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피

지독한 궤변

by Toi et Moi

가짜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이다. 그리고! 척, 척, 척 척 위장으로도 모자라, 말로만 떠드는 것이다. 지독히도 여태껏 수없이 보아왔다. 기만적일수록 문제는 더욱 노골적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여과 없이 질질 흘리고 적나라하게 읽힐 거리를 제공한다.


자기본위의 생각들에 함몰되어 허우적 되다 보면, 진정한 메시지는 사라지고 궤변만이 남는다. 처참한 내 안의 착각이다. 모순 덩어리로의 궤변! 착각 그 자체. 궤변을 발견하니, 양면성이 가득한 모순덩어리 그 자체이다.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하다. 하지만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지독한 궤변은 사각지대이자 맹점이다. 그럴듯하게 치장하거나 부정하여 눈이 먼다. 눈이 멀어 버리면 잘못 받아들이게 된다. 거듭 맹점만이 덩그러니 남는다. 익숙해서 느껴지지 않지만 지독히도 눈먼 그 지점을 자위적 해석에 빠져 자기기만의 함정에 놓일 수는 없다.


나의 궤변은 무엇인가? 뻔하지 않음을 바라면서 뻔하게 살고 있다. 그걸 자각할 때 다운되고, 추락한다. 뻔하지 않음을 고대하면서 뻔함에 휘둘리고, 그럼에도 뻔하지 않은 경험을 체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더욱 옥죄어온다. 이렇게 너무나 지겹게도 문제 속에 걸려 넘어져 있다. 정체되고 무력하게 고인다.


한 끗 차이로 궤변과 닮아 있는 역설을 이제야 알겠다. 이상을 향한 여정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막연한 소망으로 주문만 외울 뿐, 원할수록 강박적이고 그저 미신적 사고에 지나지 않음을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왜 그토록 미신적 맹목성에 휘둘리는 순간들이 오는지 말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심정을 진정 이해하게 되었지만 더 이상은 스스로의 감정을 속일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다. 감정에 충실해지므로 생각을 멈추고 인식해야 한다.


더 이상 생각의 섬에 나를 홀로 고립시키거나 유배시키지 않겠다. 단행이 필요하다. 미련하게 비나이다 주문을 비는 꼴에 머무는 게 아니라, 파고드는 층층이, 참모습을 찾고 하루빨리 더 깊이 있는 이해를 갖추고자 한다. 이제는 과거의 나, 가짜가 된 나에게 안녕을 고해야겠다.



* 궤변이 낳는 맹점을 찾아본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