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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지 Apr 18. 2024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릎 꿇려진채로 걷어차였다


연약한 한국인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살아남는 법


지금껏 살면서 처맞은적이 없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90년대생들은 알 것이다. 불과 20년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을 허구한날 개패듯이 패면서 매타작을 하는 건 생각보다 흔한 일이었고 나도 당연히 처맞으면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양손이 구속되고, 얼굴이 검은 천으로 가려진 상태에서 무릎이 꿇린 채로 걷어차여본적은 없었다.


사실 나는 머리털나고 총을 처음봤다. 터번을 두르고, 방탄 조끼를 입고, 권총과 장총 그리고 수류탄으로 무장한 100미터 밖에서 봐도 나 탈레반이라고 광고하는 것 같은 사람들이 차량 밖으로 지나갈 때 마다 자연스럽게 눈을 깔았다. 유엔 직원의 부임지는 위험도에 따라 A부터 E까지 크게 다섯가지로 분류되는데, 아프가니스탄은 높은 테러 위험도, 낮은 보건 접근성, 빈번한 자연재해, 열악한 주거환경까지 E 카테고리로 분류될 모든 요소를 두루두루 갖추고 있는 곳이었다. 그말인즉슨 새롭게 부임한 직원은 모두가 예외없이 3일에 걸쳐 안전 훈련을 받아야한다는 걸 의미했다.


군대도 안 다녀왔으니 AK47니 M16이니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전히 자주 사용되는 자동 소총의 사거리와 구경, RPG-7 대전차 로켓을 제대로 쏘면 작은 전차 하나는 그냥 날려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알리가 없었다. 다행히도 유엔이 사용하는 방탄 차량의 차체는 AK47을 수십발 내갈겨도 뚫리지 않을만큼 견고하다고 한다. 왠지 차 문을 열고 닫을 때 마다 존나 무겁더라니. 다만 방탄 유리로 된 창문은 최대 3-4발이 한계니 총격이 시작되면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창문이 깨지기 전에 따돌리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는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다양한 사제 폭탄과 지뢰의 유형, 그리고 대응 방법에 대해서도 배웠다. 콜라 캔 안에 작은 폭탄을 넣어서 버리고 간 쓰레기처럼 생각하게 한 뒤 건드리면 폭발하는 방식도 있다고 하니 조금이라도 수상해보이는 물건은 아예 건들이지도 말라고 했다. 뒤이어 동료가 총상을 입었을 때 응급 처치를 하는 방법, 대량 살상 상황에서 생명 징후가 없는 사람과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구분하는 법, 도청을 대비해 현 위치나 이동 루트가 들키지 않도록 암호를 사용해 말하는 무전 통신 방법, 납치범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 등에 대한 강의가 하루종일 이어졌다.


자 이제 실전 훈련을 해봅시다


다음날 이어진 실전 훈련에서는 방탄 조끼를 최대한 빠르게 입는 연습을 한 후 납치극 시뮬레이션에 투입되었다. 영화 속에서는 방탄 조끼를 무슨 후루룩 잠바 걸치듯이 잘도 입던데 이 조끼로 말할 것 같으면 11kg나 나가는 존나 무거운 유사 돌덩이로 비상시에는 머리를 내려치는 무기로 써도 될 것 같았다. 덤으로 두터운 헬멧까지 쓴 채로 자갈밭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나는 이미 사인해 제출해버린 계약서를 무를 수는 없는지에 대해 잠시 생각했지만 이제와서 후회해도 늦은 일이었다. 이래서 계약서에 서명할 때는 언제나 신중해야한다.


이윽고 귓가에 총소리가 수차례 들렸다. 당시에는 총소리를 흉내내기 위해 폭죽을 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훈련이 끝난 뒤 알고보니 실탄을 넣지 않은 총을 그대로 방아쇠만 당겨서 소리만 비슷하게 낸거라고 하더라. 나는 유엔에 입사한 것이 아니라 군대에 입대 한 것인가? 계약서에 이런 이야기는 없지 않았던가? 도대체 나는 여기서 구르고 있는 것인가? 에 대한 생각을 수십 번쯤 했을 때쯤 겨우 훈련이 끝났다.


아니 끝난 줄 알았다. 훈련 책임자인 안전 담당관이 드물게 상냥한 웃음을 지으면서 오늘은 고생이 많았으니 다른 컴파운드로 이동해서 다같이 커피와 차를 마시고 훈련을 마무리하자고 했다. 컴파운드 체육관으로 이동한 나는 불과 훈련 개시 네시간만에 너덜너덜해진 팀원들과 함께 곧 나올 달달한 쿠키와 커피를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금 총성이, 이번엔 샷건을 연사하는 소리가 울려퍼졌고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썅욕을 내뱉으며 전력 질주를 하다가 서로의 발에 걸려 넘어지고 부딪히고 구르거나 했고 나도 장렬하게 자빠져 오른쪽 무릎에서 살짝 피가 배어나왔다. 그러니까 액티브 슈터, 제한된 공간이나 인구 밀집 지역에서 총기를 사용하는 개별 범행자를 상정한 특별 훈련이었던 셈인데 담당자는 이게 실제 상황이었으면 너는 100% 죽었을거라는 말을 아주 상냥하게 덧붙였다. 너무 친절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신입 신고식치고는 꽤나 화려한 잊지 못할 하루였다. 숙소로 돌아와 근육통으로 너덜너덜한 몸을 이끌고 기절하듯 잠이 들면서 생각했다.


나.... 앞으로 진짜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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