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누군가 필름을 뒤집어 놓는다면 거꾸로 된 사진이 인화될 것이다.
사회가 필름과 같다.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의 옥중 인터뷰 내용이다. 아니!, '거꾸로 된 사진' 이 말은 즉슨,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아닌가? 이럴 수가 뒤집힌 세계(Upside down)가 떠올려지니 말이다. 다시 말해 찰스 맨슨에 따르면 자신은 그저 거꾸로 된 필름의 인화된 사진 불과하다는 뜻이다. 거꾸로 된 사회/필름에서 찍혀서, 인화되어서 나온 인간이라는 건데... 벼룩을 대신해 뒤집힌 세계에서 현실세계로 올라온 인간으로는 바로 찰스 맨슨이라고도 적용해 볼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거꾸로 된 필름으로 사회 그리고 괴물과 같은 연쇄 살인범의 내면세계와 모종의 연관성이 느껴졌다. 그럼 인간과 사회의 전혀 다른 차원의 이해를 가능케 할지도 모를 일이다.
찰스 맨슨 왼) 연기자, 오) 실제 인물 찰스 맨슨이야 워낙에 기괴하고 광기가 어렸으니까, 그저 거짓 선지자 노릇을 하도록 내버려 둔 채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말이다. 혹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인드 헌터의 빌처럼, 왠! 헛소리! 냐며 버럭 극대노 하며 자리를 떴을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희한하게도 말 같지도 않아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느낌을 받는다. 찰스 맨슨은 히피의 생활방식과 평범한 젊은이들의 참모습을 꽤 뚫고 자신의 추종자로 만들어 집단 살인으로 이끌었다. 기묘한 이야기의 마인드 플레이어처럼 기능한 것이기에 분명 완전히 무시하기가 어려운 어떤 뭔가가 있다.
고로 찰스 맨슨의 해괴망측한 비논리적 이야기인들, 신비주의적 무엇이든... 빌처럼 대립각이 세워지기보다는, 연쇄 살인범의 내면세계를 파고들기 위해서는 아예 세상을 뒤집어서 봐야 한다는 것이... 온전히 이해 불가능하긴 하지만 맘 속 한편에서 일리가 있다고 느껴진다. 게다가 기묘한 이야기의 The upside down 세계가 그저 흥미로운 오락적 설정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찰스 맨슨이 말한 거꾸로라는 단어가 딱 맞아떨어지니, 상상 뭐시기를 더 첨가해본다. 찰스 맨슨의 말에 상상을 보태 확장해 볼 수는 있지 않은가? 사고 놀이처럼 말이다.
기묘한 이야기 시즌2는 뒤집힌 세계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윌 바이어스에게 거대한 거미 그림자 즉, 거꾸로(뒤집힌) 세계의 괴물이 드리운다. 그림자는 언제 길게 크게 드리워지는가? 물리적으로는 거대할수록 그림자는 크겠지만, 심리 법칙으로는 내면세계의 모종의 것을 무의식적으로 감출수록 그림자는 그늘을 길게 늘어뜨린다. “잰 어딘가 그늘져있어”, “잰 어딘가 그림자가 지어져 있어.” 와 같은 말이 있듯이 말이다. 정작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실체 없이 존재하나 거꾸로 된 세계에서 돌출되어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세기의 살인마 찰스 맨슨을 비롯한 연쇄 살인범이야 말로 사회의 어두움을 대표하는 그림자 자체이다. 왜냐하면 한 개인과 마찬가지로 한 사회도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를 감출수록, 빛이 의식이 닿지 않을수록 가장 취약한 부분부터 어두움, 그늘은 커져가기 때문이다.
두 작품도 켜켜이 깊은 어두움에 쌓인 사건으로부터 출발한 작품이 아닌가? 기묘한 이야기는 설마 하고 유령 루머처럼 떠돌았던 *MK 울트라 프로젝트라는 실제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미스터리 스릴러이고, 마인드 헌터 역시 끔찍한 범죄가 판치던 시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실존한 연쇄 살인범이 등장하는 심리 스릴러이다.
그럼 이제 두 작품을 통해 ‘바로 된 세계’와 ‘거꾸로 세계’의 퍼즐 조각을 모아볼까?
* 이후 내용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와 마인드 헌터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찰스 맨슨 : 마인드 헌터 시즌2에 등장, 히피족으로 구성된 맨슨 패밀리 연쇄 살인행각의 지도자, 당시 유명 영화배우 샤론 테이트를 임신한 상태에서 살해해 유명해짐.
