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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이 Jun 05. 2024

파편의 소음

정신분석


바다...




달빛의 조각들이 차갑게 나의 물결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것은 분명 빛의 착각, 눈부신 망상이었. 달의 망상 덕분에 파도가 밀려오고, 너울이 일렁거렸다. 흔적이 사라지며 사람들의 숨소리가 불협화음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 소리를 싫어했다. 네 마음의 심연 속에서 깨어난 그 소리. 너만 몰랐던.



(나는 그 소리들이 무언가를 깨뜨린 걸 알아차렸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기억들을 파편으로 만들고야 말았)




깊고 검은 물 밑, 시간의 파편들이 흩어졌다. 무한의 파편들이 바람에 실려 공중을 맴돌았다. 찬 물결 속 기억의 흐름이 일렁거렸고, 소금 내음이 가득한 차가운 손길이 여린 살결에 닿았다. 한 조각의 배는 꿈의 파편처럼 무너져 내렸다. 세상은 손끝에서 분해되어 조각나 파편의 현실로만 존재했다.


(그렇게 무너진 꿈의 파편들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나를 더 깊은 곳으로 잠재우려고만 했다. 난 짜증이 치밀었)




그러나 난 안다. 심연은 깊지 않다. 얕은 두려움만이 가슴속에서 꿈틀댈 뿐. 영원은 짧은 찰나로 다가왔고, 밝은 어둠이 나에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고, 영혼은 하나였으나, 서로를 구분하지 못했다. 그들은 끝없는 파편 속에서 함께 떠돌았다.


(이 파편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없다. 마치 거친 파도 속에 휩쓸린 조각배처럼,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떠돌았고)





어느 날 밤, 나는 고요히 달빛을 품었다. 배꼽 아래 스며든 달빛은 조각난 유리처럼 내 뱃속에서 흩어져 내리고, 그 빛은 차가운 망상을 일으켰다. 바닷가에 서 있는 사람들은 내 뱃속에 스며들다 남겨진 조각난 달빛을 보며 아름답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나는 깊은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그 비밀은 내 안에 갇힌 파편들로 이루어진, 꿈의 잔해였다. 그 조각들이 내 안에서 계속해서 나타났사라지며 파도를 일렁이게 하였고)




결국, 파도를 밀어내었다. 그들의 발목을 차갑게 물들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차가운 손길이 닿자 그들의 각기 다른 템포와 음색으로 이루어진 숨소리들이 하나의 불협화음을 이루며 나의 귀를 찢었다. 찢어지는 비명소리에 깜짝 놀란 그들은 눈을 질끈 감고, 그 소리를 다시 들으려 애썼다. 깊고 검은 물 밑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려 했다.


시간은 마치 깨진 유리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현재와 충돌하며, 과거와 현재가 뒤엉킨 채 공중에 흩뿌러져 서로를 부딪히게 하였다. 그들의 숨은 바람에 섞여 나에게 다가와 파도를 일으켰고, 찬 물결 속에서 그 숨의 기억이 흐트러졌다. 나의 짠 내음이 더 짜게 퍼져 그들의 코끝을 스쳤다. 그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조각배를 꺼내 들었다. 그 배는 꿈의 파편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세상은 손끝에서 분해되고, 그들은 조각난 현실 속에 홀로 존재했으나 함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난 안다. 심연은 깊지 않다. 얕은 두려움만이 가슴속에서 꿈틀댈 뿐. 영원은 짧은 찰나로 다가왔고, 밝은 어둠이 나에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고, 영혼은 하나였으나, 서로를 구분하지 못했다. 그들은 끝없는 파편 속에서 함께 떠돌았다.


그 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파편 속에서 진실을 찾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마침내 나는 그들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고, 그들은 그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했다.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뱃속에 달빛 조각을 품고 있으며, 그 속에 그들의 파편을 함께 품었다. 그건 내가 차가운 손길을 내뻗었을 때 그들이 역겹다며 남겨둔 소중한 것들. 그래서 어쩌면 내 뱃속에서 영원히 있을 것이다, 그들이 다시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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