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

Meet Perry There | 11.

by 성게를 이로부숴

“일찍 왔네요.”


“네, 좋은 아침입니다.”


페리의 목소리는 여전히 친절하고 따뜻했다.


“도이체스 프뤼슈튁을 할까요?”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페리는 언제나 맛있는 메뉴를 고른다.


“베이컨이나 스크램블 에그도 주문할 수 있어요.”


우리는 커다란 통 창에 빗물이 점점이 맺힌 창가에 앉았다.


“이건 쯔뷔벨슈말츠에요. 돼지기름에 양파를 넣고 양념을 해 굳힌 건데 빵에 바르면 아주 고소합니다.”


페리는 친절히 그릇을 건넸다. 쪽파가 들어간 크림치즈와 오이 피클, 보기만 해도 구수한 빛깔을 자랑하는 노란 버터, 두툼하게 썰어 낸 축축하고 무거운 뮌스터를 닮은 회색 빵을 먹었다. 페리가 버터를 두텁게 썰어 빵에 올렸다.


“여긴 몇 백 년 된 가게인가요?”


여전히 나무 오븐을 사용하는 가게가 궁금했다.


“원래는 이 빵보다 더 검고 더 축축한 뮌스터 품퍼니켈을 굽던 빵집이었습니다. 그래봐야 백 년쯤밖에 안 됐어요.”


“페리는 이 도시를 정말 잘 아는 것 같습니다. 어떤 가게가 언제 열었는지까지도요. 참, 오리너구리는 언제 만든 겁니까?”


그는 아득한 시절을 떠올리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시선을 하늘에 뒀다.


“그건…. 이백 년.”


그러다 내 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농담하지 말고요.”


“대학 친구들과 모여 프로젝트를 했거든요.”


“그중에 로키도 있었고요?”


“네, 로키는 그만뒀지만.”


뮌스터 커피는 진하고 양이 적다. 큰 잔을 시켰으면 하던 참에 페리가 도자기 주전자를 기울여 잔을 채워 주었다.


“페리를 따라 여행을 하면 아무 후회가 없을 겁니다.”


“다 알고 하는 여행은 아무 재미가 없을 텐데요.”


“로키는 왜 그만둔 겁니까?”


조심스레 물으려 최선을 다했다.


“제가 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뭐, 그때만 하더라도 정보를 이용하는 방식에 큰 규제가 없었거든요.”


다소 냉혹한 말투였다. 역시 직원들을 거느리고 어느 정도 규모의 사업체를 운영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냉정한 구석이 없으면 힘들 것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일이었나요?”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 그게 애매합니다. 일단은 합법적인 선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하죠.”


페리는 더 묻지 말라는 듯 딱 잘라 말했다.


“그래도.”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다.


“만약에라도, 고객 정보가 함부로 사용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불법적인 방향으로 말입니다. 제 말은…. 개인 정보 관리가 잘 되어야 한단 얘기입니다.”


로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운을 뗐다.


“그 정보가 좀 새고 있는 것 같습니다.”


페리는 커피 잔을 내려놓고 내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생각을 해 봤는데. 개인이 나설 게 아니라 오리너구리 앱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에서 직접 나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 혼자 신고를 하거나 소송을 하는 것보다, 페리가 직접 아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최대한 어른스럽게 이야기하려 했지만 실제론 타국에서 홀로 경찰서를 드나드는 일들이 막막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습니까?”


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자세히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로키의 이름을 말하긴 껄끄러웠다.


“아, 그게….”


페리는 내가 입을 떼기를 기다렸다.


“작년 12월 말입니다. 포르토에 그 녀석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확실한 건 아닌데.”


나는 끝을 얼버무렸다.


“로키가요?”


“그냥, 포르토 얘기는 못 들은 걸로 하고요. 사실…. 제가 함부르크에서 그 녀석을 만난 게 좀 신경 쓰여서요. 뮌스터에 와서도 그렇습니다.”


“우연이 이상하다는 말입니까?”


페리의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호텔이 어딘 지 늘 알아내는 게 가장 이상하고, 무엇보다 지난밤에 페리와 만나기로 한 레스토랑도 알고 있었던 것이 이상합니다.”


페리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하지만 로키는 나쁜 짓을 할 녀석이 아닙니다.”