MK 울트라 프로젝트 : 엘의 엄마가 당한 인체 실험이자, 1960년대 전후로 CIA가 주도한 인간 세뇌 실험 프로젝트 명.
찰스 맨슨 인터뷰 당시 주장: 도서, FBI 심리기술
기묘한 이야기: 2016년부터 방영된 미국의 SF 공포 드라마이다.
마인드 헌터: 2017년부터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미국의 범죄 드라마로 연쇄 살인마와 인터뷰를 통해 정립된 프로파일링의 기원을 따라간다.
마인드 헌터에 등장하는 연쇄 살인마 에드먼드 켐퍼는 첫 인터뷰부터 사람이 죽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로 시작한다. 마치 직업적 뉘앙스를 풍기면서 말이다. 그리고 인터뷰 내내 살인 행각을 자세하고도 상세히 자신감에 차서 늘어놓는다. 실제 유튜브 인터뷰 영상을 보면 끝내 하는 말이 살인을 할수록 정신적 현실이 실제적 현실과 괴리감이 커지는데 보통 사람이었다면 아예 미쳐버렸을 것이며, 자신이었기에 경계를 맞추어 평범한 일반인처럼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보고한다. 또 난폭하고 무시무시하게 만들어 낸 정신적 현실을 거듭 강조하여, 마치 큰 중대한 일을 고난 끝에 훌륭히 성취해낸 것처럼 자랑하며 말한다. 그야말로 거꾸로 된 세계임을 알 수 있다.
에드먼드 켐퍼 왼) 연기자, 오) 실제 인물 또 다른 예로는 마인트 헌터에서 일반인에게 긍정적으로 해석되는 상황이 범죄자에게는 전혀 다르게 부정적으로 해석되는 양상이 관찰된다. 역시나 우리 세상사 스펙트럼 상에서 거꾸로 찍혀 나온 인간처럼 말이다. 나쁜 일이 좋은 일이 되고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마인트 헌터 시즌1의 리셀은 살인자임에도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며 자기 연민에 범벅이 되어있다. 바로 읽으면 즉흥적 재미로 살인이 일어났지만, 거꾸로 읽으면 자신을 배신하고 기만하고 자신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정당한 값을 치른 것이다. 인생에서 누구라도 일어나는 정상적 상황을 비정상적 상황으로 받아들이며 대처한 결과이다.
몬티 리셀 왼) 실제 인물, 오) 연기자
거꾸로 된 정신세계를 바로 보자면, 연쇄 살인범들의 실제적 현실은 사회적 경제적 측면은 말할 것도 없고 실존 측면에서 완벽하게 무너졌지만, 정신적 현실이자 거꾸로된 정신세계에서는 살인행위로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는 통제하에 있다. 우위에 있으며 주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방감을 느끼고 활력과 흥분이 넘친다. 다시 말해서 바로 된 세계에서라면 지독한 열등감과 패배감에 가득 차 그저 여자, 개, 노인 등과 같은 약자에게 군림하는 권력과 통제의 강렬한 열망을 품고 있을 뿐이지만 말이다. 거꾸로 된 세계로 넘어간 이상 권력과 통제의 열망을 실현하고 만족시킬 수 있기에 충동질이 요동치면 곧장 행동하면 되고 그게 다다.
물론 마인드 헌터 시즌1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주듯이 이러한 정신세계는 거꾸로 된 가정배경도 한몫했다. 대게 연쇄 살인마가 지닌 불우한 가정사를 보면 일반적인 가정 내에서는 금기시되던 것이 가족 상호 간 경계 없이 버젓이 이루어졌으며 들쑥날쑥 깊숙이 침해하고 범람했고... 사랑 대신에 거꾸로 폭력과 학대, 모욕, 수치가 가득했던 나날이 인간 본질을 말살했다고 예상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내면세계는 비틀어지고 왜곡되고 뒤틀린 채로 발달 형성해 나갔을 것이다. 범죄 조건의 형성이다. 이러한 조건이 심화되어갈수록 잠재적 범죄자로 숙성되어 언젠가 발현되거나, 언제든지 상황에 의해 촉발되어 범죄로 이어진다.
