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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진 Jul 26. 2018

도시, 살다 2화 - 충남 당진 아미미술관

아이들이 떠난 자리

함께 할래?


"유진, 어댑티브 리유즈(adaptive reuse)에 관한 책을 쓸 건데, 함께 할래?


사이먼스 교수님께서 내 큐비클을 스치듯 지나치시며, 박사과정부터 미국 생활을 시작한 코리언은 도저히 알아듣기 힘든 매우 성의가 없는 뉴욕 발음으로 말씀하셨다. 사실, 처음에는 못 알아들었다. Book, Reuse, Join 정도가 귀에 들어왔는데, 단어 조합이 잘 되지 않았다. 교과서를 재활용하라는 소린가, 재활용해서 환경을 아끼는 운동에 참여하라는 소린가.


못 알아듣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교수님의 모든 제자들이 소집되었다. 교수님은 나를 포함하여 박사과정 지도학생은 두 명, 석사과정 지도학생 역시 두 명, 이렇게 총 4명의 학생을 지도하셨다. 지도학생이 많은 교수님들은 열 명을 훌쩍 넘는 학생을 지도하셨던 것을 감안하면 교수님에 대한 악평이 고작 3명의 학생만 교수님을 선택하게 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 일 년동안 교수님의 수업을 한 차례 들을 수 있었다. 석사 수업이었고 필수 과목도 아니어서 굳이 찾아서 들을 필요는 없었는데, 교수님은 당신의 조교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강을 해야 한다고 하셔서 수강을 했었다. 대학원 석사 재학생은 200명이 넘었다. 그중 약 60명 정도가 수강을 한 수업이니 대학원 수업 치고는 매우 많은 학생이 수업을 들었고, 수업의 내용은 부동산 재개발의 타당성을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고 실제 재개발 위치를 정해서 분석을 해보는 것이었다.


수업의 방법이 매우 독특했는데, 교수님의 실제 강의는 6주 정도에 마무리 되고 나머지는 실제 부동산 재개발을 시행해본 건설업자, 정부 관계자, 시민단체 관계자를 초빙하여 현실감 넘치는 강의가 진행되었다. 이 많은 강사의 강사비를 어떻게 감당하시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나중에 여쭤보니 모두 친구들이라 무료로 강의하러 온다고 했다. 재능기부였다. 교수님의 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크하기로 두 번째라면 서운하실 것 같은데 사람이 시크하기만 하면, 주위에 누가 남아 있겠는가.


강의를 하러 오는 모든 강사들은 우리 지도교수님, 사이먼스 교수님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꿀단지에서 꿀 떨어지듯 뚝뚝 떨어지는 칭찬을 늘어놓았다. 가식은 전혀 없었고 진정성이 묻어있었다. 그동안 교수님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 충분히 유추하고도 남았다. 교수님께 들은 그 첫 수업은 지금도 내 수업의 방향성 형성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지도학생 중 석사과정 학생 두 명은 이 수업을 통해 교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다시 '어댑티브 리유즈'로 이야기. 교수님 연구실에 네 명의 지도학생이 모두 자리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은퇴를 앞두고 계신 - 지금은 당연히 은퇴하였다. - 우리 학교의 레더버 교수님(Dr. Ledebur)이 인자한 웃음을 보이시며 연구실로 들어오셨다. 레더버 교수님은 마치 프라이드치킨 업계 최강자인 K프라이드치킨의 로고에 등장하시는 할아버지처럼 생기셨다. 그 놀라운 싱크로율에 적지 않게 놀랐었다.


이런저런 하나 마나한 이야기가 오가 던 중 다시 교수님 연구실의 문이 열리고, 누구인지 짐작을 할 수 없는 중년 남성이 들어왔다. 곧이어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름이 개리 드와인(Gary DeWine)이라 하셨고, 부동산 건설 회사를 오랫동안 운영하다가 최근 은퇴하고 제2의 삶을 설계 중이라 하셨다.


모두 모이자 사이먼스 교수님이 우리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운을 떼셨다.


"우리, 빈 교회와 학교에 영감을 불어넣어 볼까요?"


이렇게 우리의 교회와 학교 어댑티브 리유즈를 위한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두유 노우 어댑티브 리유즈?


