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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이 Apr 25. 2024

모래성 놀이

무너질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꾸준히, 차근차근히 쌓아 올린다.     


어제는 비가 내려

성 꼭대기로 갈 계단이

살짜쿵 깨져버렸다.     


깨진 조각들 사이

지혜로운 할머니 테이블보와

차분한 언니 빗방울과 장난꾸러기 동생 모래알들이 내게 속닥거린다.     


"천천히 해도 좋아, 용기를 내렴."

"세차게 다가오지 않을게, 다시 맞춰봐."

"에잇, 날 왜 여기다 붙잡아두려고 하는 건데?"   

  

"아니, 그야 여기 모래가 있으니까 그러지.

근데, 이건 모래인데 어떻게 완성하지?"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을까?    

 

로드킬 당한 꿩과 닭들 사이로,

무거운 짐을 업은 용달차가 지나가다

모래성 앞에서 잠시 멈춘다.  

   

"아, 이것 때문이야!

공주님이 오기엔 가깝지만,

너무 쉽게 무너지겠구나."     


하지만 모래성을 옮길 순 없어,

더욱 튼튼하게, 더욱 아름답게 지으려 한다.


또 무너질 것을 알고 있지만,

모래알과 빗방울들아

조금만 견뎌줘,     
    

이번엔,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서로 놓아 달라며 난 여기 붙어있고 싶지 않다며 재잘거리는 모래알들을

재촉해서, 다시 앞으로 나란히!

일렬로 잘 서 보렴,

잠깐만 버티면
공주님이!   


머물 그 잠깐의 시간,

내가 쌓은 모래성 꼭대기에서

따스하고 포근한 테이블 보 위

부드럽지만 바삭거리는 모래알들,

달콤하지만 짭조름한 바다 빗방울과,

65도 아래의 적당한 차를 함께 마실 시간,

그동안의 시간만큼은 튼튼한 모래성이 되어줘.     


무너질것을

알고있지만

모래조각가

는차근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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