기로 가득한 건, 정말 아빠 덕분이라고 확신한다. 아빠는 내게 꿈을 꾸게 했고, 세상을 넓게 바라보게 했으며,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아빠의 자상함을 떠올리자면 수많은 장면이 머리를 스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있다.
나는 집에서 걸어서 이십 분쯤 떨어져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우리 학교는 보통 밤 10시까지, 고3이 되면 11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했다. 한참 야자를 하다 보면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날이 있었다.
“야, 비 온다. 우짜노? 아 싫다!”
친구들은 창밖을 바라보며 어두운 하늘에 우중충히 떠있는 무거운 먹구름을 원망했다. 애들은 체육복을 뒤집어쓰고 바쁘게 손을 흔들며 교문 앞에서 서둘러 헤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별 걱정 없이 마음을 푹 놓고 수험 문제를 풀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아빠였다.
아이들이 바쁘게 흩어지는 교문 앞을 터덜터덜 내려가다 보면 으레 “00아!” 하고 부르는 정다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커다란 우산을 쓰고, 다른 한 우산을 팔목에 척 감아 건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빠의 팔짱을 끼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마음껏 하며 함께 집으로 걸어갔다.
“야 좋겠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친구들이 바쁘게 빗속을 달려간다.
벚꽃과 비가 함께 내리는
촉촉한 봄의 어느 날,
장대 같은 소나기가 내리는
푸르른 여름의 어느 날,
낙엽냄새와 함께
대찬 장대비가 내리는
축축한 가을의 어느 날,
눈과 비가 섞인 차가운 비에
코트가 무겁게 젖어 내리는
시린 겨울의 어느 날.
이따금 빗소리가 들리면,
나는 우산을 들고
나가 걷는다.
이제는 아무리 기다려도,
아빠는 오지 않는다.
아빠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