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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클레어 Oct 02. 2021

일연은 왜 "이야기"를 모았을까? 삼국유사와 팩션

과거를 통해 보는 지금의 인문학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항상 이것으로 논쟁한다.

역사 사료로는 정사만을 다뤄야한다. 아니다, 야사도 중요한 사료이다.

물론 정사의 위상이 야사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야사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가득찬 것 같지만 정사가 담지 못한 그 이면의 사건을 비유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사료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쓰인 시기를 보면 매우 흥미롭다.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12세기에 먼저 쓰여졌다.

그것도 아주 정통 역사서의 표준대로 상당히 객관적인 사료들을 모아 썼다.

그래서 삼국사기를 살펴보면 진짜 재미없기는 하다.

“ 어떤 왕 몇월 며칠에 무슨 일이 있었다. ”

이런 형태이다.


사실 이미 김부식의 삼국사(史)기는 그동안 남아있던 삼국시대의 모든 사료를 그가 구할 수 있는대로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편성한, 삼국시대사에 관한 모든 사료를 완전하게 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김부식의 삼국사기 이상으로 국내에서 삼국시대사를 정리한 책이 나올 수 없을 정도였다.

만약 오늘날에 정리한다고 해도 김부식의 삼국사기만한 삼국시대사 책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연은 13세기 말 몽골침입기라는 나라의 존망이 갈리는 위태로운 시대를 살면서 왜 삼국'유사(事)'를 쓰게 된 것일까.

학계에서는 일연이 삼국유사를 쓴 계기가 몽골침입기에 민족의식을 고취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아마 그것이 큰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명확한 적이 있는 상태에서 전쟁 중에 피폐해져가는 고려의 현실에 위로를 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데 그 방법은 정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야사"를 모아 편찬하는 것이었다.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일연은 왜 "이야기"를 모은 것일까?




바로 이 지점이 오늘날 역사학의 한 갈래에서 팩션이 나뉘어 등장하게 된 것과 연결이 된다.

오늘날은 "팩션의 시대"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콘텐츠는 미디어에서 장르적 요소로서 사람들에게 관심받는데, 어째서 역사학과는 홀대받고 인문학의 위기라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일까.


역사학과에서 주로 다루는 데이터는 "사실로서의 역사" 이다. 다시 말해 역사가가 선별해서 기록했지만 당대의 현실에 최대하게 가까운 데이터이다.

반면 사극은 가상을 다루는 "꿈꾸는 역사"이다. 사람들은 사극을 통해 현실에서는 만들 수 없던 역사를 가상으로 만들어서라도 꿈을 꾸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더 재미있고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본래 인간은 꿈을 현실로 만들때 행복함을 느끼는 존재로 우리는 현실세계 뿐만아니라 이미 가상세계에서 또한 살고 있다. 무슨 의미냐면 우리가 우리를 "한국인"이라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도 한국사라는 공유된 서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서사 속에서 자기를 정의하고 자기 존재를 찾는데, 만질 수도 느낄수도 없는 '한국사' 라는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서사를 물려받아서 정체화하게 되었다.


따라서 허구로서의 역사는 그냥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대 사람들의 꿈이 모인 것이다.

일연의 삼국유사 속의 이야기들도 굉장히 허무맹랑한 것 같지만 사실 이야기 너머에는 삼국시대의 사실적인 사건 외에도 삼국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꿈이 들어있으며 그들은 그 이야기를 통해 당대 현실에 대한 통찰력을 담았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통해 선조인 삼국시대 사람들의 꿈을 정리하고 싶었고, 삼국시대 사람들의 꿈을 통해 몽골과 전쟁하고 있는 당대의 고려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특히 불교의 힘에 대한 내용이 가장 많은 것으로 봐서 불심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한 이야기를 고려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즉, 허구로서의 역사로서 "야사" 역시 역사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야하는 사료이다.

그 안에는 당대인들의 꿈이 반영되어 있고 오히려 정사에서 검열할 수밖에 없던 여러가지 숨겨진 이야기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학에서는 정사와 야사 모두를 중요하게 여겨야한다.

역사학의 중요한 사료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로 상징되는 것처럼.



다시 한번 돌아보자.

우리들은 왜 팩션을 보면서 즐거워하는가.

오늘 날의 팩션은 특정시대를 그리면서 (또는 가상시대를 바탕으로 실제 역사에 상상을 더하지만) 사실은 단순히 지나간 과거 이야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인 우리의 꿈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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