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어떤 만족감에 더 가까울까? 즐거움에 더 가까울까? 보통의 일상적 삶에서 만족감, 즐거움을 시원하리만큼 느낄 수 없다. 아니다. 차라리 이런 읊조리는 이야기는 뒤로 하더라도 마지못해 움직이지 않은 몸뚱이를 억지로 이끌고 살아갈 모양새는 싫은데... 주저앉은 기분만이 감싸 온다. 지금껏 답답함만이 이끼마냥, 곰팡이 마냥 피어오르고 피어오르는데 아무리 닦아내도, 닦아내도 피어오르기만 한다. 커피를 사발로 들이켜도, 갑갑하고 시끄러운 맘이 달래지지가 않는다.
어느 날부터 심오해지고 흔해져 버린, 언급이 남발되고 남용되어온 거창하고도 붕 뜬 의미로 ‘행복’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날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만든 건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도무지 이렇게 살 수가 없다. 어떤 날은 머리와 눈이 핑하는 고통이 느껴진다. 속에서 울렁거리는 어지러움에 겨우 지탱하며 서있다. 일상을 반복하며 흘려보내기를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거다. 당장에 시원한 공기가 필요하다. 동시에 여전히 현실 안착하려 한다. 머무르려 한다. 그런데 참을 수가 없다. 견딜 이유가 없다. 버텨내고 있을 필요가 없다. 어떻게 이렇게 살았지,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단조롭기 그지없는 생활을 선택함이었다.
아마 내면의 욕구 사이, 그 극단 어디에 서있다. 정적인 일상에 소란을 피고 싶지는 않으면서 역동성을 동시에 바라고 있는 것이다. 밋밋한 리듬에서도 높은 강도를 원하는 거다. 양극단의 팽팽함에서 구현하고 실현하기란 어렵다. 시간이 많을 때는 광막한 불안으로 소진되고, 일에 쫓겨 시간이 없을 때는 숨 막히는 정적으로 소진된다. 답답하다고 하면서 무언가를 하기에는 막상 귀찮아지고, 속수무책으로 부질없이 장애를 느낀다. 수동적인 삶에 편함을 느끼면서 적극성을 원하는 것이다. 양극단에서 에너지를 끌어다 쓰지 못하고 있다. 이런 모순 가득한 일상이야, 아닌 것은 아니다. 누가 내 숨통을 잡고 놓아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 여러분의 삶의 모순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