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과 필멸에 대하여
꿈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많던 어릴 적의 나는 어느 날 문득 '죽음'을 생각하다가 괜히 무서워진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무섭고, 나이가 드는 것이 무섭고,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인간의 숙명이 무서워져 생각이 많아졌던 날. 그때 나는 불로불사의 존재가 너무도 부러웠다.
그러다 보니 그 무렵 <안녕 프란체스카>를 보았을 때 가족과 지인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늙지도 죽지도 않는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 하는 희진에게 하는 소피아의 질책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리석은 인간 같으니라고, 뱀파이어가 된다는 게 어떤 고통인지 알기나 해? 죽을 만큼 아플 기억들을 평생 여기에 끌어안고 영원히 숨어 사는 게 어떤 고통인지 상상도 못 할 거다. 뱀파이어가 되는 순간부터 넌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거야. 친구도 죽고 가족도 죽고 모두가 사라진 후에 혼자 남은 네가 진짜 너라고 생각해? 널 기억해줄 사람도 없고, 네 이름을 불러줄 사람도 없을 텐데. 영원한 삶? 마음속은 온통 텅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데 죽지 못해 껍데기만 남아서 멈춰버린 시간을 영원히 반복해서 살아가야 하는 게 바로 우리 뱀파이어들이라고!"
불로불사가 부럽기만 했던 어렸던 그때는 '뱀파이어가 되는 것은 저주'라는 의미를 이해하고 싶어서 여러 번 곱씹어 봤지만 도저히 이해가지 않았다. 어차피 극 중에서 인간사에 지치고 환멸을 느낀 희진은 뱀파이어였던 켠을 사랑하고 있던 상태였는데 저 말이 와닿았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십수 년의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것을 경험하면서 이 대사를 다시 보니까 소피아가 슬프게 외치며 희진을 질책하는 저 말이 너무도 공감된다.
1. 계속 친구를 사귈 수 없다
: 설령 누구를 사귄다 해도 오래 못 사귄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그를 떠나 떠돌아다녀야 한다. 또한 새로 사귀는 사람들은 또래도 아니며 같은 시대를 경험한 게 다르다.
극 중에서도 본인들이 뱀파이어라는 걸 주변인들에게 밝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간이 흐르면 다른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전혀 나이 먹지 않는 '자신'을 이상하게 볼 텐데 그렇게 보기 전에 알아서 그곳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코 한 곳에 오래 머물 수도 없고 친구를 사귈 수가 없는 것이다.
2. 그럼 다 같이 뱀파이어가 되는 수밖에....?
바로 그것 때문에 <안녕 프란체스카>에서는 흑사병 이후 변이가 생겨서 더 이상 인간을 물어도 인간이 뱀파이어가 될 수 없어서 '뱀파이어는 늘어날 수 없다'는 설정을 넣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안녕 프란체스카>의 작가가 상당히 글을 잘 썼다고 언급되는 것이다. '늘어나지 않는 돌연변이 뱀파이어'라는 이런 치밀한 설정 덕분에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뚜렷해질 수 있었다. <안녕 프란체스카 3부>의 아쉬움은 3부의 작가가 1,2부의 작가가 왜 '(흑사병이 퍼진 이후) 뱀파이어는 늘어날 수 없다'는 설정을 썼을까 하는 고민을 덜한 데서 비롯된다.
물론 3부 역시 작가가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1,2부와는 달라야 하고 그래서 인간과 뱀파이어 혼혈이라는 오래전부터 전해진 설정을 가져올 수밖에 없던 것으로 보이지만 1,2부의 정확한 메시지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좀 더 고려했다면 굳이 그 설정을 가져오지 않고 이전 설정들과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다. 3부의 주인공인 인성이가 평범한 인간 아이 었어도 1,2부의 메시지를 잘 살려 3부까지 매끄럽지 않았을까.
3. 뱀파이어 친구들이 있는데 외로울 리가?