그러더니 사기 주전자를 들어 따뜻한 커피를 따랐다.


“세상에는 납득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우연히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호텔 같은 걸 구체적으로 알아낸 것은 이상하지 않나요?”


“끌기 귀찮은 가방을 몇 개나 가지고 있고, 뮌스터에 내리자마자 비를 맞아야 했으며, 적당한 가격의 호텔을 찾으려 했다는 것을 종합해 보면 가벼운 추리로도 금방 알아낼 수 있습니다.”


페리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게다가, 로키랑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이라 이번에 뮌스터에 온다는 얘기를 듣고 먼저 연락을 했습니다. CAVETE는 제가 말했어요. 거기서 약속이 있다고 했거든요. 물론, 그 대상이 임은 씨였던 것은 몰랐겠지만요.”


“정말요? 페리가 말했다고요? 둘이 전혀 왕래가 없던 것 같던데.”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 녀석이 일하는 회사만 해도 제 사무실 앞 건물 인걸요.”


“정말입니까?”


로키 녀석에게 또 속았다.


“이 자식은 왜 그런 이상한 소리만 해서.”


“로키가 좀 재밌는 데가 있죠.”


“우연이 이렇게 많은 여행이라니 꺼림칙했거든요.”


“다 계획하고 살아온 것 같아도 돌아보면 말도 안 되게 맞아떨어진 우연 투성이죠.”


“페리는 꼭 할아버지 같습니다.”


“늙어버린 지 오래됐거든요.”


나는 고향집에 내려가 어린 시절 그대로인 방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와 같은 마음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이건 대체 뭘까요?”


나는 페리에게 지난밤 발견한 카드를 내밀었다. 페리는 정다운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건 아마도 초대장입니다. 카페 파블로의 크리미 아벤트는 조용한 뮌스터에서 나름대로 유명하거든요.”


페리의 눈이 빛났다.


“크리미? 아벤트요?”


“추리 게임을 하는 겁니다. 먹고 마시면서 공연을 관람하듯 추리 공연에 참여하는 거죠. 재미있을 겁니다.”


“독일어로 진행되겠죠? 전 하나도 못 알아들을 텐데요.”


“음…. 자막이 준비될 겁니다.”


“페리도 가 본 적 있어요?”


페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번에 같이 가죠. 페리가 있으면 마음이 놓일 겁니다. 혹시 시간 돼요?”


카페 파블로의 그녀가 나를 초대한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것보다 쉽게 구경할 수 없는 이벤트에 초대된 기쁨으로 설렜다.


“혹시, ‘그림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이 발 밑에 있는…. 지금은 안 보이지만요. 뮌스터에서는 이상하게 그림자 보기가 힘들어서 말입니다.”


“그림자는 실재하는 것에 묶여 그것이 여전히 존재함을 증명하는 수단입니다.”


페리는 전혀 막힘이 없었다. 오랫동안 수없이 생각해 온 결론 같았다. 나는 고해성사를 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사실. 제가 이상한 사진을 찍었거든요. 그리고….”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페리의 노트에 있는 그 메모가 그림자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번엔 친구 장난이라고 했지만. 그게 왠지 마음속에서 지워지지가 않더군요. 그러다가 로키가 이상한 말을 하니까. 정말로 그림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됐어요. 좀 이상하죠? 다 큰 어른이 믿을 만한 얘기는 아닌데 말입니다. 여행을 하다 보니 상상력이 좀 풍부해지는군요.”


페리는 내 말을 단 한마디도 가로막지 않고 들으며 조용히 바깥을 바라보았다.


“에이, 이상하죠? 잊어버려요. 그 메모 진짜 장난 맞죠?”


혹시나 하는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페리가 잠시 내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페리는 마지막 남은 빵에 솜씨 좋게 슈말츠를 바르며 웃었다.


“장난이라면, 반드시 밝혀지겠죠.”


페리가 유쾌하게 물었다.


“제가 다 먹어도 될까요?”


우리는 빵 집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페리는 우산도 없이 회색 코트를 입고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우중충하고 침울한 익명의 색. 축축하게 발효된 시큼한 회색 빵이 다 구워졌는지 흰머리가 지긋한 제빵사가 오븐 문을 열자 아지랑이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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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흐리니 회색 빵을 먹으러 갑시다. 빗물찬 흙 웅덩이 같은 색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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