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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i et Moi Apr 05. 2021

어디, 인생 바뀌기가 쉽나요?

넷플릭스 타임루프작, '러시아 인형처럼'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인생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네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아?



  '러시아 인형처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죽음으로 리플레이되는 타임루프 소재와 마지막 8화의 '멋진 해답'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정주행하고 말았다. 꼭 반복되는 시간대가 아니라도 매일이 같은 날처럼 쳇바퀴 굴러가는 삶에서 속박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탈출과 해방을 고대하지만 특정 시공간에 갇힌 그 이유를 알려줄 퀀텀점프를 가능하게 해 줄 해답이 그려져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발동했다.


  타임루프에서 해방은 다른 말로 하자면 새로운 시간을 사는 것이니 삶의 변화를 뜻한다. 그러므로 갇힌 상황에서 벗어나는 건 인생을 바꾸는 것과 같다. 살아가다 보면 스턱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 않는가? 그렇지 않아도 누구나 변화를 원하고, 누구나 인생을 바꾸고 싶어 한다. 특히나 막혀서 제자리에 꼼짝없이 갇혔다고 느낀다면 어떠한 새로운 방향으로, 새로운 상황에 진입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어디 인생 바뀌기가 쉽나? 


  러시아 인형처럼은 타임루프 탈출이자 인생 바꾸기 여정을 위한 과정이 그려진다. 기대했던 대로 마지막화는! 강추한다. 멋진 해답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 각자에게 맞는 정답은 아니어도 대놓고 하나의 사례로, 예로서 제시하고 있다. 게다가 회마다 그저 공상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잘 짜여있다. 무엇이? 인생 변화의 단계가 아주 잘 담겨있다.


  잘 짜여 있는 이유야 너무나도 명확하다. 요즘 대세적 소재는 양자 물리학 관점을 녹여낸 스토리이다. 실제적이나 보이지 않는 차원을 다루는 양자물리학과 심리학과 연동 혹은 연관성, 즉 둘의 만남, 결합을 찾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꽤나 보일 수 있게 그려냈다. 보이지 않아도 실제 하는 의식상태 변화로 이루어내는 삶의 전환을 드라마로 그려냈다. 물론 타임루프물의 전개 방식이라 할 수도 있지만 고전 물리학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앞에 꽤나 짜릿하다.


  고전 물리학적 관점에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변화를 원하지만 변화 의도를 지니고 실천하지 않는 게 대다수다. 아니 다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이유야, 발등에 불 떨어져야, 낭떠러지 코앞에 다다라야 소수만이 겨우 근본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위한 실천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혹은 그 소수마저도 문제가 거대해져 뒤덮을 때에나 수습용으로 변화 행동이 시작된다. 나디아와 앨런이 스스로를 만나지 못했을 때와 비슷한 모습이다. 인생관, 생활방식으로, 관계의 균열로 문제가 발생하고 드러나도 보지 못한다.  


  어쩌면 인간은 관성대로 살아가지 관성을 초월해서 차원을 드높이는 삶으로 가는 것은, 코앞에 죽음을 직면하지 않고서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도 모른다. 관성 가속도를 더 높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고 할까? 양자적 차원으로 거듭나지 못한다. 하지만 두 주인공은 거듭 되풀이 끝에 결국! 해내고 만다.


Life is a killer

  여러분이라면 무너져 흘러내려가는 삶을... 어떻게 멱살 잡고 끌고 나갈 것인가? 삶이 자신을 죽이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죽음이 삶을 잠식하고 나서야 움직일 텐가? 그러니 삶이나 죽음에 압도당하기 전에 변화를 이루어 재탄생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주인공은 시간의 쳇바퀴에 갇혀있다가 어떻게 해방되었을까? 어떻게 인생을 바꾸었을까?

화장실 거울 앞 나디아

* 이후 내용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러시아 인형처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인 나디아에게 밤중 꿈속에서나 벌어질 일이 일어난다. 죽는다. 아주 생생히 죽고 만다. 그런데 끝이 아니다. 러시아 인형의 몸체를 열면 계속 같은 작은 인형이 나오듯이 나디아는 반복하는 시간구조 속에 아무리 죽어도 쳇바퀴처럼 또 반복해서 산다. 그렇게 반복되는 무한대의 시간 속에 갇힌다. 그것도 생일날!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반복되는 시간대의 끝을 맞이하고 생일파티 현장 화장실 거울 앞에서 끊임없이 시작, 재시작한다.


  죽은 뒤에는 매번 생일 파티 장소 화장실 거울 앞에 도로 와있으니 처음에는 영문도 모른 채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 다음 생의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얼마 안가 차에 치여 죽던, 계단에 굴러 떨어져 죽던, 폭발로 죽던, 그 외 갖가지 사고들로.. 죽는다. 어지간히 죽어도 다시 돌아오고 마는 생일파티 한복판에서 자신의 죽음을 막고자 조심하고 조심해도 다음날까지 다소 시간을 연장시킬 수는 있어도... 예정된 수순대로 죽고야 마는 것이다.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에라도 빠진 듯이 도무지 벗어날 방도가 없다.


