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넷플릭스 최다 검색어 '에밀리, 파리에 가다.' 전 세계 넷플릭스 시리즈 부문 2위에 쾌거를 올리며 시즌 2를 기다리게 하고 있다. 시즌 1은 남들이 나를 좋아하도록 평생 애썼다는 에밀리가, 생애 첫 유럽 방문으로 낭만의 도시 파리로 전근을 가서 펼쳐지는 좌충우돌 사랑, 우정과 일에 관한 이야기로 오랜만에 젊은 여성을 잡아끄는 에피소드들로 무장한 작품이다.
에밀리 눈에나, 우리 눈에나~ 동화같이 비추어지는 프랑스인의 삶은 프랑스인에게는 사실 흘러가는 일상일 뿐이다. 프랑스!, 파리지엥!하면, 문화와 감각의 도피처, 시대적 유물, 범접할 수 없는 문화와 감각을 지닌 나라, 모종의 아우라를 닮고 싶어 하면서 동경하고 만다. 그래서 때로는 문화적 우월성을 질투하다가도, 편견에 사로잡혀 깍아내리다가도 그 기저를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저 각박하고 불안한 삶에서 낭만만을 위해 소량 혹은 대량의 환상적 환각제로만 파리를 사용했을 뿐이다.
프랑스, 파리하면 떠오르는 낭만내지는 환상? 환각같은 콩까지를 벗겨보면 어떨까? 그동안의 문화적 이상화의 배신만 뼈저리게 느낄까? 아니면...진정으로 배신당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환각제처럼 마셨던 이미지, 미화와 찬양, 편견과 고정관념 모두를 걷어내야... 비로소 제대로 보이지 않겠는가?
프랑스인은 프랑스를 정작 현실과 낭만이 공존하는 나라라고 자칭한다. 현실과 낭만이 공존한다는 뜻은 곧, 삶과 자신의 관계를 단절시키지 않음에 있다. 어쩌면 생의 목적과 의미 조각이 하나도 없을 수 없는 삶일지라도 생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생에서 불가피하게 양립 불가하고 배타적인 감정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 받아들임으로써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생의 기술로 사용한다. 그렇기에 엘리베이터도 없이,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도 낭만적이고, 비데에 머리를 감아야 할 정도로 수도관이 말썽인 공간에 살아도 잘만 살아가는 것 아니겠나?
고로 환상적으로 막연하고 단순하게 우리가 부러워하는 워크 앤 라이프의 밸런스를 지닌 프랑스의 삶은 오해이다. 프랑스인이 오래된 전통, 건물, 물건에 귀하디 귀한 가치를 부여하듯이, 오랜시간 보존하고 유지하여 우러나오고 묻어 나오는 방식이야말로 세월의 지속됨에서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어 무엇이든 감미롭게 음미할 수 있는 거라 할까? 그래서 한국인은 대세로 혹!해서 혹은 낚여서 훅!해서 움직인다면, 그리고 격렬하게 격변해야 새 것이고, 새로움이고 새로워진다면, 파리는 원형 도시 구조 안에 수없이 무수히 뱅글뱅글 돌아도 새로움을 감지하고 음미할 수 있는 능력치를 지닌다. 생활의 반복 속에서 꾹꾹 나다움으로 개성을 발현할 수 있다. 그래서 파리는 넓고도 좁다.
그렇기에 프랑스는 현실을 잊은 게 아니라, 현실을 각성했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삶에서 더 본질적인 것에 초점을 두고 맛보고 즐겨야 함을, 그래서 생존에 연명에 목숨 걸지 않을 거라는 각성. 더는 권위에 영혼을 팔지 않을 거라는 결의. 이를 기반으로 토대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각성한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인이 우리에게 환상적으로 보이는 이유이자, 손에 잡히지 않는 아우라의 이유이다. 우리가 각성하지 못한 것을 삶에서 실천하며,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라는 환상~ 달콤함만 취할 것이 아니라 환상적으로 변모하고 싶다면, 프랑스인이 알려주는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인 사회문화적 주입으로 기존 가치에 대한 갈등은 겪어봐야 한다. 예술의 경지에 오른 의상작품이 구태의연함인가? 전통인가? 자문했던 피에르의 실의처럼 말이다. 협착된 것을 조망해 볼 수 있을 때야 말로 삶이 한결 유연해지고 한결 편안해질 거라 장담한다. 왜냐하면? 현실을 더 완벽하게 직면하고 나아갈 단단한 자신을 만들어 줄테니까.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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