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인정하자 불현듯이 어느 날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강남 한복판에서 쉴 새 없이 오고 가는 인파들 속에 끼어 유령처럼 걷다가, 중앙차선이 있는 횡단보도 앞에 섰다. 건너편에는 많은 인파가 지나가고 있고, 신호 옆에는 여러 무더기의 인파들이 파란불을 기다리며 서 있다. 인파 속에 묻혀 신호를 기다렸다.
'딩동댕' 신호음과 함께 초록불로 바뀌자 우르르 사람들이 길을 건너기 위해 걸어온다. 인파들이 걸어오는 익숙한 광경을 쳐다보고 있지만 모든 게 정지한 듯하고 무음과 블러 처리된 광경으로 눈에 들어온다. 마치 홀로 차단된 유리막 공간에서 물끄러미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금 떠올려보니, 이제야 경험이 뚜렷이 인식되어 체험되고야 만다.
유리막은 무심하게 흘러가버리는 시간의 부딪힘에 흠씬 두들겨져서, 서서히 조각나기 시작한다. 조각 틈새 사이로 흘러들어온 공기에, 슬며시 눈을 뜨자 감정이 똬리를 튼다. 안락함과 익숙함으로 포장되었으나 유리된 그곳에 얼마나 지독히도 숨 막혔던지 깨고 나가지 못했던 지난날이 한 장 한 장 떠오르더니, 세상 속으로 막연히 언젠가 닿을 수 있다고 제쳐두었던 어리석음을 마주하자, 현재로서는 닿을 것도 잡히는 것도 없는 덩그런 공간과 아주 깊은 감정의 보고와 마주한다.
사실 난 세계와 유리된 채 살았던 것이다. 유입되어 오는 자극에 막아서고 보았던 날들 그런지 조차 몰랐던 날들이었다. 스스로 도달하려 하지 않고, 무력화시키고 끊어내고, 무욕만을 느껴왔다. 그러면서 결핍감을 느꼈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결핍으로도 허상으로도 움직여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그 점을 이미 요상하게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허상은 뿅 하고 사라질 거품이고, 결핍이 불러오는 건 한 낱 도드라짐이다. 불뚝 튀어나오는 이질적인 이물감은 결국 요상하게 도출되어 버린다. 뽀글뽀글 올라오는 요철처럼, 저 깊숙이 박혀있어 도드라지면서도 끝내 압출할 수 없다. 뿜어내지도 곪지도 않는다. 꼴 보기 싫은 것이나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다.
허상도 꿈꾸지 못한 채 자꾸만 침전해 들어가고야 말았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유리창 너머 구경만 하고 있었다. 불현듯이 가까이 선명히 보일 때까지 다가가려 하자 유리창에 부딪힌 것이다. 유리창 안에서 평화로웠으나, 더는 아니다. 나라는 안식처가 내게 준 초연함과 회피에서 갈피를 잡아간다.
* 여러분은 어떠한 자신의 모습을 맘에 들어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