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러도 괜찮아, 배워나가는 중이니까
우리 아이는 15개월 즈음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아인게보눙(eingewöhnung)이라는 기간을 준다. 보호자가 아이와 함께 약 한 달간 어린이집생활을 같이하며 아이가 기관에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목적.
나도 적응하지 못한 이 독일사회에 이 어린아이를 덜컥 내놓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아이와 함께 서로를 의지하며 보냈던 이 시간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어린이집은 아이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독일사회에 발을 내디딘 처음의 장소였다. 코로나 때 독일에 와서 집에서 육아만 하고 지내다 보니 내가 독일인들을 직접 마주 칠일은 마트랑 베이커리가 전부였던 시절. 나 또한 아이만큼이나 설레고 두려운 마음으로 그 시간을 함께하며 독일어린이집은 어떻게 생겼나, 어떻게 굴러가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게 되었다. 사실 한국에서 잠깐동안 대학소속 어린이집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었고, 현재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도 남편 대학 소속인지라 그 차이를 더 호기심 있게 관찰할 수 있었다.
정말 많은 점이 눈에 들어왔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식사시간.
아침시간 아이들이 각자 접시에 뷔페식으로 본인이 먹을 음식을 직접 골라 담고, 혼자 스스로 먹고, 스스로 잔반처리를 하고 그릇까지 정리한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포셀린 도자기 그릇에!!!
예상대로 식사시간은 전쟁터 같았다. 적어도 내 눈에는.
식탁 옆 선반에는 아이들이 직접 우유에 시리얼과 오트밀을 타먹을 수 있게 되어있었는데, 한 아이는 우유를 엎질렀고, 한 아이는 컵을 떨어뜨려서 와장창 소리가 났다. 어떤 아이는 음식을 골고루 먹지 않고 한 과일만 주구장창 먹고 있었다. 딱 봐도 아직 못 걷는 어린 아기는 망토를 입고 혼자 오트밀을 먹고 있었는데,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모습이 엉망진창이었다.
다 먹은 아이들은 잔반통에 남은 음식을 버려야 하는데, 잔반통 주변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특히 요거트는 바닥에 철퍼덕 떨어져 있다거나, 그릇에서 제대로 제거가 안된 채로 다른 그릇과 섞여서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며 쌓여있기도 했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누가 우유를 흘리거나 잔반통 주변이 난리가 나도 어차피 아이들은 다 실수하기 마련이고 이따가 치우면 그만이라는 분위기. 편식을 해도 아이가 먹기 싫어하는 음식을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다는 태도.
한국에서 유행 중인 '자기 주도적 이유식'이 집단으로 이루어지는 광경이었다.
동시에 내가 한국어린이집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신속하고 정확한 일처리를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는 6-7세 아이들에게도 선생님이 직접 아이들에게 배식을 해주고, 식사시간 와중에도 골고루 먹으라고 옆에서 지켜보고, 다 먹은 친구들은 선생님께 골고루 먹었나 확인도 받고, 잔반처리할 때는 전담선생님이 하나하나 싹싹 긁어서 버리도록 도와주곤 한다.
사실 아직 어린아이들에겐 어른이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어느 정도 독려도 해주고, 힘든 주방일을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잔반처리를 깔끔하게 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보는 바이다. 하지만 그만큼 선생님이 신경 써야 할 일이 늘어난다. 게다가 아이들 배식, 중간중간 더 달라는 반찬 배달도 모질라 잔반처리까지 하나하나 도와줘야 하다 보니 선생님에게 온전히 주어지는 식사시간도 터무니없이 짧은 것도 사실이다.
처음 며칠간 우리 아이는 사과 몇 조각만 먹었고, 잔반처리를 하던 중 다른 아이가 우리 아이 발에 음식을 쏟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는 바닥에 그릇을 떨어뜨려 산산조각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한 가지 느낀 것은 이 사람들은 모든 일을 '완벽하게 보이게' 하려는데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편식을 하는 것이 내 눈에는 문제이지만 -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고
아이가 음식을 흘려서 식탁이 더러워지는 것이 내 눈에는 문제이지만 - 이따가 치우면 그만인 일이고
아이 그릇을 깨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 아이들을 실수하기 마련이고 그러면서 배우는 거다.
이게 그들이 지닌 사고방식이었다.
사실 한국인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땐, 뜨억 싶은 장면이 몇몇 있었지만, 이곳이 독일이고 나는 이 문화를 따라야 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바라보니 좋은 점도 보였다.
실제로 우리 아이는 자기 주도 이유식 훈련을 따로 하지 않아도 꽤 어린 나이부터 스스로 음식을 먹게 되었다. 또한 이유식그릇을 굳이 사용하지 않고 어른이 사용하는 도자기 그릇과 컵을 함께 사용하는데, 생각보다 조심스럽게 잘 다룬다. 아직 접시 1개밖에 안깨 먹었다
어느 것이 더 좋다, 나쁘다 판단 내리기는 힘들지만,
아이를 지나치게 통제하고 늘 깔끔함을 유지하려고 스트레스받았던 나의 식사시간에 조금은 숨통을 트이게 해 준 독일어린이집의 식사시간. 좋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