어댑티브 리유즈는 적당한 우리말 표현을 찾기 어렵다. 최근 도시재생 연구자와 활동가는 '공간 업사이클링'이라 부르는 것 같다. 어댑티브 리유즈의 어댑티브(adaptive)는 '적응하는'이란 뜻을 가진 형용사이고 리유즈(reuse)는 당연히 재활용이란 뜻이다. 재활용이면 재활용이지 적응하는 재활용은 뭘 의미할까.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이 활동하던 다양한 공간, 집이나 학교, 교회, 서점, 식당 등은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하여 활용 중지 상태에 이를 수 있다. 곧 새로운 주인을 찾으면 큰 문제는 아니지만 매우 긴 시간 동안 공간이 활용되지 않으면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부동산 가치가 떨어지니 재산세 중심의 지방세입은 큰 타격을 받아 지방정부의 투자여력이 감소한다. 또 도시 미관도 해치고,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흉가처럼 변하면 그 주위의 낙후가 심해지고, 귀신 나온다는 소문도 돌고. 범죄자의 은신처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당연히 공간을 그대로 빈 상태로 두는 것은 여러모로 지역사회에 좋지 않다.


지역 주민의 수요에 '적응'하고, 지방정부의 미래 비전에도 '적응'하고, 필요한 경우 시장(market)의 상황에도 '적응'하여 원래의 사용과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공간을 재활용하는 것을 어댑티르 리유즈라 하는 것이다.  모든 빈 공간이 어댑티브 리유즈의 대상이 되지만, 우리 팀은 교회와 학교에 집중하기로 했다.


교회와 학교의 적응적 재활용


교회와 학교가 문을 닫는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사람이 그 지역사회를 떠나기 때문이다.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누구는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누구는 더 나은 보육환경과 교육환경을 찾아 떠난다. 물론 집주인이 세를 올려달라고 하니 아쉬움을 머금고 떠나기도 한다. 사람이 떠나면, 그들이 활동하던 주무대인 '공간'이 빈다.


폐교의 재활용 문제가 농촌뿐만 아니라 우리 도시에서도 곧 화두가 될 것이다. 다만, 교회의 재활용은 미국만큼 큰 대화거리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미국이나 우리도 종교인의 절대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 건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지역 커뮤니티를 찾기 쉽지 않은데 미국의 지역사회는 비록 문을 닫은 교회라 할지라도 교회 건물에 대한 보존 욕구가 매우 크다. 그럴 거면 그 교회를 다니면 좋은데, 그러지도 않으면서 건물은 보존하라 한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 교회의 적응적 재활용 문제는 도시학으로 글 좀 쓰는 사람 사이에서 매우 중요한 탐구 주제이다.


학교를 운영하기에 충분한 수의 아이들이 없어 학교가 문을 닫으면 당장 아이들과 학부모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멀어진 통학 거리도 문제이고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는 것도 문제이다. 교육을 무척이나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면 부모는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교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학생수가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리 도시에 위치하고 있어도 학교는 통폐합의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과연 학교는 헐어 버리는 것이 좋은가, 보존하는 것이 좋은가. 쉬운 결정은 아니다. 하지만 학교라는 건물 자체가 가지는 매력이 존재한다. 우선 넓은 공터, 즉 운동장이 있다. 도시에서 학교만큼 큰 주차장을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은 흔하지 않다.


아미미술관의 본관 건물 앞 벤치 너머로 매우 큰 운동장이 보인다.


또한 학교 안에는 다수의 방, 교실이 존재한다. 교실은 주거지로 꾸밀 수도 있고, 창업 공간이나 창작 공간으로 꾸밀 수도 있다. 교실이었던 의미를 되살려, 시민 교육의 장이나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공간 혹은 지역 학교 동아리의 동아리방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이렇게 매력적인 공간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학교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졸업생의 존재라 할 수 있다. 학교는 분명히 법률적으로 교육청의 소유이지만, '그리움'과 '소중함'의 측면에서 졸업생은 심리적으로 학교를 소유하고 있다.  


난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흑석초등학교(내가 다닐 때에는 명수대국민학교였다.)를 졸업했다. 6년의 어린 시절은 40대 중반을 향하는 지금의 나에게도 마치 마음 한 구석에 새겨져 있는 것처럼 잊히지 않는, 아니 잊을 수 없는 기분 좋은 추억이다.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과연 그 시절 내 첫 친구 기훈이는 뭐하며 지낼까, 여러모로 내 라이벌이었던 규영이와 규엽이는 어떤 모습으로 늙어 가고 있을까. 은정이는 여전히 새침하며 기윤이는 아직도 여걸의 풍모를 만천하에 드러내며 리더십을 행사하고 있을까. 정말 궁금하고 친구들이 보고 싶어 진다.


