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유진 Jul 27. 2018

도시, 살다 3화 - 제주 프롬더럭 & 더럭초등학교

애월에 가면

제주도


어댑티브 리유즈 프로젝트를 소개하기 위해 시간을 많이 건너뛰어 비교적 최근의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한다.


제주도.


도시를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도 왠지 모르게 낯선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한 30년 전 즈음엔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많았나 보다. 요즘엔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과거에는 택시를 이용해 관광을 했었다고 한다. 신혼여행을 온 새내기 부부나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택시가 있었으며, 하루에 얼마간 정해진 요금을 내면 가이드처럼 관광을 시켜주었단다.


매스컴에서 접하는 제주도는 주로 해녀 이야기. 흑돼지나 다금바리 등의 먹거리 보도. 사투리를 활용한 가십. 그 정도를 벗어나지 않아 제주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 가족 여행을 올 때에도 주로 머무는 곳은 제주도 중문 관광단지였다. 서귀포시의 관광 명소를 찾아다니거나 약간의 해양 스포츠 - 사실 바다에 발 담그는 정도 - 를 즐기고, 박물관 탐험을 하는 선을 넘어선 행위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낯설다 못해 제주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종종 들곤 했다.


2018년 1월에 제주도에서 상당히 큰 규모의 학회가 열렸다. 학회 장소는 역시 중문. 또다시 내 제주도 방문은 중문을 벗어나기 어려워 보였다. 제주도에서 학회가 열린다는 포스팅을 SNS에 올리자 어렸을 적 교회 주일학교(초등학교 대상 교회의 프로그램) 때 만나 청소년기를 교회에서 함께 한 어떤 누나의 댓글이 달렸다.


"교수님, 저 제주도에서 식당 하는데 들릴 수 있음 들려주세요. "


누나가 왜 반말을 하지 않았을까. 세월도 많이 흘렀고, 그리고 이 누난 우리 학교 학생이었다. 서울 사는 줄 알았던 누나가 제주도에 산다고 하니, 신기하고 반가웠다. 위치는 애월이라 했다.


학회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서 푹 잔 후, 애월로 방향을 트는데, 갑자기 제주도에 폭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중문만 날씨가 괜찮았고 중문을 조금만 벗어나 동으로 가도, 서로 가도 몰아치는 눈발에 차를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겁도 났고. 눈이 많이 오지 않는 제주도의 제설 장비는 취약할 테고, 난 익숙하지 않은 렌터카를 몰고 있고.


그렇게 하루를 완전히 발만 동동 구르며 보내고, 또 그다음 날 날씨가 아주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은 듯하여 애월로 차를 몰았다. 아담하고 멋진, 민박집이 같이 달린 이탈리안 식당에서 누나의 신랑 되시는 셰프님이 해 주신 음식을 먹고, 차 한잔 하러 나갔다. 마침 손님도 없었고, 누나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올 시간은 조금 남은 상태였다.


애월에 가면


차를 몰고 원래 우리가 가려던 찻 집으로 향했으나 문이 닫혀 있었다. 그런데 조금만 둘러보아도 상당히 이색적인 카페가 적지 않았다. 뭔가 예전에는 창고나 작은 공장으로 사용되었음직한 그런 건물들. 그래서 그중 한 곳을 찾아들어갔다. 제주도에 어울리는 돌담을 높이 쌓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지붕은 기와로 덮여있었고, 출입문은 새로 인테리어를 한 듯했다.  


테리스몽의 측면 모습이다.

실내는 기대했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창고로 활용되었음직한 곳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고 그런 빈티지함이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마실 것을 시키기 위해 사장님께 다가가 인사를 건네며 몇 가지 궁금한 것을 여쭈어 보았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이 카페는 공장을 재활용한 것이 아니라는 다소 아쉬운 말씀을 하셨다. 누가 봐도 공장 건물인데.


재활용 건물이 아니라 아예 의도적으로 애월의 지역 특징에 맞게 디자인하여 건축하신 거란다. 다소 아쉬웠던 마음이 존경의 마음으로 바뀌고 있는 날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이유를 물었다. 애월은 제주도에서는 상대적으로 밭작물 위주의 농업이 발전한 지역이어서 농산물을 저장하는 창고가 오래전부터 주위에 많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경제가 안 좋아지고 제주도의 산업이 관광 쪽으로 급격히 이동하면서 창고는 하나, 둘 헐리고 새로운 주택이나 상점이 드러서기 시작했단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정이 깊게 든 애월에 창고 하나 짓고 싶으셨다고. 다만 거기에 농산물을 보관하는 일은 할 수 없으니 카페를 열고 싶으셨던 거라고 하셨다.


오래전 애월의 모습은 사라져 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장님의 작은 노력이 생업이 되었고 동시에 애월의 옛 모습도 보존되었다.

 

카운터 쪽 모습이다.