그러나 범죄 잠재성과 관련해서는 홀든의 여자 친구 말대로 추측은 추측일 뿐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유전적으로 원인을 다 돌릴 수 없었듯이, 또다시 진부하게 환경적 변수로 100% 환원할 수 없다. (마인드 헌터가 잔잔하고 차근차근하게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며 진행해왔듯이, 재차 유전과 환경적 변수를 다시금 깨부수는 것과 관련해서는 이후 시리즈 물에 좀 더 자세히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은 범죄 조건을 숙성시키고 언제라도 범죄가 촉발될 수 있도록 시간은 흘려 보내왔고 발달시켜온 것은 누구인가? 바로 자기 자신일 뿐이라는 결론에 앞서 다다른다.
다시 말해 연쇄 살인범을 한 개인으로 보자면, 억압과 폭력의 사슬, 고통의 도가니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자유를 찾지 못했다. 자신조차 범행의 이유를 모른 채로 만족감과 쾌락을 위해 무고한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이가 되어 버렸다. 자신이 처해진 상황도 문제도 합리적이고 적절하게 인식하지 않은 죄의 대가이다. 깨달음을 추구하지 않는 비정신성으로 스스로 삶을 악으로 물들였다.
인간, 혹은 인간성의 반대말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이다. * 인간은 이성과 사랑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만큼 자신의 본질에 도달한다고 했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 본다면, 극악무도한 범죄자는 자신의 본질성에서 뒤집힌 것, 가장 극단으로 반대로 향한 것이다. 인간적 발달의 정체나 퇴화 차원이 아닌 비정신성으로 말미암아 마치 괴물과 같은 동물화로 진행되어간다고 할까? 고로 연쇄 살인범은 사랑의 능력을 상실하였으며 합리적 이성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인간화로가 아닌 인간성을 박탈한 채 자라난 것이다.
특히나 연쇄 살인범들은 자기 자신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기묘한 이야기의 괴물처럼 원초적 원시성이 엿보인다. 그래서 인간이 아닌 동물화 진행 과정을 서서히 거쳐가며, 뇌를 어디에 써먹을지는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든, 아니든, 기괴하던 멀쩡해 보이든, 범죄가 완벽하던 허술하던, 계획적이든 충동적이든, 지능적이든 아니든, 배웠든 못 배웠든, 직업이 있든 없든,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찼든 수치심이든, 솔직하던 거짓이나 헛소리로 일관하던 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얘기하든 뜬구름 잡듯이 얘기하던 마찬가지다.
기묘한 이야기의 괴물이 호킨스와 The upside down을 오고 가며 바로 된 세계에 진입해 나아가 인간 육체를 획득하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연쇄 살인범도 인간성은 빼놓은 채 현실세계와 자기만의 거꾸로 된 정신세계를 오고 가며 바로 된 세계에 거꾸로 된 세계를 구현하려 한다. 마인드 헌터 시즌 1의 대미를 장식한 홀든의 목을 조여 오는 질식할 것 같은 공포가 극심하게 이를 알려준다. 홀든이 거꾸로 된 세계를 반영하는 살인마의 정신적 현실에 너무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에 몰려오는 엄청난 혼란과 공포감에 압도되어 쓰러진 것이다. 이때 단순한 죽음의 공포가 아니라 이를 넘어섰다. 켐퍼의 환상(거꾸로 된 정신세계)이 홀든을 집어삼킬 것 같이, 거미 그림자 환영이 윌을 덮치듯이 느꼈다. 하지만 환상, 환영이 아니라 실제였다. 홀든이 카테고리 하여 특징지운 켐퍼가 아니라, 켐퍼는 거구와 친구란 단어를 앞세워 공포와 친근감을 혼합하여 진실을 역전시켜 그 순간 환상을 진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홀든도 엘도 거꾸로 된 세계 진입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세계와 세계 간의 문을 열어서 불러올 파장과 부작용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두 작품을 엮어 연상해 본 결과, 우리가 되짚어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인간사, 세상사 스펙트럼상에서 가장 어둡고 축축한 극단의 축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면 우리는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 시기에 새로운 유형으로 연쇄 살인범의 출현이 '바로 된 세계'에 말하는 바가 있었듯이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벼룩처럼 이동해야 할 세계는 어디고, 곡예사처럼 이동해 보아야 할 세계(/차원)는 어디일까? 그 몫은 '바로 된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달린 일일 테다.
애드먼드 캠퍼: 마인드 헌트 시즌1 여학생 살인마로 등장, 캠퍼와 인터뷰를 시작으로 프로파일링의 시초를 다지기 시작함, 지능적이고 계획적인 연쇄 살인마.
인간은 이성과 사랑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만큼 자신의 본질에 도달한다. 저자 에히리 프롬, 도서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