만약 이 학교가 헐린다면? 가슴 아플 수밖에 없다. 그래도 헐려야만 한다면, 내 추억이 훼손되지 않는 그런 장소로 탈바꿈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우리가 졸업한 학교를 바라보는 우리 모두의 마음일 수 있다. 그래서 학교의 재활용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아미미술관
폐교 적응적 재활용의 이정표


왜 아미미술관을 한 겨울에 갔을까.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추워도 너무 추웠다. 비록 도심지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지만 산에 위치하고 있어 매서운 바람의 강도는 훨씬 더 세게 느껴졌다. 아미미술관은 충남 당진시에 위치하고 있다. 찾아가는 길에 바다를 볼 수 있어 운전하는 동안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미술관 매표소 앞에 공터가 있어 약 4-50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매표소를 지나 처음 마주하게 되는 Ami Art Museum 현판은 바로 여기가 그 유명한 아미미술관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 미술관의 아름다움은 자연과 학교가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 아닐까. 넝쿨에 Ami Art가 살포시 묻혀 잘 알아볼 수 없는데도 굳이 드러내지 않았다. 별 것 아니어도, 작위적이지 않은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아미미술관 입구. 시그니쳐로 아미미술관에 도착했음을 알게 한다.


아미미술관은 순성국민학교유동분교를 재활용한 것이다. 미술관의 홈페이지에는 유동초등학교를 1994년부터 임대해오다가 2000년에 매입했다고 적고 있다. 미술관을 매입한 관장님 부부의 열정과 노력이 이 재활용된 폐교 곳곳에 숨겨져 있다. 2011년 미술관으로 개장했다.  


아미미술관은 순성국민학교유동분교를 적응적으로 재활용하여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학교의 외벽을 타고 자라는 넝쿨이 마치 학교가 자연의 품에 안겨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폐교의 본관은 아미미술관의 주 전시실이다. 교실이던 공간이 전시실로 탈바꿈했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의 추억이 가득 넘칠 복도 역시 작품이 전시되는 멋진 공간으로 변신하였다.


학교는 멋진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전면은 탁 트여있는 구조이다.


이 미술관은 민간에 의한 적응적 재활용의 성과이면서도 공공의 이익에 상당히 부합하고 있다. 예술가에게 창작의 공간과 거주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큰 걱정 없이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큰 교훈을 준다. 지금 이 장소는 당진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으며, 당진시민과 인근 지역 주민에게 수준 높은 문화와 예술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미미술관에는 본관 건물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숙소가 있는데 이 공간은 원래 분교의 교사들이 숙식하던 장소이다. 이를 활용하여 현재 작가들을 위한 거주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아미미술관에는 관람객을 위한 휴게공간이 있다. 카페로 차 한잔하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데 이 장소는 교실 외 학생 전체를 위한 교육이 진행되는 교육관을 활용되었던 공간이다.


이 한옥은 매우 허름해 보여도 레지던시 작가들(거주하는 작가들)의 숙소로 활용되고 있다.


아미미술관에는 카페가 있다.
후기
내일의 재활용을 위하여


아미미술관은 폐교 재활용의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아마 내가 이 학교를 졸업했다면, 학교의 폐교에도 불구하고 매우 자랑스럽게 내 아들에게 이 공간을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수업을 듣던 교실, 뛰어놀던 운동장, 선생님과 라면을 끓여 먹었을 기숙사, 교육관까지 모든 공간이 보존되었다. 비록 완전한 도심형 폐교는 아닐지라도 앞으로 폐교의 적응적 재활용 플랜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이정표와도 같다. 아미미술관의 성공과 미래는 그래서 중요하다.


건물은 이야기와 결합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에 큰 차이가 난다. 내 삶이 묻어 있고, 내가 그 건물과 동행한 이야기가 존재할 때, 보존의 가치는 빛이 난다. 그리고 문화를 덧 입혀야 한다. 이윤 창출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추어지면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커진다. 문화를 통해 공공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폐교 재활용은 오늘에도, 내일에도, 그리고 다음 날에도 환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미미술관의 아쉬움은 많지 않았다. 추운 겨울에 방문하여 자연을 온전히 만끽하지 못했는데, 이는 내 책임이다. 다만 지역의 연계는 좀 부족한 것이 아쉽다. 아미미술관 방문을 위하여 하루를 모두 투자하기에는 미술관 관람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 버릴 수 있다. 그러면 시간이 붕 떠 버린다. 아미미술관 이후의 즐거움을 위하여 당진시는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복도도 전시 공간으로 활용된다.


레지던시 작가들의 작품은 미술치인 내가 봐도 큰 의미가 있어 보이며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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