사장님께 내 소개를 드렸다. 예전 건물을 보존하여 새롭게 활용하고 있는 사례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고. 명함도 한 장 건네고. 그런데 사장님께서 진짜 창고에 카페가 만들어진 곳이 근처에 있다고 하시면서 거기 가서도 차 한잔 하라고 하시는 거였다. 그 말씀을 듣고 커피를 완전히 비우기도 전에 우리는 사장님께서 말씀해 주신 곳으로 차를 몰았다.


누나네 부부도 모르는 곳. 카페 from 더럭. 카페 앞에는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연화못으로 보였다. 카페의 이름이 연화못 카페 from 더럭이었으니까.


카페 프롬 더럭의 정면이다.


프롬 더럭의 측면 모습을 보면, 이 곳이 과거에는 창고로 활용되었음을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바로 전에 들린 카페에 비하여 훨씬 인공적 느낌이 덜 했으며 카페 주변 역시 더 자연스러웠다. 애월에는 이런 모양의 창고가 적지 않게 있다. 상당히 헐렸다고는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눈을 돌려 찾으려고 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카페 프롬 더럭의 측면 모습이다.


실내의 모습도 오래됨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천장의 구조물이나 벽면의 질감이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예전 것을 재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보석같이 빛나는 곳이다. 사실 나중에 검색 후 알게 되었는데 프롬 더럭은 제주도 두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를 테면 본점과 지점인데, 노형점과 애월점에 있다고 한다. 노형점은 말 그대로 우리가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카페이다(노형점은 from the luck이라는 간판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애월점은 전혀 다른 느낌을 선물하고 있다. 사장님이 노형점에 계실 때 방문하여 대화를 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쉽다.


프롬 더럭의 내부이다.


카페 앞에는 연화못이라는 호수가 있다. 따뜻한 계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을 만큼 예쁘게 조성되어 있었다. 아마 연못에서 산책하거나 운동한 후 프롬 더럭을 방문하지 않을까.


연화못이다.


이제 차를 돌려 다시 누나네 식당으로 향하려는데 프롬 더럭 애월점이 본점일 수도 있겠다는 강한 느낌이 오는 공간을 발견했다. 바로 초등학교!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현 더럭초등학교)였다. 이 학교는 폐교가 아니고 현재 운영되고 있는 학교이다. 누나에게 들으니 거의 폐교가 확정되었던 학교인데 애월 주민들, 학생과 교사들이 힘을 합해 학교에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애월이 학교 덕에 유명해지고 관광객도 적지 않게 오면서 실제 이 곳으로 귀촌하는 인구도 많아졌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어린 아이들도 새로 전학오게 되고 최근에는 심심치 않게 신생아가 태어나기에 학교는 폐교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럭분교의 정면 모습


정문 위에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수업 시간에는 탐방로만 이용해 달라는 부탁의 말씀이 적혀 있다. 국공립 학교도 일반적으로 수업 중에는 학교를 개방하지 않는데 더럭분교는 탐방로를 설치하고 탐방로를 이용한 학교 탐방은 언제든 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  


학교 앞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플래카드가 이 곳이 현재 운영되고 있는 학교임을 보여주고 있다.


더럭분교에는 탐방로가 있다. 수업 중에는 탐방로를 이용하여 학교 안 운동장을 산책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탐방로가 만들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운동장과 학교를 빙 둘러 탐방로를 만들어 두었다.
탐방로와 학교의 모습이 보인다.


학교 안 가장 구석진 곳에 벤치가 마련되어 있다. 이 곳에서 더럭분교 학생들은 밥을 같이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손도손 날씨 좋은 날 야외수업을 했을 수도. 남자아이들은 의자 건, 책상이건 뛰어다니며 붙잡으러 오시는 선생님들 약을 올렸을 수도 있다. 그러다 다쳤을 수도. 이 학교를 졸업한 모든 이에게 하나 이상의 기억을 떠올리게 할 소중한 자원임에 틀림이 없다.


학교 안 가장자리에 나무로 만들어진 벤치가 있다.


최근 더럭분교에 관한 글을 찾다 보니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더럭분교가 더럭초등학교로 승격되어 본교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연히 만난 초등학교인데 이 친구도 전국구의 위상을 자랑하는 무지개색의 예쁜 학교로 소문이 나 있었다. 모두의 노력이 빛을 발한 거 아닐까. 이 학교를 위해 열정을 쏟은 모든 분들에게 감사가 절로 나왔다.


후기
제주의 이야기는 끝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제주는 매우 단편적이거나 제한된 정보에 의해 편견이 작동한 그런 제주일지 모른다.  이 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어쩌면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긴 시간일 수도 있다. 제주는 볼거리, 먹을거리, 체험거리가 넘쳐 난다. 뭍에서 온 나는 자연과 제주도민이 한 상 거하게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제주의 자연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제주도민의 삶이 어떠한지 궁금해하기보다 주어진 한 상을 먹어 치우기에 바빴던 것 같다.


제주도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제주도민의 멋진 도시재생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걸음을 더 재촉하고자 한다. 제주의 이야기는 끝이 아니다. 오히려 시작이다.  

이전 03화 도시, 살다 2화 - 충남 당진 아미미술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