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격돌
세라비! 파리지앵이 말하는 산다는 건?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감각과 스타일에 국한되어 매력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일상생활의 방식과 본질을 묻게 한다. 랜선을 통해 문화 차이, 방구석 여행만이 아닌, 우리가 생에서 진정 갈망하는 자유를 사유할 수 있다면... 이 여행이 더 재밌어진다. 그럼 한국인이 일상에서 바라는 자유는 프랑스? 와 미국? 어디에 더 가까울까? (한국인은 거의 미국적인 의식구조이기는 하다. )
드라마는 미국인의 시선으로 프랑스인의 삶과 자유를 바라보고 있다. 파리에 도취된 시각 안에 나열되는 클리쉐들이... 프랑스인에 대한 이해라기 보단, 단편적인 평가와 구별에 지나지 않게 흘러넘치지만 이상화와 평가절하의 오르내림 만이 가능했을 터이다. 이해 불모지를 불분명함으로 소화시키는 수밖에 없었을 테니 말이다. 편견과 고정관념에 서린 채로 그들의 삶을 조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리로써야 순간에서 영원을 산다는 추상적이고 거창한 말로 밖에 달리 표현 설명할 길 없는... 프랑스인의 삶의 모습에서... 본 투 비 DNA에 내포된 자유! 그 자유! 가 불가사의하게 매혹적인, 베일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파리지앵의 잡히지 않는 아우라의 정체이다. 그러니까! 썸띵 is 자유.
에밀리가 파리 적응기 통해 보여주는 익숙한 시카고 삶과 다른 생활패턴과 인생관, 철학과 사고방식 등을 감상하면서.. 문화 기저에 깔린 썸띵을 느낄 수 있다면, 결정적으로 우리에게 '자유'가 부정적이고 빈약한 의미로 국한되지 않을 여지를 열어준다. 바로 자유가 방종과 방임의 의미로 자유가 아니라, 우리가 부르짖어야 할 자유가 무엇일지.. 자유가 욕망의 다른 말이 될 때 부작용이 일어나 듯이.. 자유에 내포된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의미가 갈래갈래 달라지듯이.. 진짜 바라는 자유가 무엇인지 말이다.
일단 드라마 속에서는 프랑스인은 삶을 향유할 자유와, 미국인은 성공/부를 획득할 기회로 자유를 바라본다. 우리, 한국인은 이러한 자유 간에 격돌을 경험해보지는 않았다. 미국인과 비슷한 사고 구조를 지닌 채로 마냥 추구하고 좇아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프랑스인이 추구하는 자유는 미지일 수밖에 없다. 주변 사람과 함께하며 오래 깊게 음식을 맛보듯이, 와인을 음미하듯이, 조명과 촛불로 분위기를 촉촉하게 만들듯이, 일상에서 접촉하는 모든 것을 감미롭게 느끼는 것을 극대화하려는 파리지앵과, 효율을 위한 음식 섭취처럼, 체계와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을 우선으로 하고, 보상으로 멋들어지고 번듯한 선망이 되는 물질을 성취하고, 쟁취해 만족하고, 그래서 더욱 많은 물질을 사용할 기회를 실현하려는 미국인 내지 한국인의 간극처럼 말이다. 간극을 체험한 끝에 나아가 이것이 인생이라 외칠 수 있을 만큼, 우리 한국인만의 혹은 나만의 자유의 형태를 창출해 낼 수 있다면 어떨까?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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