그 부분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아있는 뱀파이어들끼리 서로를 기억해주고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면 되는 게 아니냐고, 그래서 설정 오류 아니냐고. 하지만 극을 계속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뱀파이어들이 항상 같이 다니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성을 잘 들여다보면 다들 "야, 너 한 200년 만인데도 싸가지는 여전하구나?" 라던가 "100년 만이네?" 이런 표현을 쓰고 있다. 다시 말해 친구란 마음이 맞아야 같이 다니는 법. 그런데 마음이 맞지 않는 존재가 함께 영생을 살아봤자 그 자신에게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들이 결국 모이게 된 계기도 멸족 위기가 되어서 어쩔 수 없이 당분간 붙게 되어 유사가족처럼 지내게 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두일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게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 바로 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다. 그러니까 원래 이 뱀파이어들은 결국 다들 따로 지내던 모양이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4. 소중한 사람을 매번 만들면 되지 않을까?
예전에는 나도 그것이 간단하고 쉽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까 인간의 취향이란 세 살 취향이 죽지 않는 한 보통은 변하지 않고 평생을 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소중한 사람이 될 정도의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의 텀이 어떻게 될지 그것은 알 수 없다. 그게 100년 일지 500년 일지 모른다. 인간은 취향의 그림자를 좇는다. 극 중에서 프란체스카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던 아르테니와 닮은 두일을 만날 때까지,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첫사랑을 닮은 어쩌면 그의 환생일지도 모르는 다니엘을 알아볼 때까지 500년이 걸린 것에서 알 수 있다.
소중한 사람을 매번 만든다는 것, 그것은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그에게 솔직하게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것을 밝히지 않는 이상 영원히 곁에 머물 수도 없고 그 사람이 죽는 것을 바라보기도 전에 스스로 떠나야 한다. 매번 본인이 먼저 관계를 끊어내야 하는 그런 이별을 겪어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와 오래된 인연을 끊어내야 하는 상황에서 타인에게 고민 상담하며 조언을 필요로 하고 괴로워한다. 그런데 먼저 멀쩡한 인연을 끊는 것을 영원히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니 너무도 끔찍하다.
5. 시간의 격차에서 오는 경험의 차이 때문에 다음 세대와는 '친구'가 될 수 없다.
나랑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떠나가고 다음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서로 경험한 시대가 다르면 결코 진정한 마음을 나누기 힘들어진다. 친구가 되자고 하면서도 결국 자꾸 가르치려는 입장이 되어버린다. 공통 경험의 공감대는 평소에는 자각하지 못하지만 우리 생각 이상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끈끈한 유대감을 만들어 준다.
내 또래들이 다 죽고 밑에 세대들과 나 혼자 남아 살아야 하는 상황을 가정했을 때 내가 아무리 새로운 세대의 새 트렌드를 따라가려고 해도 한계가 있다. 게다가 추억을 다시 되새김하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는 'OO 년대 생 공감' 콘텐츠를 만나면 굉장히 반가워하고 같은 세대의, 같은 시대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걸 즐기지 않는가. 그런데 만약 그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세대의 사람들이 전부 다 죽어서 기억과 추억 공유할 사람들이 없다면? 그렇게 혼자 남은 나는 정말로 나일까? 진짜 허무함과 외로움이 엄청 밀려올 것 같다. 껍데기만 남고 마음은 텅텅 빈 몸이라는 비유적 표현이 매우 실감된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불멸이 더 이상 부럽지 않다. <안녕 프란체스카> 마지막 화에서 결국 깨달은 희진의 대사 중에도 이런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불멸로 영원을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필멸의 운명이더라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정말 소중한 사람으로 영원히 남는 것이 더 아름다운 거라는 걸. 역사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참으로 공감되는 표현이었다.
이제는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이 그렇게 두렵지 않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는 삶의 족적을 남기는 것이 유한한 삶의 가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