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빛 소나타, 파도를 향해 출발!

by 성게를 이로부숴

우리 아빠는 한때 짧게 피혁 공장을 하셨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브랜드보다 가죽의 질을 먼저 본다. 우리 가족은 모두 질 좋은 가죽 제품에 유난히 후하다. 아무리 예쁜 물건이라도 합성피혁이면, 사기 전까지 아주 깊은 고민을 거친다.


나는 그 시절을 또렷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사무실에 있던 가구들이 하나둘 우리 집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바퀴 달린 네모난 의자가 우리 자매의 최애였다. 잘 굴러다녀서 장난치기 딱 좋았고, 결국 자주 혼났다.


그 무렵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다.
아빠의 고향, 부산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는 한동안 그 결정을 반대하셨다고 한다.
서울에서만 자란 엄마가, 아무도 아는 이 없는 부산으로 내려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을 하셨을까. 이제 내가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나니, 그때 엄마의 마음이 짠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당시, 국민학교 1학년이던 나와 다섯 살짜리 동생에게 그건 그저 생애 최초이자 최대의 모험이었다. 우리는 이사 짐을 싸며 무엇을 들고 갈지, 무엇을 박스에 넣을지를 두고 매일 싸우고 웃었다.


아빠도 속으로는 걱정이 많으셨겠지만, 내색하지 않고 즐겁게 이사를 준비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함께 들뜬 마음으로 부엌 그릇을 싸고, 가구를 포장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커다란 트럭에 짐을 싣던 날, 우리는 그 높은 트럭에 올라타며 흥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날, 내 동생이 입은 옷이 아직도 선명하다. 엷은 레몬색 줄무늬로 칼라와 손목이 장식된 하늘색 니트. 바람이 매섭게 불던 2월의 어느 날이었다.


마지막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주차장을 신나게 뛰어다니던 우리를 아빠가 불렀다.


“얘들아, 차 타라.”

“안녕!”


우리는 정든 우리 집 창문을 향해 우렁차게 인사를 건넸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섭섭함과 아쉬움 같은

애물단지들을 꾹 눌러 담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우리의 하늘빛 소나타가 출발했다.


사실 그날 이후 정말로 애물단지가 된 것은 따로 있었다.

커다란 가족사진,

벤자민 두 그루와

수많은 포기의 바이올렛들.


캄캄한 트럭 안에서 그 아이들이야 말로 조용히 울고 있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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