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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지 Apr 18. 2024

아프가니스탄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카불 공항이었다.

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하는 유엔 컨설턴트이다. 어쩌다보니 카불에서 1년 넘게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다. 탈레반이 사실상의 정부 역할을 하고, 여성은 남성 보호자 없이는 외출조차 어렵고, 총소리가 생각보다 간간히 자주 들리는, 신문 국제면에 간간히 등장하는 그 나라 맞다. 제 발로 저벅저벅 걸어들어와 놓고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상당히 기괴한 곳이다. 


서울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입국하는 루트는 작년 기준으로 딱 2가지 밖에 없었다. 일단 비행기를 타고 두바이나 도하까지 가서 얼마간 기다린 다음 유엔 항공(UNHAS)을 타고 들어가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한국 외교부가 지정한 여행금지국가 4단계 위치를 십수년간 당당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전에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허가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입국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행과 빨간줄이 기다리고 있으니 꼼꼼한 서류 검토는 필수다. 예외적 여권 사용을 신청하면 카타르로 이관한 아프가니스탄 한국 대사관에서 연락이 오는데, 2021년 8월에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이후로 아프가니스탄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만큼 적기 때문에 무려 영사님이 직접 전화를 주신다. 


"혹시 누군가 강요해서 가는건 아니죠? 본인이 선택한 거 맞죠?"

"네? 아프간 행을 강요하면 그건 범죄 아닌가요..?"


회사가 준 계약서도 꼼꼼히 검토했고, 연봉과 위험 수당도 확인했고, 4주에 한 번 나오는 특별 휴가에 관한 내용은 특히 꼼꼼하게 여러번 반복해서 읽었으며, 특약 사항이 포함된 보험 서류에도 서명했다. 상속인을 지정하는 서류도 작성했고 혹시 납치 당할 경우를 대비해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흡사 감옥 머그샷 같은 양옆정면 사진과 함께 신체적 특징도 야무지게 적었다. 오른팔과 가슴에 작은 문신이 들어가 있으니까 아마 알아보기 쉽지 않을까? 그러니까 일단 내 의지로 가기로 한 거 맞다. 


출국 당일. 유서까지 써놓고 온갖 지지리 궁상은 다 떨면서 극도로 쫄아있는 상태로 들어간 나는 두바이 공항에서 유엔 항공을 기다리면서 주변 사람들을 힐끔힐끔 훔쳐보다가 왜 저 사람들은 긴장을 하나도 안하고 시시덕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웃을 수 있지? 이제부터 카불에 들어가는건데 다들 제 정신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에 카불 들어가는 비행기 기다리면서 밀린 모바일 게임 퀘스트를 쫙 몰아서 깨고 야무지게 가챠까지 돌리는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어깨가 뻣뻣하게 굳어 아플 정도로 긴장했다. 기내식으로는 비스켓 한 봉지와 초콜릿이 나왔다. 맛은 그저 그랬다. 그렇게 카불 공항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마친 뒤 유엔 차량이 주차되어있는 주차장으로 이동하면 기사님이 알아서 유엔 컴파운드까지 잘 데려다주셨다.  



그렇게 나의 카불 살이가 시작됬다


WFP 아프가니스탄 국가 사무소가 현재의 컴파운드로 이전하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 습격이 있었고 경비를 서고 있던 용병과 직원 몇명이 순직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유엔 컴파운드에 들어온 직원은 알앤알 사이클이 오기 전까지는 출장이나 공무 외에는 컴파운드에서 나갈 수 없다. 유일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은 다른 유엔 기구의 컴파운드 뿐이다. WFP 아프가니스탄 사무소는 작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인도적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 사무소 중 하나인데, 2021년 8월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이후로 급격하게 식량 상황이 안 좋아졌고 펀딩이 단기간에 밀물 들어오듯이 넘치게 되면서 새로운 데이터 담당 직원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때마침 그 자리에 내가 뽑히게 된 것이었다. 


컴파운드 도착하자마자 세큐리티 부서에 인계되어 2시간 동안 안전 브리핑과 컴파운드 시설 안내를 받았다. 이 나라가 얼마나 (세큐리티적으로) 총체적 난국인지, 컴파운드 내에서 지켜야 할 각종 안전 수칙부터 테러범이 쳐들어와서 샷건을 난사한다면 어디로 도망가야하는지, 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면 어디로 튀어야하는지, 지진이 났을 땐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지급되는 무전기로 매일 안전 체크는 어디로 어떻게 하는지 등의 다양한 안전 수칙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장거리 비행으로 밤을 샌 상태에서 쉴새없이 속사포로 쏟아지는 규칙들에 체력도 약하고 다리도 짧으며 민첩함과는 거리가 먼 내가 과연 잘 튈 수 있을지 많은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가니스탄에 온 걸 환영해. 이제 들어가서 짐 풀고 좀 쉬어. 식당은 쭉 걸어가서 왼쪽에 있으니까 저녁은 거기서 먹어" 컴파운드 안내를 마친 담당자가 종종 걸음으로 사라지자마자 긴장이 풀리면서 급격한 피로가 몰려왔다. 


나..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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