  아마도 미친것인가? 아니면 장소 탓인가? 아니면 친구가 준 대마초 탓? 단서를 찾아 퍼즐을 맞추어 본다. 문제의 근원을 외부에서 찾거나 어떠한 논리적 원인에서 찾다. 나디아는 시간만이 아니라 고전 물리적 인과에 갇혀있다. 정작 가장 중요한 걸 보지 못하고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언제나 답은 자기 안에 있는 법이다.


   죽음을 반복하다 나디아는 타임루프를 자신처럼 겪고 있는 앨런과 만나게 된다. 앨런은 한치의 오차와 변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강박적 성격이다. 어차피 또 죽을 거라며 체념한 체 도덕 탓, 자책만 하며 지내왔다.  어차피 죽을 거라도 살길을 찾아 나서는 나디아와, 어차피 죽을 거니까 체념 한 체 지냈던 앨런과 만남이 성사됐다.


  나디아와 앨런은 시간이 되풀이되는 원인으로 서로의 가설을 확인하다가,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조하며 도출되는 개인적 역사와 사건들을 맞이하며 꼬인 실타래를 풀어간다. 단계 단계 진중한 무게의 주제를 가볍고 흥미롭게,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처음에야 둘 다 죽어서도 되풀이되는 시간 속에서 관성대로 흘러가지만,  사이 무형의 연결점을 찾으면서 나디아와 앨런은 서로를 반영해주며 서로가 서로의 속마음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더 이상 서로를 반영할게 없어지자 타임루프가 진행되는 가운데 타임루프 시작점에 있던 화장실 거울 사라진다.


  그리 거울이 없어진 이후로 희한하게도 되풀이되는 임에도 사람이며 거울이며 물건들이 자꾸 사라진다. 이렇게 둘이 공존하는 시공간이 섞이기 시작한다. 썩어가는 오렌지에서, 재시작점으로 돌아오지 않는 갖가지 물건을 보며 선형적 시간이 있음을 눈치챈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과 순환하는 시간이 공존하며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선적 시간을 탄다면 죽지 않고 새날을 맞이할 수 있다. 드디어 인생을 바로잡을 수 있다!


  아마도 거울이 없어진 건... 더 이상 평면적인 자신이 아니게 된 것임을... 의미한다. 죽은 것도 살아있는 것도 아닌, 이 또 다른 시공간에서... 문제를 해결해 가니 아마도 차원의 변환을 이루기 위한 공간이다. 이제 진짜 문제는 알았으니 진정 자신의 생을 위하지 않고 무시하고 회피해왔던 것들을 실행한다.


  그럼 두 주인공은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과연 흘러가는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3차원적 사고방식이 아니라 고차원적 접근이 필요했다. 바꿔 말하자면 나디아의 말이 맞다. 나디아 말 그대로 4차원적 조망이 필요하다. 의식적이고 합리적 숙고와 접근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 쳇바퀴 속... 시간은 경험에 따라 달라다.


  드디어 대망의 날이 찾아왔다. 사라져 가던 모든 것들이 원래대로 돌아다. 시작점인 화장실의 돌아온 거울이 말해준다. 재시작이다 재출발에서 이제는 지긋함이 아니라 기적처럼 느껴지는 산뜻한 기분으로 시작한다. 똑같날이 아니라 새로운 날로 시작다. 의식이 새로운 상태가 되자 새로운 공간으로 가는 입구가 열 것이다.


  시간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는 건 새로운 나를 연 것이다. 무너져 내려가고 있는 삶을.. 어떻게든 강박적으로 올려 세우고 완벽하게 질서를 구축하려던 집착적이고 강박적 삶의 방식으로 살아온 앨런. 그리고  무작위의 무질서한 삶을 더 막무가내로 흩트려버리려는 삶의 방식으로 지내오던 나디아 대망의 이날 자신의 본질에 닿은데로 살아가기에 앞으로 펼쳐갈 새날의 타임라인은 또 어떨지 기대하게 된다.

                                                                                                                                        결국 나디아와 앨런이 인생 전환으로 새날을 맞이한 건, 일종의 운영체제 업데이트이다. 그래서 나디아의 직업이 프로그래머인 이유가 아닐까? 프로그래밍상 오류를 바로 잡아내어 수정하듯이 현실세계의 버그 오류를 잡아내는 것, 그래서 새롭게 코딩할 수 있는 것, 그것이 3차원의 세상을 4차원으로 조망할 수 있는 것이자 내면 상태변화로 이루어낼 현실 창조.



제가 요즘에 죽음을 수없이 죽음을 경험했는데 그러다 멋진 해답을 찾았어요.
인생에는 여러 가지 시간표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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